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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계간문예 2013년 겨울호, 특집 도서관·문학관 파견 문학작가-푸른초장공공도서관 활동작가] 빈 마당과 빨랫줄 외5편 - 서지월

신아미디어 2014. 9. 17. 23:26

2013년 도서관 문학관 문학작가 지원사업으로 푸른초장공공도서관에서 작가로 활동하신 '서지월'님의 시 6편을 소개합니다.

 

 

 

 

 

 

 빈 마당과 빨랫줄  외 5편         /  서지월


어제는 마당가에 빨랫줄을 치고
속옷가지 널어놓은 그  빨랫줄에
오늘은 속옷가지들 걷어냈네

 

말 없는 속옷가지들 무슨 잘못 있다고
비바람에 치이고 이리저리
비벼지고 구겨져 빨랫줄 오르내리는가

 

극락이 저 빨랫줄 너머 있다면
새들은 나뭇가지 옮겨 앉으며
떠나지 않는지, 왜 나는
무대책으로만 살아가는지

 

밤이 오면 달님이 명경 하나 들고
문안 들겠지만 그도 늘 설움덩이로
일그러지기도 하고 차오르기도 하며
이 세상 떠나지 못하는 것 보면
당분간 빨랫줄은 심심할테고
빈 마당에는 아무 일 없을 것이다

 

 

 

 

 버려진 장독


장독이 저홀로 태아처럼 웅크리고 앉아
배고픈 아이와 같이 엄마를 기다리는 것은
찔레꽃 허옇게 흩뿌리던 비탈길에 버려진
그 후부터였다

 

新婦의 다홍치마빛 석류꽃과
누이의 눈썹같이 맑은 초승달이
자취 감춘 후로 草家는 쓰러지고
인적마저 끊어져 풀벌레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난데 없는 총성이 하늘을 울렸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투기가 점령하면서부터
온통 쑥대밭 되어버린 페허가 잘 말해주고 있었다

 

고향도 실향도 그에게는 하나의 텅 빈 가슴일 뿐
이제는 김치도 된장도 옛추억일 뿐이었다
누구하나 그를 수습해 양지 바른 곳에 안장하지 못했다

 

 

 

 

 두만강변 옥수숫대


두만강변에는 지금
옥수숫대가 하늘 치솟아
옥수수알 배어 통통하겠다
누굴 기다리는지 멀뚱하게
줄지어 서서 푸른 의상 바람에 날리며
흘러가는 두만강 바라보겠다

 

두만강변에는 지금
바람이 전해주는 말과
구름이 떠서 서성이는 심사
옥수숫대 저들은 알아
허리끈 불끈 졸라매고
옥수수알 단단히 키우겠다

 

두만강변에는 지금
옥수숫대들이 줄지어 서서
수 천 수 만 독립군들
이름없이 숨져갔듯이
옥수수알 단단히 키워내어
세상에 내보내는 일
그것으로 마음 달래며
흘러가는 두만강 바라보겠다

 

 

 

 

 아,해란강!


아, 해란강!
지금은 누이들 빨래터도 사라져
누가 버려둔 것 같은
남루한 옷자락 아니면
목에 둘렀던 흰 수건,
주인없이 저 혼자
누워있는 듯도 한
돌아간 사람들 마저
영영 돌아오지 않는,
그래서 흐르다가 멈춘 듯한
아, 해란강!

 

지켜보는 일송정은
외로움 마저 순리로
받아들이는 듯 말 없으니

 

나뭇가지 나뭇잎들만 살아 움직이며
비껴가는 새의 울음소리
손바닥 위에 받아들이고 있다

 

 

 

 

 용정의 하늘


해바라기가 온 벌판을 물들이는 용정의 하늘
가벼운 몸으로 잠자리는 날은다
나는 가볍지 않은 몸 이끌고 왔건만
용정의 하늘은 해란강을 내려다 보며
아직도 무슨 할 말 남아있는 듯
비를 뿌리다가 구름을 몇 점 흘리고 있다
떠 있는 구름의 心思 알 수 없듯
하늘의 푸른 뜻 뉘라 알리?
땅 위에 구르는 저 馬車는 누가
흘리고 간 것이란 말인가
육중한 모자 눌러쓴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듯 한데
연거푸 담배연기 피워 올리는 것 보면
그래, 아직도 할 말 다 못하고
살아가고 잇다는 증거인 것을!
오늘따라 용정의 하늘이 平安한 것은
수많은 先烈들이 흘린 피의 함성이
들의 꽃으로 피어나 흔들리고 있기 때문일 터,
내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는다

 

 

 

 

 백두산 밤하늘


백두산을 둘러싸고 있는
高峰은 세워놓은 병풍
天池 호수의 물은 한 잔 술
조상신께 제사 드리는 듯

 

쉬임없이 흘러내리는
장백폭포 물소리
온몸으로 엄습하는 기운 느끼며
밤새도록 잠을 뒤척였네

 

울창한 숲과 가파른 길 내려와서
들뜬 내 이마 짚어주고 가시는
백두산 신령님,
열어둔 문틈으로
오천년 하늘의 별들이
와르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네

 

 

 

서 지 월  ----------------------------------------------------

   1955년 대구 달성 출생. 제2회「전국교원학예술상」문예부문에 시 <꽃잎이여>로 大賞에 당선(1985), 시집 : 《꽃이 되었나 별이 되었나》(1988, 나남), 《江물과 빨랫줄》(1989, 문학사상사),《가난한 꽃》(1993, 도서출판 전망),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시와시학사) 외 다수, 현,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 공동의장. 대구시인학교 지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