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 2013년 11월호, 신작수필 14인선] 가거도 섬등반도에 가면 - 김선인
"감동 속에 사랑이란 단어가 살갗에 와 닿는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사랑이란 얼굴을 가지고 다가온다. 신과 자연, 가족과 친구, 주위의 사람들이 웃으며 손을 내민다. 나도 따뜻하게 데워진 손으로 마주 잡는다."
가거도 섬등반도에 가면 / 김선인
우리나라 최서남쪽에 가거도라는 섬이 있다.
목포에서 쾌속선으로 5시간이나 걸리는 먼 섬이다. 우리나라 육지까지 거리보다 중국이 더 가까운 곳으로 새벽이면 중국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섬이다. 가히 사람이 살만하다고 해서 가거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뜻은 긍정적이나 속으로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가거도에 가면 기이한 지형을 볼 수 있다. 바다 쪽으로 길게 뻗어 나간 섬등반도라는 곳이다. 땅의 한 가지가 바다 쪽으로 쭉 뻗은 격이다. 이 섬과 반도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의 영토와 영해가 넓어졌다.
선착장이 있는 1구 대리 마을에서 2구 향리 마을 방향으로 길을 가다 보면 고개가 나온다. 이 고개에 올라서면 길쭉한 반도의 왼쪽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공룡의 긴 목처럼 보인다. 이 반도를 등대에서 오는 방향-오른쪽에서 보면 공룡의 꼬리처럼 보인다. 더 가까이 다가가면 공룡 몸통의 등줄기 같기도 하다.
이 색다른 반도의 길을 걸으려면 2구 마을을 통해 비탈길로 올라서야 한다. 올라서면 앞으로 길게 공룡의 등줄기 같은 길이 쭉 뻗어 있다. 양옆은 낭떠러지이고 그 밑은 시퍼런 바닷물이 출렁인다. 아슬아슬하다는 느낌과 함께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 마치 공룡의 등 위를 걸어가고 있는 느낌도 든다.
바닷바람이 온몸을 감싸면서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옥죄고 있었던 생각들이 바람결에 사라진다. 자유롭다는 것이 이런 걸까. 몸과 마음이 다 가벼워진다.
도시에서 구두를 신고 아스팔트나 보도블록을 밟으며 바삐 움직이면 겉으로는 화려하게 보이나 내면은 빈껍데기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자신의 단점이나 결함이 크게 다가오며 스스로 작아지기만 한다. 희망과 긍정은 추락해 보이지 않고 앞이 캄캄해질 때가 있다. 가졌던 꿈의 색깔이 엷어져 희미해진다.
섬등반도에 와서 걸으며 나 자신과 마주한다. 살아 있다는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짜릿한 전율이 스쳐 지나가며 나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의식이 솟아오른다.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존재로서의 내가 보인다. 내 기억, 체험, 사고, 지식, 관계 모든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것이며 가치 있는 것이라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다. 자신을 되찾으며 긍정의 세계로 들어간다. 꿈과 희망은 진한 색으로 나타난다.
자연은 아름답고 숭고하며 장엄하여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도전 받아 쪼그라든 의지와 좌절된 소망을 원래 모습으로 회복시켜준다. 생각 못했거나 무시했던 소중한 가치들에 눈뜨게 만들어준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장애가 가벼워진다. 이해할 수 없었던 사건의 벽이 흐물흐물해지며 만져지고 보이기 시작한다. 자연은 나를 바라보고 나를 찾게 해주고 한 생각을 품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다.
마침 해가 떨어지는 시간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늦게 해가 떨어지는 곳이다. 바다를 향해 걸어 나가며 낙조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수평선만이 구분을 만드는 드넓은 바다로 떨어지는 석양의 모습은 장엄하고 감동 자체다.
감동 속에 사랑이란 단어가 살갗에 와 닿는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사랑이란 얼굴을 가지고 다가온다. 신과 자연, 가족과 친구, 주위의 사람들이 웃으며 손을 내민다. 나도 따뜻하게 데워진 손으로 마주 잡는다.
섬등반도 바로 앞 무인도인 구굴도에만 사는 멸종위기에 처한 천연기념물 뿔쇠오리처럼 내 영혼은 섬등반도를 타고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김선인 ----------------------------------------------
김선인님은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현대수필문학회, 분당수필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