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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3년 10월호, 신작수필 16인선] 아내의 잔소리 - 문석흥

신아미디어 2014. 2. 27. 08:45

"늙은 아내의 잔소리와 간섭이 오히려 남편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는 요인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잔소리와 간섭은 당장은 싫지만 그로 인해서 자극을 받아 뇌 활동을 촉진시켜서 생명 연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수족관에 사는 작은 고기들이 바다나 강에 사는 작은 고기보다 수명이 더 길다는 연구도 있다. 그것은 같은 수족관에 사는 큰 고기들한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항상 살피고 큰 고기를 피해 몸을 민첩하게 움직여 운동량이 많아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후부터는 오래 살기 위해서라도 아내의 잔소리와 간섭을 고맙게 여기며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되지 않을까 싶다."

 

 

 

 

 

 

 아내의 잔소리      문석흥

 

   오전 중 운동을 하고 점심때 집에 돌아온 아내의 얼굴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새벽에 잠 안 자며 올림픽 한일전 축구를 볼 때만 해도 명랑했었는데 왜 운동을 다녀오더니 갑자기 굳어진 얼굴에 입마저도 굳게 닫혀 있는지? 함께 오래 살다 보니 표정만 보아도 대강은 짐작이 간다. 이 표정은 밖에서 원인이 되어온 것이 아니고 나한테서 온 것임을 직감했다.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늘 새벽 한일 축구전 본 이후엔 별로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아내 또한 아침식사하고 바로 운동을 갔기에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없었는데 왜 저렇게 변했나 하고 곰곰이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쨌거나 분위기가 이렇게 되었을 때는 전례에 따라 저절로 풀릴 때까지 둘이 다 침묵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이 침묵은 이날 오후부터 다음 날 밤까지 계속되었다. 말이 그렇지 집 안에 식구라고는 단둘뿐인데 하루 반나절을 말 한 마디 안 건네고 산다는 게 생지옥이 따로 없는 상황이었다. 침묵 둘째 날은 마침 일요일이자 비가 내려서 어디 마땅히 나갈 곳도 없어 고스란히 이 생지옥의 공간에서 보내야 했다.
   어디 탈출구라도 있었으면 하였는데 오후 좀 기울어 휴대전화 신호가 울렸다. 얼씨구나, 살았구나! 반가운 마음에 얼른 받았더니 이웃에 사는 친구였다. “뭐해! 날도 구진데 술이나 한잔 하지.” 이 얼마나 반가운 소린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 우산 받쳐 들고 쏜살같이 빗속을 뚫고 늘 가는 빈대떡 집으로 갔다. 오늘따라 술맛도 일품이었다. 거나한 취기 속에 친구와 헤어져 오면서 슈퍼에 들러 막걸리를 두 병 사 들고 집에 왔다. 나로서는 화해주라도 나눌 생각이었는데 아내는 술병을 보고도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았다. 침묵이 흐른 채 텔레비전만 볼 뿐이다.
   이윽고 내가 먼저 술병을 식탁에 꺼내놓으며 “술이나 한잔 합시다.”라고 선수를 놓았는데도 여전히 굳어진 채 반응이 없었다. 잠시 기다려 보다가 가능성이 없을 것 같기에 포기하고 잠자리로 가는데 그제야 앙칼진 소리로 “얘기 좀 해요!”라고 응사를 해 온다. 어쨌든 부닥쳐야 할 것이기에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아내는 드디어 화가 난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내가 화가 난 발단은 아침식사 때였다. 요즘 날씨가 너무 더워서 주방에서 가스레인지에 밥하고 국 끓이고 볶고 하는 요리를 피하고 간단히 식빵과 우유로 아침식사를 해 왔다. 오늘 아침에는 내가 내 나름대로 식빵에 잼을 발라서 먹는데 아내가 그렇게 먹으면 안 된다며 먹는 방식을 고쳐주려 하기에 나는 사소한 일에 간섭을 받는 것 같아서 순간 “놔둬! 내 멋대로 먹게!”라며 신경질조로 응수했다. 나는 그러고 나서 별 감정 없이 식사를 마쳤다. 그런데 아내는 그 순간 몹시 모욕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아내는 비로소 입을 열어 이 상황을 털어놓으며 한 마디 하기를, “싫더라도 ‘그래 어떻게 먹어야 하는데?’라고 하면 될 것을 남자가 되어가지고 그렇게도 아량이 없어요!”라고 쏘아붙인다. 듣고 보니 그 말도 옳고 내가 옹졸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젊은 남편 역으로 나오는 유준상이 보여주는 그 너그러운 모습이 떠오르며 나의 언행에 부끄러운 감이 들었다.
   근래에 와서 아내의 잔소리가 많아진 것은 확실하다. 여자들은 늙어갈수록 잔소리와 간섭이 많아진다고 한다. 그런데 늙은 아내의 잔소리와 간섭이 오히려 남편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는 요인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잔소리와 간섭은 당장은 싫지만 그로 인해서 자극을 받아 뇌 활동을 촉진시켜서 생명 연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수족관에 사는 작은 고기들이 바다나 강에 사는 작은 고기보다 수명이 더 길다는 연구도 있다. 그것은 같은 수족관에 사는 큰 고기들한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항상 살피고 큰 고기를 피해 몸을 민첩하게 움직여 운동량이 많아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후부터는 오래 살기 위해서라도 아내의 잔소리와 간섭을 고맙게 여기며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되지 않을까 싶다.

 

 

문석흥  --------------------------------------------

   문석흥님은 수필가, 경기도 오산 출생. 《수필공원》으로 등단. 교평문학상 수상. 수필집 《한마디 말이 모자라서》, 《바보의 변명》, 수필선집 《황금의 언어》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