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비평 2014년 1월호, 작품론I 박재식의 수필세계] 에세이로 융합한 인간, 사회 그리고 자연 수필에 의義로운 보행 - 박양근
"작가란 어디에 거居하든 작품 속에서 산다. 전·후반기에 걸쳐 발표한 4권의 수필집과 1권의 수필선집은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책력冊曆이면서 공적으로는 한국수필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2011년 ‘수필과비평사’에서 발간한 평론서 ≪박재식의 좋은 수필 감상≫은 대표수필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해낸 “한국수필의 오디세이”로서 한국 수필사 연구에 더없이 소중한 자료로 남아있다.
박재식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는 지금도 ‘열려있는 창’ 곁에서 ‘안경알을 닦으며’ ‘대장닭’의 위엄과 자존으로 한국수필 문단을 옹호하듯 지켜보고 있다. 그가 <새까만 밤>이라고 불렀던 환멸적인 수필 풍토가 사라지고 언젠가는 날 밝은 수필이 도래할 것을 자작시 <오월>의 첫 구절 “푸른 언덕에 서면 종달새가 되고 싶구나.” 하는 심정으로 기다린다. 만일 한국수필의 여명이 앞당겨진다면 박재식, 그분이 있음으로 그럴 것이다. 마땅히 그럴 것이다."
에세이로 융합한 인간, 사회
그리고 자연 수필에 의義로운 보행 - 박양근
박재식 선생은 문단 출입이 빈번한 작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수필이 어떤 글이어야 하는 당위성을 생각할 때면 누구나 그를 떠올린다. 그만큼 진정한 수필의 얼굴을 가진 문필가로 평가받는다. 1982년에 상재한 첫 수필집 ≪바람이 머물고 간 자리≫의 책머리에서 “웬일인지 오랜 방황 끝에 제자리에 돌아왔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고백하였듯이 그의 문학적 원적은 수필이다. 또한 세 번째 수필집 ≪대장닭≫의 결미에 붙은 <환상의 나비를 쫓아>야말로 그의 수필을 구현하는 초자아로 간주할 수 있다.
어릴 때 꽃밭에서 나비를 쫓던 생각이 난다. 꽃잎에 앉은 노랑나비를 잡으려고 가만히 다가서면 나비는 사뿐히 날아올라 고운 날갯짓을 하며 멀리 가버린다. 다시 앉은 나비를 보고 가슴을 설레며 다가가면 이내 또 고운 날갯짓으로 훨훨 날아가 버린다. 그 고혹적인 날갯짓이 마치 따라오라는 손짓처럼 얄밉기만 하다.
박재식은 ‘내가 걷는 문학의 길’을 환상 속의 나비에 비유한다. 한때 시와 소설을 썼지만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돌아온 곳은 수필이다. “숙명의 길”로서 수필만이 그의 문학적 열정을 소진시켜 주었다. 오죽하면 첫수필집 서문에서 수필 쓰기를 “내 존재의 확인 행위이며 진실의 각혈”이라고 말할까.
인간 박재식의 삶은 아주 단순하다. 1928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하여 15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에서 중학교에 다녔다. 해방 후 귀국하여 경남상고에 편입하였고 1949년 홍익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1950년부터 경찰전문학교에 입교하여 1982년 서울시경국장으로 퇴임하였다. 문단 이력에서 보면 독서에 몰입한 조숙한 문학 소년이었고 고등학교 시절에 문예부를 만들었고, 스무 살에 ≪문학청년≫에 단편 <들국화>를 발표함으로써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1954년 월간 ≪새가정≫에 첫 수필, <나의 잊을 수 없는 소녀>, 1974년 ≪월간문학≫에 <아아 청자>를 게재하여 문단에 등장하였다. 이후 한국수필문학진흥회 부회장 외에 이렇다 할 문단 자리를 차지한 적이 없고 30여 년의 연륜에 비해 4권의 수필집을 상재하는 데 그쳤지만 박재식의 수필세계는 양적으로 논쟁을 뛰어넘는다.
이유는 무엇일까? 단 한 가지다. 수필의 올바른 진로를 제시하고 “순수성의 추구”를 단심丹心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문단과 문학에 대해 좌절에 가까운 회의에 빠졌다.”라고 탄식하면서도 “죽을 때까지 수필을 붙들고 혼신의 힘을 다한다.”라는 결사決死의 위엄을 잃지 않았다. 한국 문단도 본격수필의 자존을 옹호하려는 그의 문학적 실존을 인정하였다.
박재식 수필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 첫 수필집 ≪바람이 머물고 간 자리≫(1982), 제2수필집 ≪열려 있는 창≫(1988), 제3수필집 ≪대장닭≫(1997), 제4수필집 ≪안경알을 닦으며≫(2007)와 선집 ≪세월의 바람 속에≫(2007)는 그의 수필시학을 선형적으로 발전시켜나간다. 첫 번째는 물방울 화가로 알려진 김창열 화백의 그림을 표지화로 삼고 있다. 두 분은 경찰직에 투신하면서 그림과 문학을 위하여 제주도를 첫 부임지로 자원하였고 평생 서로의 예술에 격려와 관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미술을 위하여 직장마저 던져버린 김창열 화백의 용단을 자신의 문학적 순애를 지키는 방파제로 삼았다. 둘째는 작품의 출처와 발표 연도를 한 편도 빠뜨리지 않는 엄격한 작품 관리와 애정을 보여준다. 셋째는 수필집 후반부마다 수필론을 덧붙여 이론과 실재의 일치를 이루려 하였다. 넷째는 사회문제와 세태를 논하는 비평 에세이로 진정한 산문정신을 옹호하였다. 다섯째는 각 수필집이 나름의 특징을 지니면서 작가의식을 발전시켜 나간다. 이런 공통점을 종합하면 작가 특유의 수필시학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박재식은 항상 수필도 문학인 이상 “나름의 내용과 형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누누이 말한다. <수필로 쓴 수필론>에서 밝혔듯이 그가 진정 쓰고 싶은 수필은 “애완愛玩의 문장으로 다양한 세계를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도량” 같은 글이다. 이것이야말로 “수필이 갖는 미덕”으로서 한국수필에 남긴 그의 커다란 족적을 입증해준다.
수필을 위한 기다림과 개화
제1수필집 ≪바람이 머물고 간 자리≫는 30년 공직생활 동안 수행한 문학적 결실이다. 5부로 구성된 작품들은 작가로 나아가는 과정을 통시적으로 공시적으로 보여준다. 그중에서 <나의 잊을 수 없는 소녀小女>(1954)는 열세 살 박재식이 학급 ‘짱’의 협박에 굴복하여 어느 소녀를 도둑으로 몰아 뺨을 때렸지만 끝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한 죄의식을 고백한다. “버들가지에 물이 오를 무렵이면 그 소녀의 서늘한 눈동자를 잊을 수 없다.”라는 트라우마를 26세의 청년기에 발표하고 첫 수필집의 앞자리에 둔 이유는 부끄러운 과거를 토로하지 않고서는 수필에 진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바람이 머물고 간 자리≫는 인생이라는 바람이 남긴 갖가지 애환을 담고 있다.
나의 인생에 한 편의 시를 남겨주고 떠난 바람도 있고, 나의 가슴에 못을 박고 돌아선 사람도 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자국이 생긴다. 처녀설處女雪에 판 박힌 첫 발자국 같은 것도 있고 진창 속의 어지러운 자국도 있다. …… 숱한 바람 속에서 풍화한 나의 인생도 머지않아 사라져 갈 한 올의 바람이라 생각하면 그들을 쫓아 바라보는 하늘처럼 마음이 허허롭다.
-<바람이 머물고 간 자리> 일부
바람이 그에게 남긴 것들은 그리움, 상실, 연민과 같은 상처들이다. 그에게 바람은 인생 자체로서 <실연부失鳶賦>, <비봉산 시절>, <先親考>, <해리의 죽음>, <아아 청자>, <淸明 날> 등은 “나의 인생은 바람을 헤치고 온 것 같다.”라는 감회를 언어로 구현해낸 작품들이다. 나아가 그에게 바람은 문학적 영감을 불어넣은 영매라는 점에서 삶과 문학의 동질성을 남달리 보여주고 있다.
제1수필집에 수록된 사회적 에세이는 후반기에 비하며 양적으로 미흡하게 보인다. 하지만 3급 연초로 전락한 청자 담배에 대한 향수를 다룬 <아아 청자>에는 서민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고, 사회의 부속품이 된 인간의 왜소함을 동정하는 <명함>과 월남 보트피플에 대한 인간애를 표방하는 <흘러온 망국민들>은 당대의 국내외 정세를 거론하고 있다. 나아가 <현대인의 사랑>은 인간의 실존을, <불도저 행정>이 개발의 병폐를 다룸으로써 앞으로 그의 사회적 에세이가 지향할 방향을 제시해준다.
박재식은 일상적인 삶을 다루든 사회적 현상을 다루든 독자의 가독성을 중시한다. 시인이 시로써 삶의 일회성을 극복한다면 수필가도 “세상에 태어난 위안이며 보람”으로써 삶의 무한성을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퇴직, 가족의 죽음, 황혼이라는 세상살이조차 “황량한 사막 속의 행로”이며 “나는 (문학에 대한) 많은 기다림 속에서 살아왔다”고 확신하면서 심미적 소재로 재창조한다. 그에게 수필은 다름 아닌, 기다림의 꽃인 셈이다.
제2수필집 ≪열려 있는 창≫에 수록된 작품은 1982년부터 1988년까지 쓴 것이다. 이 무렵은 퇴직 후 손해보험협회 전무로 재직하면서 문학적 경력을 굳혀가던 시기로서 작품은 자연에 대한 서정적인 관조와 사회의 부조리를 이성적으로 “따지는 글”로 양분되어진다. 경직된 공직자에서 감수성이 풍부한 작가로의 변신을 보여주는 감칠맛 나는 요지를 뽑아 글의 주지主旨와 사상을 명료하게 각인시키려는 편집 노력도 돋보인다.
제1부 <낙엽의 계절>은 전원으로의 동경심을 소재로 묶었다. 산골에 은거하려는 꿈을 바탕으로 산, 달, 눈, 낙엽, 신설新雪을 지켜보는 그는 ‘세파가 할퀸 자국’을 치유하려는 수필화자로서 등산이나 낚시를 한담으로 읊기보다는 묵상의 시간으로 여긴다. 그 점에서 <조계사 앞뜰>은 도시 공간을 명상의 터로 승화시킨 수작에 해당한다. “법당이나 석탑 같은 축조물보다 경내의 뜰에 더 매력”을 느끼려면 독자도 시공의 이미지를 제대로 살피는 외에 달리 길이 없다.
본당 앞에 바람이 하얗게 쓸어간 빈 뜨락이… 불가에서 말하는 정토淨土를 연상시켜 준다. … 애오라지 남아있는 빈 뜰이 숫제 불문의 정토를 간직하는 상징적인 공간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부처님의 열린 마음의 텃밭 같기도 하다.
-<조계사 앞뜰> 일부
조계사 앞뜰이 마음을 비우는 구역으로 묘사된다. 각진 대리석 건물보다 “우주 속에서 명멸하는 사상事象”을 명상할 수 있는 자연의 뜰을 더 원하는 박재식은 토포필리아라는 지평을 여타 작품에서도 부단하게 넓혀간다. <가을산의 사연>에서는 황혼기의 인생을 뒤돌아보고 ‘도시의 달’로 고요한 시골 밤을 지켜주던 달빛을 재현한다. 그는 그리운 사람의 이름을 부르기에는 가을산만 한 곳이 없고, 글쓰기에 더없이 좋은 가을을 “곱게 늙은 초로의 여인 같은 정갈한 몸매”로 육화시킨다. “가을의 적막을 모르는 사람과 더불어 어찌 인생을 이야기 하랴.”라고 <가을의 부처>에서 토로하는 화자를 만나면 그가 곧 조계사 앞뜰을 지켜보면서 묵상의 선禪에 빠진 박재식임을 알아차릴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공직을 통해 인생이 얼마나 고되고 험악한가를 목격해왔음으로 삶 자체가 “험준한 등산길”임을 부정하지 못한다. 현실에서 비켜나고 싶을지라도 “의자에 먼저 앉기” 위해 신호위반을 저지르는 세상 풍토를 개탄한다. 그래도 산문정신을 구현하려는 글쟁이로서 그는 수험생들이 방황을 <세모의 거리에서>, 심각한 환경문제를 <요즘의 심산유곡>에서 거론하면서 세상을 개선하려는 작품을 연이어 발표하였다.
<아부의 미립>은 아부 근성을 필요악으로 간주한 사회적 에세이이다. 오랜 공직기간 동안 터득하지 않으려 한 것이 있다면 아부라는 처세술이었다. <선친고>에 적었듯이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했고 평생 구차한 소리를 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핏줄을 이어받은 그에게 아부는 결코 넘지 않아야 할 폴리스 라인이었다.
아부는 권력의 표피에 닿는 쾌감이다. 권력 속에 도사리는 오만성에 작용하여 그 본능을 충족시키는 운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강자와 약자, 통치자와 피통치자,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존재하는 인간사회에 있어 지극히 자연발생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심리적 관계가 아닐 수 없다.
-<아부의 미립> 일부
박재식에게 전원은 이상향이고 도시는 악의 구역이다. 전원은 자연의 수필을, 도시는 사회수필을 태동시킨다는 점에서 그의 사회성 에세이는 서정을 설리로, 개인 신변을 사회현상으로, 자연 관조를 사회가치 구현으로 변환시켜주는 영역에 속한다.
제5부 <수필가>는 수필론을 묶은 장章이다. 출판공해를 다룬 <자비출판>, 작가가 자신을 감출수록 글맛이 난다는 <글과 사람>, 독자의 적극적 글 읽기를 권장하는 <남의 글 읽기>는 수필을 위한 계몽적 주제를 공유한다. 그중에서 “비바람에 휩싸여 날지 못하는 백조”에 김창열 화백을 비유한 <상처 입은 백조>는 예술을 위한 에스프리가 가득 찬 문헌적 가치를 지니며, <수필가>는 발표 지면이 대학교수, 정치인, 법조인, 연예인들의 신분 과시용이 되어버린 현실을 개탄한다. 그럴수록 수필가가 진정으로 하여야 할 일은 오직 <글 쓰는 일> 뿐이므로 그는 문장과 마음을 닦아 “순수한 문학의 수맥을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수필에 대한 박재식의 개안과 결실을 참으로 다채롭다. 이태준, 최계락을 사사하고 사회의 모순으로 여타 사회적 에세이를 이루어낸 점에서 보면 그의 전반기 삶은 수필가의 정체성을 정립한 시기로 정의할 수 있다.
전원에 정착한 노수필가의 담론
월악산 누옥으로 이주하기를 바라던 박재식은 1991년 마침내 소연재素然齋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그는 서울을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창작에 몰두하고 1997년에 ≪대장닭≫을 발간하면서 전반기와 다른 미적 세계를 구축하였다. 첫 작품 <정리여수情理如水>부터 마지막 작품 <환상의 나비를 쫓아>에 이르기까지 자연에 대한 명상과 수필계에 대한 애정을 지켜온 모습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눈이 지치면 버릇처럼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본다.”라는 구절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월악산 풍경은 사계절 내내 다채로운 글감을 제공하였고 세태에 나붓대지 않는 정靜과 정正의 에세이를 펼치게 하였다. <여수>, <매미소리>, <밤 줍기>, <실록을 바라보며>, <개를 키우며> 등은 자연에서 체득한 영감과 생의 진실을 구현한 작품에 속한다.
<대장닭>은 자타가 공인하는 박재식의 대표작이다. 그는 인간계를 가능한 멀리하면서 닭, 진돗개, 소, 야생 꿩과 같은 자연계를 가까이하였다. 그의 주된 관심은 장닭에 쏠렸다. 그 결과 “사위를 제압할 위풍, 식솔을 보살피는 책임, 권속을 다스리는 카리스마, 대권을 거머쥔 혈통”이라는 담론을 대장닭에 부여하는 동안 자연과 인간을 일치시키는 통섭이 이루어졌다.
잘생긴 허우대로 뭇닭을 거느리며 뜨락과 텃밭을 무소부지無所不至로 활보하는 모습은 가히 사위를 제압하고 남음이 있을 만큼 위풍이 당당하다. 그의 걸음걸이를 관찰하면 장부다운 풍모가 한창 돋보인다. 간대로 서두르는 법 없이 한 자죽 한 자죽을 점잖게 옮겨놓는 발걸음이 지체 높은 옛 선비의 그것을 방불케 하고, 유난히 큰 볏을 연신 너풀거리며 기웃기웃 좌우를 경계하면서 걷는 품은 그 옛날 투구와 패도를 장착한 장군이 군졸을 이끌고 앞장서 가는 위용을 닮았다.
-<대장닭> 일부
박재식은 대장닭에서 문무를 겸한 이상적인 남성상을 찾았다. 어떤 종일지라도 수컷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절대조건을 제시한다랄까. 게다가 독자가 수필가라면 닭의 품격보다 위풍당당하고 호방한 문장에 더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숙독하고 오랜 편집활동을 거치면서 배양된 박재식의 문체와 에세이의 진수가 녹아내린 점에서 <대장닭>은 한국산문의 백미白眉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개에 관해서도 많은 수필을 썼다. 그는 수필 소재로서 적합지 않다고 여겼는지 모르나 가족을 좀처럼 묘사하지 않았고 ‘사랑한다’는 어휘의 사용에도 매우 인색하였다. 그러면서 <진숙이의 출산>, <갑돌이의 실종>, <식구들>, <똥개>에서 애견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줄 뿐만 아니라 애꾸눈 갑돌이를 “내가 사랑하는 우리 집 강아지”로 부르기도 하였다. 가난한 시골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고 육신까지 내어주는 개의 일생을 지켜보면서 세상에서 의지할 만한 건 개뿐이라고 여겼을까. 아무튼 사회의 이기주의에 염증을 느끼고 순후한 시골로 찾아들어간 심사를 해학적으로 풀어낸 필력이 절정기를 맞이하였다. “은둔과 낙향과 현실 도피”가 도연명의 <귀거래사>처럼 월악산 처소를 문학적 공간으로 승화시켜 내었다.
‘제3부’와 ‘제4부’는 사회의 부정적인 요소를 저널리즘의 시선으로 직시하고 완숙한 문장으로 펼친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혼탁한 정치풍토부터 결혼풍속까지, 올림픽 개최부터 남성 외도까지 다룬 그의 필력이 사회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있다. 정치적 모순을 비판한 <민주, 독재 그리고 정치>가, 상류층의 풍속을 풍자적으로 담아낸 <마담 뚜>와 <예식장에서>가 일관된 사회의식을 보여주는 가운데 시민계몽으로 나아간다. 딱딱한 얼굴 표정을 바꾸도록 조언하는 <웃는 얼굴>, 화장실을 ‘뒷간’으로 부르는 조상의 슬기를 다룬 <화장실>, 포옹과 악수의 차이를 논한 <포옹> 등은 시민독자에게 교양과 매너를 제시하고 있다.
제5부에 배치된 문단과 관계된 이야기도 주목할 만하다. 권위가 무너진 문학상과 저명인사들의 대필을 문단의 주된 병폐로 지적한다. 이때 박재식이 제안하는 해결책은 단순하면서 참으로 무겁다. 그는 수필이 “환상의 나비”일지라도 문학의 길을 중단할 수 없다. 문단이 때로는 “이데아에 대한 환멸”로 비칠지라도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는 그에겐 문학만이 지닌 순수성과 꿈을 구현해낸다.
월악산 집필 동안 두 번째로 발표한 제4수필집 ≪안경알을 닦으며≫에는 “박재식 에세이집”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에세이집이라는 ‘라벨’은 자신의 수필에 대한 재검정의 봉인에 해당한다. “서정적인 요소가 많은 글은 수필, 지적知的 요소가 강한 것을 에세이”라고 구분하면 자신의 수필은 에세이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 근거를 찾아보면 우선 일제 강점기와 분단조국과 공직을 거친 그는 체질상 서정보다는 사회적 설리에 더 적합하다고 여겼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수필이라는 이름으로는 글의 진의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는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는 추측이다. 아무튼 “박재식 에세이집”이라는 부제목이 그의 수필 노선을 보다 분명히 해주고 있음은 틀림이 없다.
제4수필집의 특이점이라면 노령에 대한 해석일 것이다. 그는 노인 건강, 배우자의 사별, 노령기의 재혼이라는 모티프를 ‘나도 늙었구나!’라는 개인적 소회가 아니라 “세월이 불가항력으로 세운 증표”라는 인문학적 기표로 간주한다. 그래서 <안경알을 닦으며>와 <어느 노수필가의 하루>는 고백적 담론이면서 초시간적인 인격체를 구현한 작품으로 간주된다. 그 외 아들과 등산하면서 느낀 생각을 적은 <늙음과 기쁨>, 노인들의 재혼을 다룬 <말동무>, 또래의 죽음을 기리는 <생전의 얼굴>, 건강 문제를 제기한 <칠십견> 등은 70~80세대의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회적 관심이 위축된 것은 아니다. 후반기에 나타난 변화라면 사회적 관심이 정치 분야에서 환경과 생태로 이동한 점이다. 수도권의 환경문제와 사회 부패에 대한 염증을 적은 <문명의 독>, <서울 허파가 죽어간다>, <악몽>, <안보 유감>과 같은 글이 여기에 속한다. 그가 어디에 있든 인간존재를 규명하고 자연을 성찰하고 사회비판을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박재식 에세이집”은 충분한 당위성을 얻고 있다.
제5부를 구성하는 <수필의 문학성>은 지금까지 단편적으로 발표한 수필론을 정리한 완성판이다. 수필은 문학성과 서정성 외에 제재의 다양성과 지적 정신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제시하는 가운데 “인간은 언어와 더불어 사유하는 존재”이므로 문장의 진수에 다다르고 “인간적인 사랑의 정신”을 가질 것을 조언하였다. 이런 수필론과 문장론과 수필가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돌아보는 일생의 문학>은 노수필가의 회고담이면서 문학 인생의 프롤로그라 하여도 부족함이 없다. “나의 인생에서 문학의 르네상스(?)를 맞은 것은 뜻하지도 않게 수필이라는 장르를 붙잡았던 1974년”이라고 회상하는 박재식 선생이 어느덧 여든을 바라본다. 노쇠한 기력 탓으로 예전만큼 수필을 쓰지 못하는 그의 현실이 우리에겐 야속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표피주의 때문에 수필에 대한 그의 애정은 더욱 빛을 밝히고 있다.
그는 서서 지켜본다
박재식 선생은 지금 용인에 산다. 노령 때문에 창작의 돛을 거두고 한가로운 삶을 향유하고 있다.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돌투성이였던 한국수필을 옥토로 일군 수필 농부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휴식일 것이다.
작가란 어디에 거居하든 작품 속에서 산다. 전·후반기에 걸쳐 발표한 4권의 수필집과 1권의 수필선집은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책력冊曆이면서 공적으로는 한국수필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2011년 ‘수필과비평사’에서 발간한 평론서 ≪박재식의 좋은 수필 감상≫은 대표수필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해낸 “한국수필의 오디세이”로서 한국 수필사 연구에 더없이 소중한 자료로 남아있다.
박재식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는 지금도 ‘열려있는 창’ 곁에서 ‘안경알을 닦으며’ ‘대장닭’의 위엄과 자존으로 한국수필 문단을 옹호하듯 지켜보고 있다. 그가 <새까만 밤>이라고 불렀던 환멸적인 수필 풍토가 사라지고 언젠가는 날 밝은 수필이 도래할 것을 자작시 <오월>의 첫 구절 “푸른 언덕에 서면 종달새가 되고 싶구나.” 하는 심정으로 기다린다. 만일 한국수필의 여명이 앞당겨진다면 박재식, 그분이 있음으로 그럴 것이다. 마땅히 그럴 것이다.
박재식 수필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수필문학에 있어서의 모랄은 무엇일까? 필자 나름의 결론부터 말하면 인간성의 근원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랑의 정신이다. …… ‘인간성이 근원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랑의 정신’이란 어떤 것일까? 가련한 것에 대하여 연민을 느낄 줄 알고, 아련한 것을 느낄 줄 알고, 불의를 미워할 줄 알고, 아울러 자기 속의 허울과 진심까지도 사랑할 줄 아는 인간다운 진솔한 마음 바탕이 그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신이 품격화 된 작가라야 그 분신인 작품을 잘 옮길 수 있는 것은 이치의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작가정신으로서의 모랄> 일부
박양근 ------------------------------------------------------
부경대 영문과 교수. 문학평론가, 수필가, 칼럼니스트, 영남수필학회장. 수필집: ≪길을 줍다≫, ≪서 있는 자≫, ≪문자도≫ 등. 저서: ≪사이버리즘과 수필미학≫, ≪좋은 수필 창작론≫,≪미국수필 200년≫ 등. 수상: 신곡문학대상, 구름카페문학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