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인간과문학 2013년 겨울호, 이시인을 주목한다: 이향아論] 일상과 탈경계 - 정신재
"이향아의 일상 다루기는 소시민의 인간다운 매력을 증폭시키는 데 집중된다. 이는 소시민의 권력을 한 단계 높이려는 숭고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녀의 숭고는 날카롭고 뾰족하기보다는 온화하고 다정한 것에 더 집중되어 있다. 일상의 깊은 곳에 숨어있는 에고의 위상을 높이는 것도 그녀 나름대로의 숭고를 세우는 작업이다. 이렇게 볼 때 이향아의 일상 다루기는 극단적인 추醜와 악마성에 떨어져 있는 일부 해체시에 탈경계적인 안목에서 나온 인간다운 매력 찾기 작업이라 할 만하다. 그녀의 일상에 놓인 에고 찾기가 분열증적 양상을 보이는 시들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에고는 이드와 초자아를 가로지르기하면서 터득된 것임을 위에 열거한 시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향아의 에고 찾기에 박수를 보낸다."
일상과 탈경계 - 이향아論 / 정신재
1. 일상과의 놀이
일상을 다루는 것은 1990년대 이후 현대시의 추세다.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것은 소시민의 권리다. 소시민은 일상을 통해서 인간 존재로 태어난 자부심을 느끼며, 인간답게 살아간다. 사소한 취미에 관심을 가지는 키치(Kitsch)도 일상에의 관심에서 나온 것이다. 이향아는 바로 그 일상에 관심을 가진다. 그녀가 다루는 일상은 단순하지가 않다. 뭔가 천 년 신비의 계곡을 다녀와서 느끼는 새로운 기분이랄까. 비온 뒤의 산뜻함과 같은 새로운 일상이다. 그 일상은 때론 전선줄 위에서 내려다본 것이며, 때론 구름 위를 다녀온 듯한 신선함이 있다. 가령 〈도장을 누르며〉와 같은 시도 인간관계를 새롭게 짚어 보는 일상을 소재로 한 것이다.
도장을 누르라고 문서를 들이대면 가슴이 먼저 눌린다
옛날 사글세 자취방을 계약할 때도,
모처럼 내 집을 장만할 때는 말할 것도 없다
몰래 선산을 팔아먹고 있는지
혈서를 쓰는 것처럼 핏방울 돋는 손가락
가끔은 헛것이 둔갑하는 세상에 속지 않으려고
정신 바짝 차리고 도장을 눌렀다
오래 쓰셨네요
그 사람이 내 도장을 보고 감탄하였다
예, 고등학교 졸업할 때 팠어요
나는 그 역사의 길이로 한 가락 하려는 것처럼 말했지만
오래된 것의 향기를 그는 알고 있을까
오래된 것이 아직 소용은 있는가
그 사람의 도장은 크고 묵직했다
나는
웬 일로 자꾸 주눅이 들고
아까보다 더 울렁거리는 가슴으로
인감도장을 눌렀다
많이 닳아서 앞뒤로 흔들면서 벌겋게 힘을 주었다
-〈도장을 누르며〉전문
여기서 “도장”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도장은 개인의 존재와 인간관계를 확인시켜 주는 상징물이다. 도장을 통해서 건물의 소유주가 확인되고, 기업과 기업, 국가와 국가 간에 새로운 신뢰 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도장은 개인의 신용을 나타내는 분신, 한 인격체를 대표하는 상징이 된다. 이 작품에서의 도장은 주체나 에고(Ego)를 상징한다. 에고는 “옛날 사글세 자취방을 계약할 때”, “모처럼 내 집을 장만할 때” 개인의 신용을 확인한다. 에고는 사기詐欺를 조심하며, 계약할 때의 신중함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도장을 찍는 일은 에고의 혼신을 다하고 심혈을 기울인 선택을 확인하는 것이 된다. “정신 바짝 차리고 도장을 눌렀다”.
나아가 “도장”은 주체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화자의 도장은 닳아질 정도로 오래 된 것이다. “그 사람이 내 도장을 보고 감탄하였다”. 여기서 “그 사람”은 타자他者를 상징한다. “그 사람의 도장은 크고 묵직했다”와 같이 타자는 무언가 위대한 힘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하여 타자는 무의식이나 또 다른 존재에까지 확대된다.
나아가 “도장”은 민족을 지켜온 얼을 상징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의기義氣가 배어 있으며, 죽음을 무릅쓰고 정의의 편에 선 사육신과 어려운 시기마다 불같이 일어선 의병들의 혼이 생동하는 것이다. 도장은 “그 사람”과의 만남을 요구한다. “그 사람”은 구름처럼 몰려오는 디지털 문화의 흐름 가운데서 진정성을 요구하며, 에고의 신앙심을 확인시킨다. “아까보다 더 울렁거리는 가슴으로/인감도장을 눌렀다/많이 닳아서 앞뒤로 흔들면서 벌겋게 힘을 주었다”. 이와 같이 에고는 존재의 진정성을 확인한다. 이는 “그 사람”(타자)과의 만남을 통해서 터득된 이치다.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은 주체가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그 진정성을 확인하여 가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화자는 타자(“그 사람”)을 통해서 에고의 진정성을 확인한다. 따라서 주체와 타자의 만남은 주체가 또 다른 세계로 승화하여 가는 과정이다. 이와 같이 이향아의 일상은 주체와 타자와의 만남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인지하는 데서 나타난다.
2. 추醜와 맞서기
타자는 존재나 사물을 의미하기도 한다. 타자가 천사로 나타나는 반면에, 사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타자는 때론 아름다운 모습으로, 때론 추한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양면성을 가로지르기하면서 진실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다. 그럼 이향아의 〈퇴행성입니다〉에 나타나는 타자는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
지하철 3호선 바로 1번 출구로 나가면
마주치는 간판이 있다, ㅇㅇ신경정신과 병원
내 집으로 휘어드는 골목 어귀에서 나는 버릇처럼
엿보는 사람은 없나 휘휘 둘러본다
어디다 두었는지 찾다가 하루가 가요, 사는 게 시시해요, 세상이 나를 깔봐요 ,
의사는 서슴없이 선고를 내릴 거야, 무쇠도 주저앉아 삭아버릴 말
‘퇴행성입니다’
퇴행성이라니 어림도 없지, 나는 찬란한 황금의 꼭짓점을 그리워하면서
절정은 언제였느냐, 그것이 내게 있기는 했느냐,
무섭게 그를 닦아세울 것이다
마파람에 구린내 풍기듯 동네방네 빨랫줄마다
아무개가 미쳤다더라 소문이 널리겠지
나는 기어코 미치고야 말겠지, 정말로 깔보겠지,
그러다가 죽겠지 죽기 전에 벌써 죽고 없겠지
서울 메트로 3호선 내렸다 하면 거기
그냥 못 본 척 씩씩하게 지나간다
퇴행성을 넘으려고 활개치며 걷는다
-〈퇴행성입니다〉전문
이 작품에서의 타자는 “퇴행성”이다. 퇴행성은 인체가 노쇠함으로 생기는 현상이다. 심하면 뇌세포의 연결이 끊어져 치매를 앓기도 한다. 그러나 퇴행성은 에고의 편에서 보면 예방하여야 할 타자他者이다.
“퇴행성”이라는 타자는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 존엄의 가치를 깨닫게 해 주는 매체이다. 화자는 “어디다 두었는지 찾다가 하루가 가요, 사는 게 시시해요, 세상이 나를 깔봐요” 등으로 퇴행성의 흔적들을 보면서 에고(Ego, 자아)의 중심을 찾으려 한다. 이는 존재의 흔적을 각인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나는 찬란한 황금의 꼭짓점을 그리워하면서/절정은 언제였느냐, 그것이 내게 있기는 했느냐” 등으로 삶의 가치를 오려내어 그것을 각인시키려 한다. 그것이 에고를 지키는 것이요, 퇴행성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화자는 타인의 퇴행성을 들여다본다. “마파람에 구린내 풍기듯 동네방네 빨랫줄마다/아무개가 미쳤다더라 소문이 널리겠지/나는 기어코 미치고야 말겠지, 정말로 깔보겠지,”.
이와 같이 화자는 타자와의 경계선 긋기를 통해서 에고의 가치를 마음에 각인시키려 한다. 그러므로 퇴행성은 여기서 경계의 대상이 된다. “서울 메트로 3호선 내렸다 하면 거기/그냥 못 본 척 식씩하게 지나간다/퇴행성을 넘으려고 활개치며 걷는다”. 퇴행성에 대한 경계는 에고의 중심을 자리매김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에고의 중심은 주변과의 차별을 통해서 꼿꼿이 서게 된다.
이렇게 볼 때 화자는 에고의 방어기제가 세밀하다. 그것은 현대 사회의 디지털화로 인한 분열 현상을 고려하여 볼 때, 에고의 중심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하는 상황에서, 화자의 태도는 중심과 주변을 가로지르기하면서 터득된 것이다.
3. 에고의 기반 다지기
이향아에게 에고는 주체의 진정성을 지키는 황금률이다. 그녀는 타자와 더불어 산다. 그리고 그 타자는 하나님·사탄·미·추 등으로 다양한 의미로 촉각을 세우고 마주 서 있다. 그러므로 이향아의 에고는 주체와 타자 간에 가로지르기를 시도한다. 그것은 중심과 주변, 존재와 사물을 오가면서 에고의 가치를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다.
그럭저럭 지내네
다 덕분이지
크고 작은 회오리야 어찌 없겠는가만
뒤집어지거나 가라앉지 않고
얼추 절반 넘게는 건너온 셈이네
그럭저럭 지내기도 쉽지는 않네
질풍처럼 떠올라서 번쩍거리는
그런 일은 애초부터 바라지도 않았지만
섭섭하면 섭섭해도 끄덕이는 하루하루
고맙네
늙은 산이 제 치맛자락에 얼굴을 파묻고
보라색 안개 질척거리며 거리로 나온 저녁
공으로 바라보기 눈이 멀 것만 같은데
그럭저럭 지내기 하도 미안하여서
나 지금 묵념으로 다스리는 중이네
아무래도 죄를 짓고 있는가 싶네
-〈그럭저럭 지내기〉전문
이 작품은 ‘그럭저럭 지내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럭저럭”이 아니다. 오히려 에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아이러니가 “그럭저럭”일 수도 있다. 1연은 에고(자아)에게 주어진 상황이다. “크고 작은 회오리야 없겠는가만/뒤집어지거나 가라앉지 않고/얼추 절반 넘게는 건너온 셈이네”. 화자의 에고는 실존적이다. 그래서 “섭섭해도 끄덕이는 하루하루”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에고의 역동성은 초자아와의 탈경계를 통해서 나타난다. 에고가 “그럭저럭”과 “묵념” 사이를 가로지르기함으로써 포월적 시선을 얻게 된다. 그것은 에고와 초자아의 경계를 넘어서 보다 포월적 시선-경계의 안과 밖을 아울러 보는 시선-에서의 실존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그럭저럭 보내기는 오히려 에고의 가치를 상승시키기 위한 반어적 표현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4. 빈 곳 바라보기
이향아의 아이러니는 “크고 묵직”한 중량감이 있다. 그것은 인간성의 무게를 더하고, 사물의 본질에 다가서는 새로운 시선을 요구한다. 현대 사회에서 맘몬(mammon)이 횡행할 때 그녀는 오히려 빈 곳을 통하여 인간성을 조명한다. 이것이 이향아의 아이러니가 요구하는 역동성이다.
그 사람을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했을 때
좌중에는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TV에도 자주 나온 유명한 사람
그를 모르다니 말이 되느냐고
견문이 부족하기 때문
무식하기 때문이라고
제대로 학교를 다녔다면
그런 사람 이름 정도는 알아야하지 않겠느냐고
형편없이 내리눌러 깔보는 눈치였다
방금 받은 명함의 금띠 두른 이름
그가 황송하게 악수를 청했을 때
무슨 까닭인지 모르면 어때
얼굴 구겨 웃으며 소금쟁이처럼 끄덕거렸다
그도 분명 유명한 사람일 것 같아서
이제야 눈앞이 트이기 시작하나
이러다가 나, 금세 유명해질 것 같다
-〈유명한 사람〉1,3연
이 작품에서 화자는 매스컴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을 통해서 보다 인간적인 가치를 가진 존재를 투영하고 있다. 이는 이향아의 아이러니가 빚어낸 곡예이다. 이를 위해서 화자는 “유명한 사람”을 보는 시선을 달리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시선에 대하여 “견문이 부족하기 때문/무식하기 때문/제대로 학교를 다녔다면” 등으로 회의적인 시선을 보이고 있다. 그러다가 “방금 받은 명함의 금띠 두른 이름”과 “얼굴 구겨 웃으며 소금쟁이처럼 끄덕거렸다”. 그러면서 “이러다가 나, 금세 유명해질 것 같다”며 엄살도 피워 본다. 이를 통하여 화자는 인간적인 매력을 풍기는 존재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물질이나 명예로 유명한 사람보다 오히려 인간다운 매력이 있는 존재를 찾는 화자를 보면 분명 이 사회가 취하여야 할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5. 정서 각인하기
〈아름다운 슬픔〉은 이향아의 인간다운 매력 찾기의 한 모델이다. 그것은 정서가 살아 있는 존재를 찾아나서는 것이다.
바람에 잎 지듯이 따라가다 보면
가고 싶은 그 언덕에 오를 수 있을까
저녁 들길은 눅눅하게 가라앉고
새들도 숲을 향해 사무칠 듯 날아간다
파장의 하늘 끝에 피를 쏟는 구름
참지 못할 울음처럼 피어나는 노을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듯이
한 가지로 목매달아 기다린 것은
저렇게 눈부신 슬픔이었구나
개망초 검푸른 그늘을 딛고
출렁대는 가슴으로 겨우 그걸 알기까지
너무나 어리석게 헤매었구나
긴 숨 모아 바라본다
아름다운 슬픔
-〈아름다운 슬픔〉전문
이향아는 이 작품에서 세계 내에 깃든 본연의 언어에 주목한다. 그래서 1연에서는 “저녁 들길은 눅눅하게 가라앉고/새들도 숲을 향해 사무칠 듯 날아”가는 아름다운 자연을 그려놓았다. 그리고 그 자연은 존재와의 소통을 원하고 있다. 이것이 사물에 내재하여 있는 본연의 언어에 숨겨진 비밀이다. “한 가지로 목매달아 기다린 것은/저렇게 눈부신 슬픔이었구나”. 여기서의 슬픔은 존재에 내재하여 있는 본연의 언어에 동참하는 것이다. “긴 숨 모아 바라본다/아름다운 슬픔”. 여기서 슬픔은 서럽고 비극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에게 주어진 인간다운 매력이다. 그 매력을 펴서 살리는 것이 이향아 시가 추구하는 이념이다.
6. 결어
이향아는 일상을 즐기는 편이다. 그녀의 일상은 타자와의 놀이를 통해서 전개된다. 여기서 타자는 주체의 분신으로서의 무의식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존재일 수도 있다. 타자와의 만남은 또 다른 세계로 승화하여 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에고의 진정성은 필연적이다. 에고는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자아 정립을 통하여 분열증적 현상을 막으려는 주체 나름대로의 전략에서 나온 자아이다.
이향아의 일상은 상대적인 것을 가로지르기하면서 전개된다. 자아의 성숙과 퇴행성, 에고의 가치 있는 행동과 무료함, 미와 추를 가로지르기하면서 에고의 안과 밖을 살핀다. 이는 인간다움으로 나아가기 위한 삶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세상 관습에 젖은 유명인보다는 슬픔의 정서가 살아있는 인간다운 매력은 잡다한 가치관이 횡행하는 바다를 건너가는 삶의 기준이다.
이향아의 일상 다루기는 소시민의 인간다운 매력을 증폭시키는 데 집중된다. 이는 소시민의 권력을 한 단계 높이려는 숭고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녀의 숭고는 날카롭고 뾰족하기보다는 온화하고 다정한 것에 더 집중되어 있다. 일상의 깊은 곳에 숨어있는 에고의 위상을 높이는 것도 그녀 나름대로의 숭고를 세우는 작업이다. 이렇게 볼 때 이향아의 일상 다루기는 극단적인 추醜와 악마성에 떨어져 있는 일부 해체시에 탈경계적인 안목에서 나온 인간다운 매력 찾기 작업이라 할 만하다. 그녀의 일상에 놓인 에고 찾기가 분열증적 양상을 보이는 시들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에고는 이드와 초자아를 가로지르기하면서 터득된 것임을 위에 열거한 시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향아의 에고 찾기에 박수를 보낸다.
정신재 -----------------------------------------------
시인, 문학평론가. 1983년 1월 《시문학》지를 통해 등단.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1982), 국민대 국문과 박사과정 졸업(1992). 문학평론가협회 사무국장(2006-2009). 디지털 서울문화예술대학교 외래 교수. 현재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기획위원. 저서 《성과 광기의 담론》 외 14권. 제14회 문학평론가협회상(1995), 제4회 이은상 문학상(2011)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