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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계간문예 2014년 봄호, 수필] ‘던지다’에 숨겨진 비극 - 김옥춘

신아미디어 2014. 12. 8. 17:56

"<모래시계>라는 드라마에서 OST로 알려진 <백학>이라는 노래가 있다. 전장에서 죽어 돌아오지 못한 체첸 전사들을 백학에 비유한 노래 말과 곡조는, 우리 민족의 한과 정서가 비슷하다. 전혀 다른 민족의 한 맺힌 노래지만 정서가 비슷해서인지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좋아했지만 많은 이들이 좋아했던 노래다. 그런 경험이 <바르자크>라는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다. 우리는 그들을 잊으면 안 된다. 그것이 곧 서러운 영혼들을 위로하는 길이라면."

 

 

 

 

 

 

 

 ‘던지다’에 숨겨진 비극        /  김옥춘

 

   인간의 잔인성은 어디까지일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세계 곳곳에서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 속에는 사람이 사람에게 행하는 잔인함이 상상을 초월한다.
   일본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에도 우리나라에게 함부로 하는 못된 행동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소극적이고 용기가 없는 나지만 때로는 울분을 참지 못하여 속을 끓이기도 한다. 어디를 가나 강제 합병된 36년 동안 일본인들이 저지른 흔적이 남아있어, 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잔학성을 보면 화가 난다. 그럴 때 답답함에 글을 끼적이는지도 모른다.
   KBS <인간극장>, 바다가 아름다운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마이크로네시아’에 원주민여성과 결혼한 한국인이 살고 있다. 함께 살고 있는 77세 된 장모 ‘시삼’ 할머니는 자랄 때에도 한국 사람들을 보았다고 한다. 정원에 피어있는 분홍 꽃과 노란 꽃을 만지작거리면서 들려주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꽃나무는 60여 년 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점령지였던 섬나라에 약 6천여 명의 한국인들이 징용으로 끌려 왔을 때 심은 것이라고 한다. 기약 없는 길 떠나면서 들에 핀 꽃씨를 가져다 심어놓고, 꽃을 피우면서 고국과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달랬던 사람들. 작은 섬나라에서 도로와 정원을 만들고 그곳 사람들과 함께 일만 했다. 일본 군인들은 한국인을 강제로 데려다가 노동을 시키면서 혹독하게 굴었다. 때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된 한국인을 구덩이를 파고 집어 던지기도 했다고 말한다.   
   열 몇 살 때 직접 보았다는 시삼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강한 분노가 일었다. <인간극장>에서는 아름다운 섬에 살고 있는 한국 젊은이를 소개하려는 것이 목적인데 나는 그 뒤에 숨겨진 일본인들의 잔인성에 화가 나는 것이다. 그리고 산 사람을 구덩이에 던졌다는 말에 어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다.
   2011년 여름 부산 국제 영화제에 가는 딸을 쫓아갔다. 계획에 없어 예매를 하지 않은 나는 딸이 골라주는 세 편의 영화를 보았다. 그중에 <바르자크>란 다큐멘터리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바르자크>를 만든 감독은 핀란드 사람이다. 전쟁으로 파괴되어 살벌한 체첸시를 배경으로 실종된 한 남자의 가족과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를 젊은 청년이 현장에서 혼자 뛰며 만든 영화다. 이 영화에서 ‘바르자크’란 산자와 죽은 자의 세계, 즉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서 잠시 머물러 있으면서 부활을 기다린다는 상상의 공간이라고 한다.
   다큐멘터리 <바르자크>는 비극적인 역사를 지닌 체첸공화국의 일면을 다룬 영화다. 체첸은 인접한 강대국 러시아로부터 강제 합병되어, 수십 년 동안 독립투쟁의 과정을 반복해 온 나라다.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강제 합병되어 독립운동을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공통점 때문에 더 관심이 있었다.
   부산에서 돌아오자 체첸이라는 나라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러시아가 체첸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유전이 체첸을 지나가기 때문이라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다. 그들은 수 없이 여러 차례의 전쟁을 치르고 이제는 독립된 정부를 가지게 된 공화국이다. 그러나 독립된 정부라는 것은 허울에 불과하고, 친 러시아 성향을 가진 대통령과 정부는 변한 것이 없다. 반군들은 총을 겨누고 정부는 반군들의 씨를 말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바르자크는 그 무렵에 만든 영화다. 테러리즘 타도라는 명목으로 청년들은 납치된 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아침에 같이 식사를 한 가족이 오후에 실종이 되고, 기다리는 가족들의 얼굴은 무표정해 보이나 눈동자엔 초조함과 깊은 슬픔을 담고 있다. 그들의 하루는 한 달처럼, 일 년처럼 느리게 흘러간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의 영화 마지막 장면은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 하나 툭 던져지면서 조용히 파문이 인다. 무겁게 시작해서 무겁게 끝난 영화 마지막에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멩이와 끝없이 퍼지는 파문은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 대화의 시간이 있었다. 목숨을 걸고 촬영한 현장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다른 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어 꽤 많은 세계인들이 관심을 갖게 된 영화다. 감독은 자신이 인터뷰한 사람들을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아서 혹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그곳의 현실을 영화로 만든 이유는 세계에 사실을 알려 도우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세계는 그나마 질서를 지키며 움직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에 호수에 던진 돌멩이는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실종된 사람들이 호수에 던져졌을 수도 있다는 암시라고 감독은 대답했다. 실제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던져졌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조용하고 잔잔하게 퍼지는 물결무늬는 아름답기도 했고 어떤 희망의 실마리인가 했는데, 사라진 사람들이 살아 있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감독은 실종된 사람들은 바르자크라는 상상의 세계에 머물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 한 개에 숨겨진 비극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어느 날 방송에서 ‘시삼’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징용으로 끌고 갔다는 사실만해도 오열할 일인데, 산사람을 구덩이에 던졌다는 말에 분한 마음이 들었다.
   친척 중에 징용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분이 계시다. 부인은 평생을 남편을 기다리면서 혼자 외로운 생을 살다 가셨다. 그 아주머니는 매일 남편이 돌아온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살았던 분이다. 희망과 절망을 수도 없이 되풀이하면서 말년에는 정신 줄을 놓고 헤매다가 가셨다. 뵐 때마다 슬픈 눈빛이 마음을 아리게 했다. 그 눈빛을 다큐멘터리 <바르자크>에 나오는 사람들에게서 다시 보았다.
   징용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청년들, 구덩이에 던져진 우리나라 사람들, 체첸에서 호수에 던져진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할 방법은 무엇일까. 밀알이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면 많은 결실을 얻을 수 있듯이, 영화를 만들고, 연주를 하고, 글을 쓰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다시는 그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모래시계>라는 드라마에서 OST로 알려진 <백학>이라는 노래가 있다. 전장에서 죽어 돌아오지 못한 체첸 전사들을 백학에 비유한 노래 말과 곡조는, 우리 민족의 한과 정서가 비슷하다. 전혀 다른 민족의 한 맺힌 노래지만 정서가 비슷해서인지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좋아했지만 많은 이들이 좋아했던 노래다. 그런 경험이 <바르자크>라는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다. 우리는 그들을 잊으면 안 된다. 그것이 곧 서러운 영혼들을 위로하는 길이라면.

 

 

김 옥 춘  ----------------------------------------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원. 이화수필문학회 회원. 사)한국문인협회 영등포지부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