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비평 2014년 1월호, 환경에세이⑦] 먹이 씨름 - 정연희
"흥부놀부 판에도 놀부를 일러, “-날이 새면 행악질, 제 어미 x할 놈이 삼강을 아느냐 오륜을 아느냐, 굳기가 돌덩이요 욕심이 족제비라…….” 했던 것이 족제비의 대명사였던가. 결국 그 욕심의 끝장이 죽음이건만, 족제비의 결국을 보고도 내 속에 도사린 욕심을 털어버리지 못한다면 나 또한 족제비하고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욕심이 족제비라……. 족제비가 사람 속을 들여다본다면 뭐라 할 것인가."
먹이 씨름 - 정연희
눈 첩첩 겨울밤에 뜨는 달은 더욱 시리고 춥다. 그렇게 겨울 달이 뜨는 밤이면 바람도 사나움을 감추고 별들도 숨을 죽인다. 얼어붙은 겨울 밤 중천에 뜨는 달은 냉엄하다. 드문드문 엎드려 있는 집들도 다시는 깨어날 것 같지 않고 눈꽃을 함빡 피운 겨울나무들도 투명한 얼음 속에서 영원한 잠을 자고 있는 것만 같다. 어디엔가 깨어있는 생명이 있어도 감히 그 달빛을 깨트리고 얼굴을 내어 놓을 존재가 있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음력 정월로 들어선 이 무렵이 날짐승들이나 야산의 식구들에게는 넘기기 어려운 보릿고개다. 먹이가 흔전만전했던 여름에 축적했던 몸의 기름기가 빠지고, 달빛 처연凄然한 겨울밤의 눈밭을 아득하게 지켜만 보아야 하는 철이 이 무렵이다. 달빛에 젖어 더욱 시리고 눈부신 눈밭을 차마 흩지 못하고 굴속에 엎드려 있어야 하는 철이 이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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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생태계를 살아가는 생명들에 비하여 사람의 겨우살이는 어떻게 그리도 욕심스러운지.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 전쟁 후 한동안도 산에 있는 나무를 닥치는 대로 잘라 땔감으로 썼고, 갈잎(솔잎)까지 박박 긁어 밥솥 김을 올렸다. 이제는 수억 년 묻혀 석유가 된 것을 억척스레 뽑아내 앞뒤 가릴 생각 없이 난방에 자동차 달리기에 하늘 나는 비행기에 쓰고 있다. 인생은 따뜻한 방에 앉아 김장김치에 햅쌀떡국에 무엇이든지 먹고 싶은 것을 마음 놓고 먹어가며 천년 만년 그렇게 살 수 있으리라 믿는지 근심도 걱정도 없다.
우리 집의 쌀광에도 여남은 마지기에서 거둬들인 쌀이 자루 자루 채워져 있고, 김치광, 무 배추 파를 쟁인 움막에는 음력 정월이 지나서까지 먹을 수 있는 채소가 그들먹하다. 무공해 농산물이라고 해서 서울에 흩어져 살고 있는 피붙이들이 계약이나 해 놓은 것처럼 쌀이며 채소를 가져다 먹는다. 그러나 남들이 너덧 번 농약을 칠 때 한번 슬쩍 치는 것으로 끝을 내는 저공해低公害일 뿐이지 무공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도 농약 범벅이 된 농산물보다는 나으리라 믿는지 틈틈이 쌀을 찧어 달라는 주문이 이어진다. 시골집 쌀광이라 해도, 극성스러운 들쥐 때문에 옛날식 광으로는 어림도 없어 재래식 온돌방 하나를 잡았고, 쌀을 찧어 달라는 주문이 있을 때마다 가정용 정미기에 쌀을 찧어서 보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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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쌀광엘 들어가 보니 집에서 먹느라고 풀어 놓은 쌀자루의 쌀이 적잖이 흩어져 있었다. 누가 쌀을 펐기에 이렇게 엉망으로 흩여가며 퍼냈을까 마땅찮아 하면서 쓸어 담았다. 그런데 다음날 다시 들어가 보니, 이번에는 풀지 않은 쌀자루 사이에도 쌀이 마구 흩어져 있었다. 그 흩어진 분량이 만만찮은 것이어서 아무래도 사람의 짓인가 보다 하고 다시 쓸어 담았다. 며칠 후 다시 들어갔을 때는 어디선가 심한 노린내가 풍겼다. 심상찮은 냄새여서 쌀자루 사이를 뒤져보니, 쥐똥보다는 굵지만 틀림없는 짐승의 것이 소복하게 쌓여있었다. 혹시 아이들이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의 짓인가 하여 데려다가 코를 들이대고 야단을 쳤지만 개의 짓이라는 확증을 잡을 수가 없었다.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알 수 없어 문을 단단히 잠갔는데도 다음 날 들어가 보니 같은 똥이 또 소복했다.
우리는 그제서야 여러 날 전에 들어간 침입자가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어떤 녀석일까……. 이제 그쯤 쌀을 훔쳐 먹었으면 한동안 견딜 만도 할 테니 그만 나가다오 하는 뜻으로 문을 열어 두었지만 녀석이 나간 흔적은 없었다. 녀석은 계속 쌀을 흩여가며 염치도 없이 똥을 싸놓는 짓을 되풀이했다. “어떤 짐승인지 덫을 놓아야겠어요.” 이웃에 사는 조카사위가 성가셔하면서 덫을 놓자고 했다. 하지만 어떤 짐승인지 알 수 없지만 덫에 잡힐 몰골이 끔찍해서 싫었다. “깊은 겨우살이로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이렇게 몰래 들어왔겠어. 저도 먹을 만치 먹으면 제 권속들한테로 갈 테지. 좀 더 두고 보아…….” 만류를 했지만 “아이고 이모님, 이러시다가 저 쌀 전부 못 먹게 되면 어쩌시려구 그러세요. 이 노린내가 아무래도 심상찮아요!” 조카사위는 굳이 덫을 사다가 덫에다가 멸치를 물려 놓았다.
다음 날 문을 열어보니 코를 들 수 없는 노린내에 비린내까지 진동, 쌀광의 공기는 비상사태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어제 놓은 덫이 보이지 않았다. 무엇이 그것을 숨겨 놓고 어디에 숨어 노리고 있는지 실체를 알 수 없는 일이어서 모두들 숨을 죽였다. “덫부터 찾아요!” 도대체 덫은 어디로 갔을까. 보이지 않는 짐승한테 우롱을 당한 것이 분했는지, 그래도 덫을 사 온 사람이 쌀광으로 들어갔다. 손에는 몽둥이를 단단히 들고서. 조심조심 들어가 여기저기 살피던 그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아이고! 여기가 피 천지네요. 여기 좀 보세요! 여기를!” 풀지도 않은 새 쌀자루 하나가 피로 얼룩졌고 그 근처에도 피가 낭자했다. 드디어 노린내와 비린내는 광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아이고! 맙소사! 세상에 이런 지독한 냄새도 있었는가. 모두들 뒷걸음질을 치며 코를 틀어막았다.
기왕에 뛰어든 조카사위는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듯이 몽둥이로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이런! 이런! 족제비네요! 족제비!” 나는 방문 밖에서 소릴 질러댔다. “그러면 얼른 밖으로 내쫓아! 도망 갈 길을 열어 주어! 어서!” 그래도 방안에서는 후다닥거리며 몽둥이질이 계속되었다. “아이고, 제발 죽이지 말고 그냥 놓아주어!” 그래도 방안에서는 후다닥이 계속되었다. 얼마 만에 조카사위는 덫에 꼬리를 물린 채 축 늘어진 족제비를 몽둥이에 걸고 나왔다. 못 볼 꼴이었다. 죽이지 말랐건만 굳이 죽일 게 무어냐고 원망을 해대니 조카사위는 저대로 할 말이 많았다. “아이고 이모님, 이놈이 어떤 꼴을 하고 있었는지 아시겠어요? 꼬리가 덫에 물린 채 그 덫을 끌고 다른 쌀자루를 공격해댄 겁니다. 그러다가 마대자루를 묶은 끈에 앞발이 묶인 거여요. 이모님이 광 밖에서 하도 살려 보내라고 하시기에 덫째 들고 밖으로 나가서 풀어주려고 했는데, 그 독한 눈으로 나를 째려보더니 꼬리는 덫에 물리고 앞발은 끈에 묶였는데도 껑충 뛰어 달려들지 않겠어요? 이놈이 발만 묶이지 않았더라면 제가 물릴 뻔했습니다. 족제비가 뱀 모가지를 낭창 물고 늘어진 것을 본 일이 있는데 얼마나 모질게 물고 아득아득 깨물어 먹는지 몸서리를 친 일이 있어요. 아이고, 이모님 조카사위 얼굴 살점을 뭉텅이로 잃어버릴 뻔했지 뭡니까.” 너무 끔찍해서 시선을 피했지만, 여러 날을 두고 쌀광을 차지하고 마음껏 쌀을 파먹은 족제비의 털은 황적갈색으로 매끄럽고 부드럽게 빛났다. 입 주위로는 사치스럽게도 하얀 반점으로 치장까지 한 족제비는 그 긴 허리를 늘어뜨리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요동을 쳤는지 꼬리는 반쯤 잘려있었다. 그렇게 꼬리라도 끊고 달아날 일이지, 어쩌자고 꼬리를 물리고도 쌀자루를 파내려고 덤벼들었을까. 사위를 시켜 혹시나 하여 덫에서 풀어 놓았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숨이 끊어진 족제비를 일별하다가 문득, 그 냉연冷然하던 달밤이 떠올랐다. 별들도 숨을 죽이고 바람도 사나움을 감추던 그 춥고 춥던 그 밤. 집들은 다시 깨어나지 않을 것처럼 엎드려 있었고, 짐승들은 굴속에서 그 달빛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던 그 밤에, 족제비 한 마리는 감연敢然히 달빛을 깨뜨리고 눈밭을 흩으며 쌀광을 찾아 숨어 들어갔다. 모두가 숨죽이고 있는 세상을 비웃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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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매대기를 친 쌀가마 하나는 아예 못쓰게 되었지만 나머지 쌀자루에도 노린내가 진하게 배어있었다. 지독했다. 피가 많이 묻어있는 쌀자루를 끌어내고 피가 튄 자루를 바꾸어 넣는 작업은 상당히 오래 걸렸다. 이웃집 개밥에 쓰라고 쌀을 내어놓았지만 쌀을 며칠씩 물에 담가두어도 노린내는 여간해서 빠지지 않았다. 쌀광의 냄새도 여러 달 갔다. 죽은 족제비가 남긴 악취라니-.
족제비의 뒷마무리가 대강 끝난 뒤에도 숙제는 풀리지 않았다. 도대체 그 녀석은 어느 틈으로 들어갔을까? 아무리 뒤져보아도 그럴듯한 틈새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굴뚝을 타고 내려와 구들장 틈을 뚫고 들어왔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숨어들어온 족제비는 제가 들어온 길을 알고 있었을 것 아닌가. 적당히 배를 채웠으면 돌아갔어야 했다. 아니면 나갔다가 다시 배가 고플 때 찾아왔더라도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방안의 그 먹이가 그렇게 탐이 났으면 길을 닦아놓은 뒤에 제 식솔들에게도 그 길을 안내하여 함께 먹었어야 했다. 그렇게 했더라면 길을 아주 잃어버리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혼자서만 욕심껏 마음 놓고 먹다가 길을 잃었지. 배가 부르면 돌아가야 할 길도 잃게 되는 것이 욕심의 속성이다. 쌀을 실컷 먹었으면 한눈이나 팔지 말던가……. 덫에 놓은 멸치까지 맛을 보자고 달려들었으니 걸려들 수밖에……. 무엇이든지 눈에 띄는 대로 삼키려던 욕심의 눈은 저를 살려 주려던 선심도 알아 볼 수 없게 만드는가. 저 살고자 그렇게 사나움만 떨지 않았어도 살아서 돌아갈 수 있었으련만-.
흥부놀부 판에도 놀부를 일러, “-날이 새면 행악질, 제 어미 x할 놈이 삼강을 아느냐 오륜을 아느냐, 굳기가 돌덩이요 욕심이 족제비라…….” 했던 것이 족제비의 대명사였던가. 결국 그 욕심의 끝장이 죽음이건만, 족제비의 결국을 보고도 내 속에 도사린 욕심을 털어버리지 못한다면 나 또한 족제비하고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욕심이 족제비라……. 족제비가 사람 속을 들여다본다면 뭐라 할 것인가.
정연희 -------------------------------------------------
1957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수상: 한국소설가협회상, 한국문학작가상, 대한민국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유주현문학상, 김동리문학상, 펜 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