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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수필과비평 2014년 1월호, 촌감단상] 너의 자화상 - 전일환

신아미디어 2014. 8. 11. 23:27

"불가에서는 우리 중생衆生을 슬픈 존재라고 한다. 그런 중생에 대한 연민과 긍휼이 자비慈悲라는 것일 게다. 그런데 우리들은 삶의 참모습도 모른 채, 마치 천만 년을 살 것처럼 권력과 명예와 물질에 탐착貪着하고 있으니 얼마나 가소로운가!"

 

 

 

 

 

 

 너의 자화상        전일환


  얼마 전 문학관 자서自書 사인전에서 어떤 원로시인이 쓴 ‘사람은 사람이다’라는 글귀를 보았다. 사람은 살아가는 존재다. ‘살다’의 어간 ‘살’에서 파생되어 나온 말이 ‘사람’이고, ‘삶’, ‘살이’, ‘살림’ 등도 그렇다. 그래서 평생 헝겊으로 누빈 납의衲衣 한 벌과 다 떨어진 검정 고무신 한 켤레만 남기고 입적入寂한 해인사의 성철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했던가 보다.
  요즘 나는 어머니만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온다. 가슴속 깊은 곳에 빗물처럼 눈물이 쏟아 내린다. 십수 년 전, 섣달그믐날 새벽, 떡 방앗간에 떡살을 뺀다고 나가신 게 탈이었다. 방앗간에서 스르르 쓰러지신 것이었다.
  이후로부터 어머니는 당신 삶이 아니었다. 난 어머니를 보며 ‘걷는 게 삶’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움직일 수 없는데 무슨 삶이라 할 수 있으랴. 대신해 줄 수만 있다면 정말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문상을 가는 날이면 망자가 얼마나 고생을 했느냐고 상주에게 위안삼아 묻는 습성이 생겼다.
  어머니는 일제 때 정신대 때문에 15세 소녀 적에 우리 집으로 시집을 왔다. 그리고 18세 꽃다운 나이에 누나를 낳았다. 아버지가 남양군도에 보국대로 끌려간 뒤에는 독수공방하며 신고의 삶을 사셨다. 나를 잉태한 만삭의 몸이었지만, 고향 마을 저수지 공사에 동원되어 흙을 나르기도 했다니 그 고생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
  해방이 되어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아버지는 1년 이상을 일본에서 살다가 뒤늦게 귀향을 하셨다. 그러다가 6·25 사변 때에는 한 여자간첩과 동명이인이어서 무단히 경찰서에 잡혀가서 억울하게 치도곤을 당하기도 했다니 기가 막힌다.
  그런 우여곡절의 삶을 살아오신 어머니인데 지금은 말문까지 닫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 가면 ‘아들’이란 한마디 말은 하였는데, 이젠 그런 말도 들을 수가 없다. 다만 내가 손을 잡으면 당신도 내 손만 꼬옥 잡을 뿐이다. 그것이 모자간 대화의 전부다. 요즘은 어머니의 얼굴 위에 내 얼굴이 오버랩 되어 어른거린다. 마치 훗날 너의 자화상이라 이르듯이.
  불가에서는 우리 중생衆生을 슬픈 존재라고 한다. 그런 중생에 대한 연민과 긍휼이 자비慈悲라는 것일 게다. 그런데 우리들은 삶의 참모습도 모른 채, 마치 천만 년을 살 것처럼 권력과 명예와 물질에 탐착貪着하고 있으니 얼마나 가소로운가!
  그래서 고려 말 나옹懶翁선사는 <영주가靈珠歌>에서 성철 스님과 똑같은 말을 했나 보다. ‘문밖의 푸른 산 반절은 파란 하늘인데 산은 바로 산이요, 물은 바로 물이로다’라고.

 

 

전일환  ------------------------------------------------

  전주대 명예교수. 수필가. ≪한국수필≫ 등단. 수필집: ≪그말 한마디≫, ≪옛날엔 정말 왜 몰랐을까≫. 전북일보 ‘한국문학의 원천, 전북문학의 미학’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