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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수필과비평 2014년 01월호, 지상에서 길찾기] 고구마와 아버지 - 김신희

신아미디어 2014. 9. 22. 15:47

"쇠고기 한칼이 아버지 손에서 삶의 희로애락을 읊조리며 위태롭게 그네를 타고 있었으나 이 또한 아버지와 함께 무사히 귀가했다."

 

 

 

 

 

 

 고구마와 아버지        김신희


   1. 아버지의 레퍼토리


   설 쇠기가 바쁘게 아버지는 통가리에서 씨고구마를 고르신다. 얼마 후 남새밭에는 납작 엎드린 고구마 온상(비닐하우스)이 만들어진다. 아버지는 온상을 만드는 데 여간 공을 들이는 게 아니었다.
   먼저 땅에 직사각의 큰 도형을 그어놓고 네 귀퉁이에 말뚝을 박는다. 말뚝에 새끼줄을 두르고 땅을 적당한 깊이로 파낸 후 흙을 부드럽게 고른다. 두엄을 넣어 흙을 성글게 덮은 다음 그 위에 고구마를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놓고 흙을 도톰하게 덮어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닐문짝을 덮고 이엉을 얹으면 초가지붕을 닮은 온상이 완성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온상 안이 여간 궁금한 게 아니었다. 과연 고구마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몇 주가 지나자, 이엉이 걷히고 비닐문짝이 열렸다. 앗! 온상 안의 연둣빛 고구마 싹을 보는 순간 왜 그렇게 가슴이 설레던지, 그것들 하나하나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로 가슴 벅찼다. 그 이후로 땅을 들추고 나오는 모든 싹을 보는 내 감동은 그때의 감동과 경이로움으로 퇴색되지 않는다. 그것은 생명의 소리 없는 함성으로 솟아오르는 환희였다.
   씨고구마를 고를 때이거나 온상을 만들 때이거나 혹은 고구마밭 북돋아주기를 할 때 아버지는 늘 오선지 위의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던 이야기 그때는 귀담지 않았던 아버지의 레퍼토리다.
   “시대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땅 파서 씨 뿌려 밥 먹고 사는 일처럼 마음 편한 게 없는 겨.” “게으른 놈, 땀 흘리기 싫어하는 놈은 밥도 먹지 말아야 혀.”라는 등 철없던 시절, 자식들 마음밭에 떨어지지 못한 아버지의 이야기는 뙤약볕 황토밭에서 여물고 있었다.
   ‘일하는 자만이 먹을 자격이 있다.’라고 하는 이 평범한 진리는 아버지에게 있어 확고한 신념 같은 것이었다.
   씨고구마를 고르며 시작되었던 아버지의 레퍼토리는 다시 들을 수 없기에 간절한 그리움이 된다.

 

 

   2. 왕대포 한 잔


   우리 마을 고구마는 근동에서도 알아주는 마을의 공동 수입원이었다. 황토밭 고구마로 알려지면서 대전이나 서울의 중간상들이 마을로 내려와 계약을 하자고 할 정도였다. 소위 밭떼기다. 그 계약이라는 게 구두계약이어서 계약금이나 계약서가 오갈 리 없고, 계약서 없는 약속을 확증받기 위해 그들은 아버지를 장터의 ‘국밥집’으로 초대하는 친절을 베푼다. 아버지는 그들을 따라나섰고 그리고 국밥집의 왕대포 몇 잔에 당신의 경제관념은 운신의 폭을 잃는다. 고구마 캘 때쯤 혹여 더 나은 고구마값이 형성된다 한들 차마 깰 수 없는 약속이 된다. 그것이 무슨 법적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어쩔 것이여. 약속은 지키자고 하는 것이여!”라고 하는 아버지의 소신은 늘 하나를 손해 보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기에 고구마를 캐는 날, 일찌거니 부산을 떨고 나서는 이들은 고구마밭 주인인 아버지도, 고구마를 캐러 온 놉도 아닌 그들 외지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고구마밭 저 아래 국도변에 트럭을 대놓고 고구마 한 가마 ‘백 킬로’의 눈금을 확인하는 데 주력했다. 정확한 눈금을 사수하려는 아버지와 후한 눈금을 요구하는 그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곤 했다.
    두 진영 사이에 애를 먹는 건 대저울에 고구마 가마를 반복해서 들어 올려야 하는 이들이다. 물론 이때도 대차지 못한 쪽은 아버지다. 아버지는 생각했을 것이다. 국밥집에서 누렸던 호의를 봐서라도 얼굴 붉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중요한 건 이날의 고구마 수확량이 예년과 달리 풍작이었다는 것과 고구마의 때깔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아버지는 붉은색 ‘상’자가 선명한 트럭 위의 고구마 가마니를, 멀어져가는 트럭을, 한동안 바라보고 계셨다.
   이튿날, 때마침 장날이었다. 아버지는 이날 문제의 그 국밥집으로 윗집 근표 아버지와, 윗집의 윗집, 명순이 아버지를 불러내셨다. 그리고 그 집의 메인 메뉴인 ‘국밥에 왕대포 한 잔’을 기분 좋게 쏘셨다. 아버지는 이날 한껏 폼을 잡으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동네 고샅이 좁을세라 모처럼 갈지자를 그리며 호기만발하여 귀가하셨다.
   쇠고기 한칼이 아버지 손에서 삶의 희로애락을 읊조리며 위태롭게 그네를 타고 있었으나 이 또한 아버지와 함께 무사히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