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 여행작가 2014년 3-4월호, Focus on] 유관순열사 사적지와 생가지를 다녀와서 - 글·사진 백순화(수필가)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은 비폭력 평화주의를 원칙으로 최후의 일인이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투쟁한 독립만세운동이다. 열사는 이 원칙을 지키며 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순국한 3·1운동 정신의 상징이자 겨레의 꽃으로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초혼묘 가는 길엔 학생들의 시비가 열사의 영혼을 달래주고 있다. 비바람에 지워져 글씨가 잘 보이지 않지만 시 한 수 소개한다."
유관순열사 사적지와 생가지를 다녀와서 / 글·사진 백순화(수필가)
유관순 열사 사적지
한국의 잔 다르크라 불리는 유관순 열사(柳寬順 烈士, 1902~1920)의 사적지는 동남구 병천면 탑원리에 있다. 여기에는 유관순 열사 기념관, 봉화탑, 동상, 영정, 초혼묘, 추모각 등 관련 유적이 있다. 천안시는 유관순 열사의 애국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1969년부터 유적지를 조성하여 1972년 추모각을 건립하고 매년 열사의 순국일에 맞춰 추모제 행사를 유관순 열사 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거행해오고 있다. 유관순열사기념관은 열사 탄신 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2003년 4월 1일에 개관하였다. 이곳에는 수형자 기록표, 호적등본, 재판 기록문, 사진 등 관련 전시물이 전시되어 있다.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6일 병천면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의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이화학당 재학 중에 3. 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귀향하여, 1919년 4월 1일 3천여 군중이 참여한 호서지방 최대의 독립운동인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시위 현장에서 체포되어 공주감옥에 수감되었다. 1919년 8월,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된 뒤 일제의 악독한 고문에 못 이겨 1920년 9월 28일에 순국하였다.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은 비폭력 평화주의를 원칙으로 최후의 일인이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투쟁한 독립만세운동이다. 열사는 이 원칙을 지키며 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순국한 3·1운동 정신의 상징이자 겨레의 꽃으로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초혼묘 가는 길엔 학생들의 시비가 열사의 영혼을 달래주고 있다. 비바람에 지워져 글씨가 잘 보이지 않지만 시 한 수 소개한다.
그대
꺾어짐으로 해서
우리는 이곳에 우뚝 섰다.
아!
미치도록 그리운 조국의 독립으로
이 땅의 해맑은 웃음 이루려
씨 되어 흩날리나니
마침내 그대는
통일의 배꽃으로 피어나소서.
- 이화여고 김희정 짓고 김영기 씀.
유관순 열사 생가지
유관순 열사 사적지에서 약 1.3km를 가면 병천리 용두리에 생가지가 있다. 1962년 3월 1일 정부에서는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추서하고 열사의 애국정신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1991년 옛 집터에 생가를 복원 정비하였다. 생가로 들어서니 ‘ㄱ’자 초가에서 열사가 독립운동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인다. 생가 옆에는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매봉교회가 있다. 매봉교회 지하에는 열사의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또한, 백석대학교 유관순 연구소는 유관순 열사의 애국애족 정신을 선양하고자 유관순 이야기를 출간하고 천안지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매년 유관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지역사회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며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고 있다.
백순화님 ---------------------------------------
백석대학교 정보통신학부 멀티미디어전공 교수, 저서 《백제전설여행》,《천안이야기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