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비평 2013년 12월호, 지상에서 길찾기] 우아함의 미학 - 임경자
"사소한 것에 욕심부리거나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다 낭패 보는 어리석은 일은 행하지 않았었는지 가슴에 손을 얹게 된다. 이제 자주 자신을 돌아봐 군자란의 우아함과 고고함을 본받아야 하리라. 삶 속에서 덕을 익히고 선을 행한다면 그것이 군자의 품위를 본받는 일 아니겠는가. 군자란처럼 고귀하고 우아한 삶을 영위한다면 나 또한 영원히 지지 않는 한 떨기 군자란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싶다."
우아함의 미학 - 임경자
2월 초순 여행에서 돌아온 이튿날 아침이었다. 코끝을 간질이는 그윽한 향기에 단잠을 깼다. 여행을 갈 때는 꽃을 피울 기미도 통 안 보였었는데 며칠 사이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거실에서는 군자란, 천리향, 풍로 초, 선인장들이 앞다투어 꽃잎을 한창 피우고 있었다. 그것들의 만개한 꽃잎을 보고 반가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마치 새해 첫 해님을 맞이하는 것 같은 희열에 그 향에 한껏 취했다. 그러자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마음을 가눌 길 없었다.
포기도 실하고 힘차게 뻗어 나오는 잎과 꽃을 피워주는 군자란은 34년을 나와 함께했다. 처음에 한 그루였던 것이 세월이 쌓이면서 포기 수를 늘렸다. 초봄이면 꽃대가 올라온 뒤 꽃을 피워 4월 중순까지 튼실한 모습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 주던 꽃이다. 꽃을 유난히 좋아하던 남편의 사랑으로 귀한 대접을 받으며 사계절 싱싱한 푸름으로 집안을 화사하게 장식해 주었다. 그때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 매년 초봄이면 우리 가족의 마음을 들뜨게 했던 군자란이다.
2년 전에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군자란 화분이 터질 것 같아 2포기와 3포기로 두 화분에 나누어 심었다. 그런데 작년 겨울에는 웬일인지 꽃을 피우지 않아 애간장을 태웠다. 지인에게 물어보니 분갈이하는 해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해서 ‘그 탓인가 보다.’라고 위안을 삼았다. 금년에는 꽃을 피우리라는 희망을 갖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한겨울이 지난 입춘지절에 꽃대가 미처 나오지도 못하고 잎사귀 사이를 비집고 꽃망울을 쏘옥 내밀고 있다. 무엇이 그리 급해서 꽃을 피워보려고 동글동글한 꽃봉오리들이 앞다퉈 자릴 잡았는지 모르겠다. 전에는 꽃대가 20~30센티 정도 자란 뒤에 화려한 모습으로 꽃을 피웠는데 요즘따라 그 몸짓들이 매우 분주하다. 두터운 잎 사이를 비집고 힘겹게 솟아오르는 여린 꽃잎이 마치 갓 시집 온 새아씨 볼처럼 발그레해 수줍은 모습이다.
지금 한창 뾰족이 올라오는 꽃잎은 생장의 조건이 맞지 않은 탓인가 보다.
‘아마 이 군자란도 너무 과잉보호를 해서 꽃대도 없이 꽃을 피우려 작정한 것은 아닌가?’라는 기우가 들었다. 그리고 가끔 일 년에 두 번 정도 꽃을 피운 적도 있다. 이런 경우 환경에 영향을 받아서 불규칙하게 개화가 되는 것이라 한다. 늘 정성껏 손질하던 따뜻한 손길이 와 닿지 않아서 군자란이 외도를 하는 모양이다.
‘아름다운 꽃을 보려면 고생을 시켜야 한다.’며 원예 전문가이던 남편은 꽃과 나무에 대한 연구를 하며 지극히 가꾸었다. 그가 꽃·나무를 자식처럼 애지중지 가꿀 때 건성으로 보아왔던 일이 새삼 후회스럽다.
음지식물인 군자란은 직사광선을 받으면 생장이 중지되며 간접 광선이라도 밝은 곳이 좋다. 만약 저온처리를 하지 않으면 봄이 되어도 꽃을 피우지 않는다. 꽃이 피는 시기가 겨울이라 건조하고 실내온도가 높으면 힘들다. 물은 표면이 완전히 마를 때까지 두었다가 흠뻑 주고 자주 주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식물은 새순을 돋고 새로운 가지를 내려고 안간힘을 쏟는다. 스스로 잎을 제거하고 성장하는 특징이 모든 동식물에게 있다. 간혹 제철이 아님에도 피어나는 야생화처럼 충분한 영양과 온도가 맞는다면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더 멋지고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군자란꽃을 보기 위해 올해는 넘치는 관심은 접어 두고 절대로 과잉보호하지 않으리라.
본래 난초가 아니면서도 군자의 이름으로 불리는 군자란이다. 꽃말은 고귀함과 우아함이다. 안으로 품고 내색하지 않는 고고한 정신세계의 군자처럼 향을 내뿜지 않는 꽃이다. 평범함 속에서도 분수에 맞는 품위를 지키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간직하였다. 군자란을 바라보면 마치 비범한 사람을 대하는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또한 사소한 것에 욕심부리거나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다 낭패 보는 어리석은 일은 행하지 않았었는지 가슴에 손을 얹게 된다. 이제 자주 자신을 돌아봐 군자란의 우아함과 고고함을 본받아야 하리라. 삶 속에서 덕을 익히고 선을 행한다면 그것이 군자의 품위를 본받는 일 아니겠는가. 군자란처럼 고귀하고 우아한 삶을 영위한다면 나 또한 영원히 지지 않는 한 떨기 군자란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싶다.
임경자 ---------------------------------------------
≪한국문인≫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