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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수필과비평 2014년 1월호, 사색의 창] 김칫돌 - 백남일

신아미디어 2014. 10. 29. 08:58

"디지털 시대를 향유하고 있는 현대인은 자기 제어의 미덕을 베푸는 아량이 부족하다. 입에 쓰다고 해서 무조건 뱉어버리는 오늘의 생리, 정신이 육체의 요구를 이겨내지 못하면 옹골찬 삶을 꾸려가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혼탁한 세파에 줏대 없이 표류하고 있는 이들의 마음속에 누름돌 하나씩을 얹어주면 어떨까."

 

 

 

 

 

 

 

 김칫돌        백남일

   우리 집엔 가보家寶처럼 건사하고 있는 김칫돌이 하나 있다. 혹자는 조선시대의 백자나 하다못해 뚝배기도 못 되는, 그 흔해빠진 돌멩이를 가지고 웬 청승이냐고 시답잖게 여길지 모른다.
   하나, 조상들의 손때에 결은 이 돌에서 나는 식솔 같은 친밀감과 앙그러진 모양새에서 오는 풍정을 결코 외면할 수가 없다. 맺힌 데 없이 둥글넓적한 원만구족의 품새를 살피노라면 어느새 마음이 푸근해지고 여여如如해서 좋다. 더구나 살며시 들어보면 몸피에 비해 손에 실리는 중량감이 평소 내 경박한 처신에 일갈一喝하는 듯해 숙연한 마음마저 든다.
   여염집 장독대에는 으레 김칫돌 두서너 개가 놓여있게 마련이다. 한국인의 정서가 오롯이 고여 있는 장독대의 항아리 속엔 된장이나 고추장 말고도 김장 김치가 해마다 갈무리되고 비워지기를 반복한다. 특히 동치미를 담근 항아리 속엔 시누대 꺾어 가로지르고 그 위에 돌을 얹어 푼수 없이 고개 드는 무를 잡도리한다. 그러고 보면 김칫돌은 경거망동에 제동을 걸어 제 스스로 완숙의 경지에 이르도록 다독이는 누름돌이다.
   진외가 가는 길은 첩첩산중 산등성이를 몇 번 넘고도 내를 건너야만 했다. 지금은 보령 댐 수몰지역으로 물속 깊이 잠기고 말았지만, 매바위를 휘감고 돌던 골짝 물 청정옥수는 오월이면 송홧가루 날려 금빛으로 흘렀다. 징검돌 골라 밟고 내를 건너시던 할머니는 잘생긴 돌 하나를 건져 올렸다. 보름달같이 모나지 않은 진검정 돌이었다. 후에 안 일이었지만 우리나라 석질의 제일로 치는 남포오석藍浦烏石이었다. 흑요석 또는 흑요암이라고도 부르는 이 돌은 비석과 도장 등의 석가공품으로 긴히 쓰이는데, 연마하면 할수록 검푸른 윤기가 석경石鏡을 방불케 한다.
   모든 돌은 물을 머금어야 제 태깔이 살아난다. 그래서 돌 애호가들은 수석壽石을 채취할 때 물 수자를 넣어 수석水石이라 고집한다. 돌이 풍화작용을 거쳐 흙이 되고, 다시 그 흙이 굳어 돌이 되는 자연의 섭리가 빚은 무기물의 변신은 다양하다. 녹주석綠柱石이 품은 현요한 빛깔과 환상열석環狀列石의 신비가 그러하다. 그러나 서구의 돌문화가 건축 등의 실용적 소재로만 사용한 데 비해, 우린 예부터 천연석 자체에서 미를 찾아 완상하기를 즐겼다.
   할머니는 돌아가시면서 평생 소중히 간수했던 그 김칫돌을 며느리인 우리 어머니에게 넘겨주시면서 과연 무어라고 당부하셨을까? 그때만 해도 벙어리 노릇 삼 년에 이은 석 삼 년의 세월을 오직 인종으로 견딘 시집살이였다. 울컥울컥 복받쳐 오르는 설움의 덩이를 가슴돌로 짓누르며, 애이불비哀而不悲로 장독대에 올라 김칫돌을 깔고 앉아 한을 삭혔다. 할머니의 삼종지의三從之義는 유산처럼 내 어머니가 가감 없이 전수했고, 종부인 집사람 또한 이를 당연지사로 여기며 김칫돌을 살림 밑천인 양 애지중지한다.
   1세기 가까이 대물림한 김칫돌, 나는 우주의 형상을 닮은 이 돌을 내려다볼 때마다 ‘백제의 미소’를 떠올린다. 서산 운산면에 있는 가야산 계곡의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은 600년의 시공을 한결같이 미소로 보시하고 있다. 우리 집 김칫돌에 투영된 본존本尊의 입꼬리가 보면 볼수록 익살스럽다. 후덕한 볼과 복스러운 콧망울은 둥그스름한 용안容顔과 조화를 이룬다. 오른손을 활짝 펴 중생을 가림 없이 허여하고 왼손을 밑으로 내려 자비를 베푸는 수인手印을 취한다. 석가모니불인 이 불상 오른편에는 보주寶珠를 살폿 든 보살이 서 있고, 왼편에는 미륵반가사유상이 묵연히 서 있다. 미륵이 미래불일진대 이 삼존불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삼세불三世佛로 현존한다.
   한데 3대째 내려오는 우리 집 김칫돌의 입지가 수수로이 베란다 구석으로 밀려나고 있다. 시대감각이 유별나게도 뛰어난 내 며늘애가 고리타분한 돌멩이에 시큰둥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를 향유하고 있는 현대인은 자기 제어의 미덕을 베푸는 아량이 부족하다. 입에 쓰다고 해서 무조건 뱉어버리는 오늘의 생리, 정신이 육체의 요구를 이겨내지 못하면 옹골찬 삶을 꾸려가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혼탁한 세파에 줏대 없이 표류하고 있는 이들의 마음속에 누름돌 하나씩을 얹어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