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신인상 수상작

[수필과비평 2014년 7월호, 제153호 신인상 수상작] 개불알꽃 - 진부자

신아미디어 2014. 7. 9. 08:24

"한때는 내 이름이 원망스럽고 부끄러워 부모님을 탓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개명할 기회를 주어도 전혀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이름보다는 내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 것이다. 내가 그렇듯이 ‘개불알꽃’도 더 한층 예쁜가 보다. 들꽃 세상에는 뽐냄도 미움도 없다. 그저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 그 속에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자기 색깔의 꽃을 피울 뿐이다."

 

 

 

 

 


 개불알꽃       진부자


   3월이 되니 새 소리가 달라진다. 맑고 청아하다. 길가의 언덕도 덩달아 환해진다. 자잘한 풀꽃들이 피어나 새들이 재잘대듯 꽃들의 향연이 시작된 것이다. 그 추운 겨울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잘 견뎌내고 봄이 오자 또 누구보다 먼저 피어난 꽃들이다.
   봄맞이꽃을 비롯해서 꽃다지, 냉이, 민들레, 제비꽃까지. 그런데 이름이 좀 별난 꽃이 있다. 그것은 개불알풀이다. ‘개불알’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이 꽃은 밤하늘의 별이 쏟아진 듯 보라와 흰색이 잘 어우러져 유난히 산뜻하고 귀여운 꽃이다. 그런데도 왜 하필 개불알꽃일까. 그 열매가 꼭 개 불알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꽃 이름이 그게 뭔가. 듣기도 말하기도 좀 민망할 때가 있다. 단지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면 이름을 지은 사람이 아마도 약간 짓궂고 심술꾸러기였던 모양이다. 그것은 누가 봐도 오히려 쌍방울처럼 생겼다. 그러니 쌍방울꽃이라 해도 좋을 것이고 밤하늘에 별처럼 아름답게 돋보이니 땅별꽃이라 해도 더욱 멋질 텐데.
   지천으로 피어도 누군가가 먼저 이름 한번 불러주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꽃도 있는데, 그나마 이름을 불러주니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친구들한테 왕따당하기 딱 알맞은 이름이다. 사람도 동물도 꽃도 때로는 이름 때문에 괜히 찬밥 신세가 되기도 한다. 가령 금잔디와 개똥이를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하긴 옛날에는 귀한 자식일수록 아명이나 별명으로 개똥이나 바우, 차돌이란 못난 이름을 지어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시새움이나 나쁜 기운이 근처에 오지 못하도록 일부러 그러기도 했었다. 오늘날에도 길흉화복이 그 사람의 이름에 달렸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훌륭하고 좋은 이름을 지으려고 철학관이나 작명소를 찾아가 많은 돈을 주고 이름을 짓는다.
   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 내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다. “너거 집 부자가?” “진짜 부잔갑다.” 그래서 나는 내 이름이 정말 싫었고, 그런 이유로 ‘부자’라는 이름을 누구도 부르지 못하게 했다. 집에서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었는데 그 이름마저도 평범한 이름이 아니어서 늘 불만이 많았다. 내 나름대로 춘자나 순옥이, 선희 같은 이름이 부러웠다. 부모님이 이름만이라도 남들처럼 예쁘고 멋지게 지어 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일 내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한번 더 실망을 했다. 어떤 깊은 뜻이 담겨 있거나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호적 신고를 집안 아저씨에게 부탁을 했는데 아저씨가 깜박한 것인지, 일제 강점기에 부르던 일본식 이름을 개명해서 호적에 올려버린 것이다. 개불알꽃도 내 이름처럼 잘못 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봄까치꽃’이라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
   이른봄 메마른 가지에 떼 지어 앉아 있는 까치들의 모습이 알록달록한 꽃같이 보여 그런 이름을 지어 주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처음 이름이 너무 깊게 각인되어 그런지 봄까치꽃이란 이름은 다들 기억을 못한다.
   그 이름이야 어떻든 나는 개불알꽃을 무척 좋아한다. 길을 가다가도 우연히 개불알꽃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가던 걸음을 멈추고 유심히 그 꽃을 바라본다. 꽃도 예쁘지만 꽃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알 수 없는 어떤 그리움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간다. 첫사랑의 애틋한 기억일까. 꽃말이 기쁜 소식이라니 뜻밖의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농촌도 곳곳마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흙바닥이었던 도로가 모두 아스팔트로 변해 예전처럼 그렇게 많은 풀꽃이 없다. 이대로 자꾸 가다가는 눈만 뜨면 볼 수 있던 우리 예쁜 풀꽃들의 이름마저 잊어버리는 날이 곧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면 정말 안타깝다. 흔한 풀꽃,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난 작은 꽃에서도 아득히 잊은 옛날의 추억들이 되살아난다.
   봄날은 집에만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이다. 사방천지가 꽃이라 내가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듯이, 꽃도 우리를 애타게 기다릴 것이라는 생각이다. 밖으로 나가 꽃도 보고 쑥도 캐고, 돌나물도 뜯고,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봄날은 금방 지나간다. 꽃이 피기는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라는 어느 시의 한 구절처럼 말이다.
   한때는 내 이름이 원망스럽고 부끄러워 부모님을 탓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개명할 기회를 주어도 전혀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이름보다는 내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 것이다. 내가 그렇듯이 ‘개불알꽃’도 더 한층 예쁜가 보다. 들꽃 세상에는 뽐냄도 미움도 없다. 그저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 그 속에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자기 색깔의 꽃을 피울 뿐이다.

 

 

진부자  -------------------------------------------
   경남 창원 출생. 마산대학교 평생교육원 백남오수필창작교실 수료.

 

 

당 선 소 감


   정말 너무 기쁩니다. 첫아이를 낳았을 때처럼 설렙니다. 저 같은 사람의 글이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 몹시 두렵고 부끄러웠는데 이런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한번도 나를 위한 꿈을 꾸거나 누구에게 관심을 받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앞날이 창창한 구만리 같은 젊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애 마지막으로 불태우는 열정이라고나 할까요.
   말뚝에 묶인 염소처럼 꼼짝없이 집안에서만 맴을 돌다 뒤늦게 알게 된 세상, 문학의 세계는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길이지만, 차츰 가까이에서 친하고 보니 두려움도 즐거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늦게나마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도록 격려해 주고 용기를 주신 교수님과 옆에서 함께 힘이 되어준 여러 문우님들이 있어 오늘의 이 행운을 차지한 것 같습니다. 또한 아무런 보수도 없이 컴퓨터를 가르쳐준 뒷집 아저씨, 글쓰기에 끝까지 응원해준 남편에게도 깊은 사랑을 느낍니다.
   한없이 부족한 저의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