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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12월호, 지상에서 길찾기] 변便의 변辯 - 윤석희

신아미디어 2014. 7. 1. 21:32

"두리둥실 살면 될까. 소처럼 되새김질이라도 해서 세상을 제대로 소화해낸다면 언젠가 누렇고 굵은 변으로 중용의 도쯤 터득할 수 있지 않으려나. 물도 돌도 아닌 때깔 좋은 한 덩이로 하루하루의 행복을 고대한다."

 

 

 

 

 

 

 변便의 변辯        -  윤석희


   전투 중이다. 승리나 패배가 아닌 화해를 바라지만 어림없다. 지쳐 포기할 때까지 싸움이 계속될 듯하다. 똘똘 뭉쳐진 돌덩이로 공격해 온다. 철옹의 진지가 구축되어 전진도 후퇴도 불허하는 수호 작전으로 돌입하나 보다. 속수무책, 안간힘을 쓰나 어찌할 재간은 없다. 땀이 쏟아지더니 맥이 풀려버린다.
   난감하다. 자주 겪는 일이지만 여행 중에 아니 지금은 더욱 참담하다. 휴전과 평화를 지향할 여유도 없거니와 위급상황에 대처할 힘을 잃었다. 교전의 맹렬함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남편은 발로 화장실 문을 걷어차며 난리다. 택시는 돌아갔으며 기어이 비행기도 놓칠 판이냐고. 어쩌란 말인가. 그대론 일어설 수도 없는 지경이니.
   위기는 또 다른 기회다. 기발한 비상 작전인가. 에라, 모르겠다. 만져보니 콘크리트다. 다이너마이트가 필요하다. 손가락, 손가락이 있다. 검지를 밀어 넣는다. 후벼 파기 작전 개시. 비집고 들어가 손톱으로 먼저 균열을 내어 손가락이 움직일 공간을 확보한다. 돌려가며 딱딱한 바윗돌을 부숴버린다. 마침내 파편들이 끄집어져 나온다. 속전속결이다. 체면 불사한 공격에 어이없이 당했을 게다. 후련함에 의기양양 쾌재를 부른다. 천국 입성이다. 진즉 이 방법을 써 보지 않은 미욱함에 후회가 남지만 일단 기쁘다. 공항으로 내달린다. 드디어 카사블랑카 행 비행기에 올랐다.
   어쩌면 변과의 전쟁이 내 삶이 아니었나 싶다.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늘 시달렸다. 때론 건물의 해결소를 찾아 배를 움켜쥐고 뒤뚱거렸고, 큰 나무 뒤든 음침한 거리든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공연 중 그 몰입의 현장을 가로질러 무례를 범하는 일도 흔했다. 마음의 평정을 잃으면 즉각 설사요, 어쩌지 못해 견디고 있자면 변비로 굳어지곤 했다. 그래서인가. 몸과 마음이 늘 메말라 있었다.
   지속되는 몸과 마음의 불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휴식을 간절히 원했고 방편으로 여행을 선택했는지 모른다. 헌데 여행지에서조차 삶의 방식은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초긴장과 초인적인 인내가 필요할 때가 많다. 어디서든 생존이 우선 아닌가. 살아내야 삶의 질도 무늬도 챙겨보게 된다. 그저 잘 참아내려고만 한다.
   겉으로는 절대 적응을 내세우지만 내면의 반란은 격동한다. 거부하는 몸의 반작용은 항상 스트레스를 초래한다. 자유롭고 거칠 것이 없는데도 호기심과 낯섦이 주는 긴장의 압박을 감당해내지 못한다. 불안과 두려움도 쉽게 떨치지 못한다. 나이를 공연히 먹었나. 이제 웬만한 건 눈감고도 넘길 수 있으련만 여전히 세상을 불편해하고 있음이다. 그 즉각적인 반응이 변의 상태로 나타난다.
   어디 여행지에서 뿐인가. 일상사가 다 그러하니 문제 아닌가. 쏟아내 버려야 할 것과 부수어 끄집어내야 할 것만 만들어내는 삶이라니. 안식과 평온의 시간은 왜 쉽게 오지 않는지 알 수 없다. 언제쯤 적정한 변으로 세상 모든 것들과 화해할 수 있을까. 아니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예민함에서 벗어나고 싶다.
   물론 심리적인 요인만은 아니다. 생리적으로 맞지 않은 것들이 많다. 과민성 증후군이라 한다. 반복되는 배앓이와 불규칙한 변이 이어진다. 타고난 거야 바뀔 수 없지 않은가. 체질에 아닌 것은 피하면 그만인데 어쩌지 못한다. 거기다 마음의 부담까지를 더 보태고 만다. 아예 입 닫아걸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먹을 때도 많다. 차가운 것도 느끼한 것도 때론 상한 것까지도 먹어야 하는 것이다. 함께 사는 세상이라 한다. 그래서 취하면 설사요 참아내면 변비가 되는 것이다.
   이놈의 × 때문에 겪는 고통과 망신살을 어찌 다 헤아리나. 불평을 해대니 변이 변을 늘어놓는다. 지 잘못 아니고 내 소갈머리 때문이라고. 싫은 것은 과감하게 외면하든가 아님 편안하게 다 끌어안으란다. 유난 떨지 말며 안달하지도 말란다. 배출로 독을 제거한다며 오히려 큰소리다. 변명만은 아닌듯하여 곱씹어보니 맞는 말임이 분명하다.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 경고하는 변의 즉발성과 정직성을 탓할 수는 없는 게다.
   두리둥실 살면 될까. 소처럼 되새김질이라도 해서 세상을 제대로 소화해낸다면 언젠가 누렇고 굵은 변으로 중용의 도쯤 터득할 수 있지 않으려나. 물도 돌도 아닌 때깔 좋은 한 덩이로 하루하루의 행복을 고대한다.

 

 

윤석희  ---------------------------------------------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바람이어라≫, ≪찌륵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