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 2013년 12월호, 다시 읽는 좋은수필] 감자 - 김병규
"사람뿐만 아니라 감자도 생애의 맹목적인 의지가 있을 것이다. 뇌성마비의 감자 장수는 감자의 속성이 무의식적으로 전달되어 감자를 팔고 있는 것일까.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지만, 요즈음 그가 얼씬도 하지 않아 은근히 걱정이 된다."
감자 / 김병규
골목길은 서민의 애환이 그득 담긴 곳이다. 나는 거길 심심찮게 지나가는 한 리어카 장수를 만난다. 그냥 서 있으면 그는 여느 사람과 다름이 없지만 걸어가는 것을 보면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곧 판명된다. 더욱이 소리 지를 땐 짐승이 지르는 소리처럼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는 허름한 리어카를 밀고 다니는데 리어카에는 대개 감자가 깔려 있다. 아마 수를 헤아려보아도 금세 바닥이 날 정도다.
그러면서 쩌렁쩌렁한 소리로 무엇인가 외쳐댄다. 좋은 감자를 싸게 사라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걸 알아듣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 저 사람 또 왔네.’라고 하는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 다가가서 감자를 사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팔리니까 고함도 지르겠지만, 그게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 다가가는 사람도 보질 못했다. 동정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는 비틀거리면서 리어카를 밀고 가고, 그가 지나가는 것이 확인되는 것은 고함 소리가 메아리치듯 들릴 때이다.
어쩌다가 그와 마주칠 때 나는 숫제 시선을 돌린다. 그의 시선이 뇌성마비답지 않게 매서워서다. 왜 그런지 알 수가 없다. 그는 하필이면 감자를 싣고 다닐까. 감자와 인연이 있을까. 나는 그가 싣고 있는 감자를 유심히 본다. 그것이 유별난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소설가는 한때 감자를 그리는 데 열중했다. 그는 훌륭한 문인화가이기도 했다. 그는 저 둥글둥글하고 충실하고, 어디 하나 아름다운 구석이 없고, 아무것도 아닌 듯하면서 싱싱한 감자의 모습에 마음이 쏠려 그 느낌을 그대로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몇백, 몇천 장을 그렸지만 아직도 마음이 내키는 것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감자 그림에다가 ‘보이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글귀까지 써넣은 일도 있다.
실제로 감자의 뿌리는 땅속에 숨어 있으며, 사람의 눈에 띄도록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점에서 꽃이나 과실과는 전혀 다르다.
따라서 본디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못 된다. 물론 그림으로 그려지기 위하여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춰주지도 않는다. 보인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처럼 보인다는 것을 전연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산다는 것에만 생각하고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그것이 얼마나 충실한가.
사람은 외출할 때 자기의 외모에 신경을 쓴다. 다른 사람에게 불쾌한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하여 그만큼 주의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에티켓이다. 그러나 그 이상 신경을 쓴다면 지나치다고 할 것이다.
소중한 것은 살아가는 것이지 보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보이기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자기를 진실로 살리는 일에 소홀한 것 같다. 인간은 자기 본위로 자기를 살리는 길이 소중하기 때문에 여느 사람이 어떻게 보든 개의치 말고 자기를 뿌리부터 살려 나가도록 해야 한다.
기근이 들 때 국민들을 살려낸 것이 감자였다는 것이 예사일 것 같지 않다. 박토에도 잘 자라는 감자는 재배하는 데 크게 번거로움도 없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던 루이 16세 때만 해도 감자를 먹으면 문둥병이 생긴다 하여 못 먹을 음식으로 인식돼 있었다. 그러나 아사자가 길거리에 나뒹굴기 시작하자 감자 장려 정책을 썼다. 루이 16세는 감자꽃을 옷 단추에 꽂고 시민 앞에서 감자를 먹어보였으며 앙투아네트 왕비는 머리에 감자꽃을 꽂고 공중 앞에 나왔다.
감자의 꽃은 그리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설멋진 흰 꽃이 아름다울 리 없다. 그러나 흙속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는 충실하다. 그 모양새는 솔직히 말해서 볼썽사납다. 이리 불거지고 저리 불거진 것이어서 아름답다는 말은 헛말이라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 뿌리만큼 생명이 충만한 것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뿌리 군데군데에 싹을 틔우려고 만전의 채비를 하고 있다.
감자는 사람들을 기근에서 구하는데 그것은 감자 자신의 강력한 생명력 때문이라 할 것이다. 감자는 그런 의지가 있지도 않겠지만, 그 생명력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 하리라.
인간에게도 살겠다는 끈질긴 근성과 욕망이 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에게는 비이성적이며 무의식적이고 맹목적인 생애의 의지가 있다고 하였다. 생애의 의지는 체면치레가 아니며 따라서 이성적인 차원에서 논할 것이 아니라 그것은 맹목적이라고 한 것이다. 신은 아무도 없을 때 가장 그 사람을 잘 지켜보고 있다고 하는데, 누구도 보지 않을 때 사람의 인격은 닦여진다고 할 것이다.
감자도 땅속에서 신의 보살핌을 받고 훌륭하게 자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중에는 큰 것도 있지만, 작은 것도 있다. 작은 것에 대하여도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크로포트킨은 ‘러시아 농부들이 감자 알을 보고 큰 것에만 기뻐하고 작은 것에는 감사하지 않는다면 러시아의 농민운동은 폐허가 될 것이다.’라고 경고한 일이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감자도 생애의 맹목적인 의지가 있을 것이다. 뇌성마비의 감자 장수는 감자의 속성이 무의식적으로 전달되어 감자를 팔고 있는 것일까.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지만, 요즈음 그가 얼씬도 하지 않아 은근히 걱정이 된다.
김병규 ---------------------------------------
김병규님(1920년~2000년)은 수필가. 전 동아대 명예교수. 수필집 《목탄으로 그린 인생론》, 《문학과 철학 사이》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