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비평 2013년 11월호, 권두수필] 운명이란 이름의 전차 - 하길남
"인간세상을 아주 간단하게 이분법으로 갈라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웃고 간 인생’과 ‘울고 간 인생’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행복한 인생과 불행한 인생 등으로 나누어진다는 이야기다. 기쁨과 슬픔이 이 세상 모든 존재들에게 주어진 약속이라면, 그 근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스스로 자신에게 지워준 본인의 멍에인 셈이다."
운명이란 이름의 전차 - 하길남
운명은 생각이다. 아니 생각은 운명이라고 쓰고 싶다. 서두와 말미라는 것도 어쩌면 운명의 뒤바뀜일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운명이라는 이름의 전차’라고 했지만, 전차는 앞뒤가 없는 것이 아닌가. 30세도 안 된 어느 인기 가수가 돌아갔다고 모두들 애석해했다. 글쎄, 그럴 만한 사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의 노래를 보면 알 수 있으니까.
일생 동안 부른 노래의 주제는 ‘울음’이었다. 그 길로 영원히 간 것일 뿐이 아닌가. ‘흐느껴 울 안녕’ 하면서 그대로 흐느끼며 갔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비에 젖어 한숨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아닌가. ‘누가 울어 눈물 같은 이슬비’ ‘그 누가 울어울어 검은 눈을 적시나’ ‘가슴속엔 비만 내린다’고 노래했는가 하면, 그의 화두는 역시 ‘눈물’ 이외 어차피 ‘한숨 짓는 외로운 사나이,’ 즉 ‘한숨’과 ‘외로움’ 그리고 ‘서글픔’이 섞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눈물 젖어 불러보는 외로운 사나이’가, ‘비에 젖어 한숨 짓’고 있으니, 이제 영원히 떠나겠다는 말이 아닌가.
이렇듯 인간세상을 아주 간단하게 이분법으로 갈라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웃고 간 인생’과 ‘울고 간 인생’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행복한 인생과 불행한 인생 등으로 나누어진다는 이야기다. 기쁨과 슬픔이 이 세상 모든 존재들에게 주어진 약속이라면, 그 근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스스로 자신에게 지워준 본인의 멍에인 셈이다.
사실 노래 인생이란 그 자체가 비극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을는지 모를 일이다. 목을 트기 위해 폭포수 같은 곳에서 목에 피가 나도록 노래를 부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말이다. 무대 위에 서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짐작해 보면 알 일이다.
여러 사람 앞에 선다는 것이 어찌 그렇듯 쉽겠는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제 나름대로 자기가 좋아하고 자주 부르는 노래를 갖고 있는 걸 보면, 그 동안 노래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을 위안을 주었나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원시의 들판에서도 그들은 틈이 날 때마다 어울려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곤 했던 것이다. 사실상 노래는 그들에게 있어서 삶의 증표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래가 하늘, 즉 신을 기쁘게 하려는 인간의 의지였다니 말이다.
우리는 예부터 논일을 하거나, 여럿 힘을 합쳐 큰 돌을 옮길 때에는 모두 노래를 불렀다. 호흡을 맞추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그것이 같이 살아간다는 약속이었다. 한 핏줄이라는 공동선언이었다.
노래, 그 음정은 바로 존재의 근원이었던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말씀, 즉 음은 바로 진동이요, 진동은 존재의 근원이었다. 원시인들이 말이 바로 실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태어나면서 우주와의 생명적 교감을 하게 되는 그 울음소리에서 우리는 이를 짐작하게 된다. 그 울음소리가 곡소리로 변하면서 사람의 일생은 마감하게 된다. 그래서 초상집에서는 울음도 규격화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이고, 아이고.’ ‘어이, 어이.’가 그것이다.
우리는 소리로 태어나서 소리가 사라지듯이 소리의 일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 대한 슬픈 울음소리가 크면 클수록 좋은 곳에 간다는 믿음 때문에 사람들을 사서 곡소리를 크게 낸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귀신도 곡할 노릇’이라고 했다.
이 비극적 운명의 올가미란 것도 우리 인간만이 스스로 만들어 쓸 뿐, 동물이나 어느 미물들도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 때의 일이다. 어느 해 봄, 그는 재상 관중과 대부 습봉을 대동하고 고죽국을 징벌하러 떠났다. 그런데 예상보다 전쟁이 길어졌고, 그해 겨울이 되어서야 전쟁이 끝나게 되었다. 혹독한 추위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귀국하는 길이 관건이었다. 그런데 길을 잃고 말았다. 그때 늙은 말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그 뒤를 따라가자 큰길이 나와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산길을 행군하다 물이 떨어져 군사들이 갈증에 시달렸을 때, 흙이 한 치쯤 쌓인 개미집이 있으면 그 아래 물이 있을 것이라고 하여, 군사들이 서둘러 개미집을 찾아 군사들이 갈증을 면했다고 하지 않던가.
그들은 인간처럼 스스로 죽음을 부르지 않는다.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 줄 뿐이다.
하길남 ------------------------------------------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한국수필가 협회 제30회 및 제32회 한국수필 심포지엄 주제발표. 제1회 한중 수필심포지엄 한국측 주제 발표. 미국 한인문인협회 수필 특강. 창작수필 주최 수필 심포지엄 주제발표.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이사. 한국수필문학 대상 등 수상 다수. 경남 문학평론가협회 회장. 수필집, 시집, 문학평론집 20여권. 경남대학교 강의전담 교수 역임. 현재 동 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