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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수필과비평 2014년 1월호, 사색의 창] 향기 - 김재훈

신아미디어 2014. 10. 29. 08:54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주시고도 보답은커녕 애오라지 자식 걱정만 하시다가 돌아가신 부모님이 그립다. 귤나무 숲의 향기가 부모님이 보내시는 향기 같기만 하다."

 

 

 

 

 

 

 향기        김재훈


   귤을 따고 있다. 11월 말인데도 제주의 날씨는 따뜻하기만 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높은 가지의 귤을 따려고 고개를 들면 눈이 부시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말고는 조용하기만 한 귤밭이다. 가위질 소리만 재깍재깍 정적을 깬다.
   이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5일째다. 끝내려면 앞으로도 며칠간은 더 해야 할 것 같다. 하루 종일 나무들 속에 묻혀 일을 하고 있으면 생각이 단순해지고 무념무상이 된다. 선禪의 경지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귤은 가지마다 달려 있다. 여기저기 손을 뻗으며 귤이 달린 꼭지를 싹둑싹둑 잘라낸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가지의 귤은 발판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한꺼번에 서너 개씩 따고는 상태에 따라 두 개의 망태에 구별하며 넣는데 좋은 것은 상품을 모으는 망태에, 그렇지 못한 것은 다른 망태에 넣는다. 너무 커도 문제고 작아도 문제다. 또 탐스럽게 잘 익은 귤이라도 껍질에 상처가 있으면 상품이 될 수 없다. 대체로 동글동글 적당히 크고 흠집이 없는 것이 직접 소비자에게 팔려갈 것들이다. 속이 기준이 아니고 겉이 기준인 걸 어쩌랴. 생각 같아선 양지바른 쪽의 귤이 더 맛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같은 가지에 달린 귤이라도 너무 큰 것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인 것도 있다. 이들이 서로 다른 망태로 던져질 때는 ‘내가 왜.’ 하며 불평이라도 하는 듯싶다. 하지만 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식들이라도 크기와 개성이 각각 다르지 않던가. 꼭지에서 떨어지는 순간 철저히 차별 세상이다.
   모든 가지들이 대체로 서너 개의 귤을 매달고 있지만 어떤 가지는 귤이 너무 많이 달려서 곧 부러지기라도 할 듯이 휘늘어져 있다. 그러고서도 성과成果가 되도록 끝까지 키워낸 가지가 가상하게 보인다. 그동안 비바람인들 없었으랴. 금년처럼 가뭄이 심한 해에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양분을 공급하기에도 가지는 버거웠으리라. 귤나무들을 보고 있으려니 부모님 생각이 난다. 우리 6남매의 어린 자식들이 마치 저 가지에 오종종 달린 감귤들 같지는 않았을까.
   그때는 지금 같지 않게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그 많은 자식들을 키우느라 여가생활이며 좋은 옷을 입는 따위의 호사는 엄두도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매일같이 밭일을 하시느라 새벽부터 저녁까지 밖에서만 보내시던 부모님. 굳은살이 많은 까칠까칠한 손에 손톱인들 편히 자랄 수가 있었으랴. 그러면서도 자식들은 커가는 대로 대처로 보내 공부를 시키셨으니 몸이 무쇠라도 견디기가 버거웠으리라. 엄마 치마폭에 매달려 먹을 것 달라고 칭얼대는 자식들처럼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귤들을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낸다. 홀가분해진 가지는 이제야 허리를 뻐근하게 펴며 원래 위치로 돌아간다.
   귤들은 대체로 윗가지에 있는 것들은 잘 익었어도 아래 가지에 있는 것들은 햇빛 때문인지 더디 익는 것 같다. 그래도 개중에는 괜찮게 익어 보이는 것들이 있어 이리저리 아래도 살핀다. 그러노라니 어느 나무 밑동 부분에서 파란 가시나무 줄기가 수염처럼 새어나와 있는 것이 보인다. 주위를 살펴보니 한 나무만이 아니다. 문득, 오래전에 아버지가 감귤품종을 개량하고 있다던 말씀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때 기존 나무를 없애고 탱자나무에 새 품종으로 접붙이기를 했던 곳인 모양이었다. 그러시던 아버지가 그 결실도 보기 전에 돌아가시고 그동안 나무는 성목이 되어 우람하게 커졌다.
   나는 줄곧 서울에서 공부와 직장생활을 하느라 고향에는 자주 들를 기회가 없었다. 부모님이 떠나시고 나서도 밭은 줄곧 다른 사람이 경작하고 있었다. 직장에서 퇴직하고 몇 년이 흐른 뒤에야 고향에 와서 올해 처음으로 밭을 돌려받고 첫 감귤수확을 맛보는 것이다. 부모님의 손때가 묻은 밭에서, 그때 쓰시던 수레를 끌며, 염치없이 수확만 하고 있는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주시고도 보답은커녕 애오라지 자식 걱정만 하시다가 돌아가신 부모님이 그립다.
   귤나무 숲의 향기가 부모님이 보내시는 향기 같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