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비평 2014년 7월호, 제153호 신인상 수상작] 마침표 - 강연조
"하얀 박꽃이 피는 저녁 무렵에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식구들의 오붓한 자리가 눈에 떠오른다. 저녁을 끝내고 평상에 둘러앉은 식구들의 도란도란한 목소리가 귀에 떠오른다. 모닥불이 타오르는 연기를 따라가면 초롱초롱한 별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시절의 마침표를 지나 지금 또 다른 마침표의 시작으로 가는 길목에 나는 서 있다. 마음이 설렌다"
마침표 - 강연조
마침표가 지니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끝을 마무리하는 부호이지만 거기에 찍다는 동사가 붙으면 삶의 희로애락이 모두 포함되기 때문이다.
시작하는 모든 것은 어떤 형식으로든 완료, 종결로서 끝맺음을 한다. 그러나 마침표에는 종결과 동시에 새로운 전환점으로 굽이를 트는 계기가 된다. 그것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런저런 작용을 한다.
끝이 곧 시작이라고 했겠다. 마침표를 찍는다고 할 경우 새로운 무엇으로 지향하려는 의도가 깔린다. 그것은 글쓰기든 사업이든 하나의 마침표는 새로운 무엇으로 나아가는 지혜와 다짐이 그 마침표 속에 깔려 있음을 의미한다. 마침표는 그것으로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무엇을 찾으려는 의지며 그 힘이기도 하다. 하기에 마침표는 새로운 길, 새로운 희망으로 지향하는 다짐임을 의미한다고 보겠다.
학교를 졸업한다는 것은 일종의 마침표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러나 졸업과 동시에 또 다른 학교에 진학 또는 사회에 진출하는 마침표의 연결선상에 놓이게 된다. 문장을 보아도 마침표가 있음으로 의미 파악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뿐만 아니라 다음 문장으로 밀고 나갈 힘을 마침표에서 얻는다. 부모 슬하에서 자라나 혼기가 되어 부모 곁을 떠나는 첫 마침표는 새로운 삶으로 향하는 출발점의 신호인 셈이다. 한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마침표인 셈이다.
끝이 좋아야 한다, 끝마무리를 잘해야 한다는 말을 격언처럼 듣고 살았다. 완전무결을 바라는 뜻도 있으나 다음에 닥치는 또 다른 출발선에 걸림돌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 점 마침표는 마침표만이 아닌 새로운 출발선이다.
그런가 하면 마침표에는 여러 가닥으로 얽히고설킨 일에서 일단 벗어나고자 하는 고뇌에 찬 소리 또한 있다. 무거운 짐을 털썩 내려놓는 홀가분하고 후련한 해방감도 배제하지 못한다. 낡은 것, 지루한 것 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 또한 있다.
부부 갈등은 불행한 일이지만 이혼이라는 마침표로 해결을 본다. 자녀문제 등 파생되는 여러 가지 고통은 우선 제쳐놓고 성급한 마음으로 이혼이라는 마침표로 싹 돌아서는 안타까움도 있다. 정치판국 또한 예외는 아니다. 어떻게든 정권을 쥐고자 입에 침을 튀기는 정권탈취의 야욕을 보는 건 슬프기조차 하다. 하지만 그 야욕에 의해서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이 더 잘살 수 있는 길이 된다면 크게 반가운 일이다. 정쟁 가운데 산업이 발달하고 지엠피라는 것이 올라가는 등 국민이 살아가는 길에 도움이 되는 정쟁인지도 모른다.
마침표라고 다 그럴싸한 출발은 물론 아니다. 입양 같은 혈연을 끊는 마침표는 새로운 운명으로 가는 아픔이다. 구조 조정 등의 이유로 본의 아닌 타의로 직장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앞이 캄캄한 서글픈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얼마만큼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가. 마침표를 찍는 것이 능사가 아닌데 지나치게 성급하지는 않았나, 우유부단하지 않았나 하는 뉘우침도 갖게 된다. 마침표를 찍는 시점에 따라 인생의 길과 방향이 바뀌는 분기점이 되기에 후회 없는 마침표를 찍기 위해 보다 더 신중히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학생시절은 모두 독서가 유일한 취미였다. 일제 치하에 근로동원에 불려다니면서도 책은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책이 귀했던 시절이라 서로 돌려가면서 독서로 마음을 달래고 힘든 날을 보냈다. 빨리 읽고 돌려주기 위해 밤을 새면서 읽었고 못다 읽은 것은 밥상 밑에 놓고 밥을 먹으면서 읽다가 어머니께 꾸중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본 서적뿐이었다. 우리 글을 배우지 못한 슬픈 역사는 일본어를 접하고 일본어에만 눈뜨게 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자 뒤늦게 문예지를 통해서 우리 문학을 공부하고 어렴풋이나마 정체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말의 섬세한 아름다움과 정감 담긴 따뜻함에 때로는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의 마침표는 우리를 찾는 것,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고 새로운 것으로 지향하는 탄탄한 길이 되었다.
살아오면서 내가 찍은 무수한 마침표를 생각해 본다. 그것은 말줄임표처럼, 치마끈처럼 나를 따라와 새로운 마침표로 지향하는 길이 되기도 했다. 그런 점 마침표는 나에게 크고 작은 힘이었다.
하늘을 찌르듯 치솟은 버드나무처럼 살아야겠다. 바람에 잎을 살랑거리는 가벼운 몸놀림 같은 율동을 즐기며 살아야겠다. 그 율동이 의미하는 노래 같은 나뭇잎 살랑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겠다.
하얀 박꽃이 피는 저녁 무렵에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식구들의 오붓한 자리가 눈에 떠오른다. 저녁을 끝내고 평상에 둘러앉은 식구들의 도란도란한 목소리가 귀에 떠오른다. 모닥불이 타오르는 연기를 따라가면 초롱초롱한 별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시절의 마침표를 지나 지금 또 다른 마침표의 시작으로 가는 길목에 나는 서 있다. 마음이 설렌다.
강연조 -------------------------------------------
경남 마산 출생. 전 초등학교 교사. 전 부산광역시 여성회관 일본어과 강사. 부산크리스천문학 회원.
당 선 소 감
수평선을 따라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분주했던 오늘 하루가 막 마침표를 찍으려는 순간입니다. 되풀이되는 나날이지만, 당선 소식이 있는 오늘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내일을 기약하는 마침표가 되는 순간입니다.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설렙니다.
≪수필과비평≫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참으로 기쁘고 감사합니다.
저녁 노을이 붉을수록 그 다음 날은 더 청명하다고 합니다. 좋은 글을 써보고 싶은 작은 소망을 기원해 봅니다. 뒤늦은 문학 공부이지만 진정한 문학의 깊이를 이해하는 데 더 힘쓰겠습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를 회원으로 허락해주신 ≪수필과비평≫사에도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격려해 주신 문우님들 고맙습니다. 늘 옆에서 지켜 봐주는 가족에게도 이 기쁨을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