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비평 2013년 10월호, 세상마주보기] 오키나와에서 삿포로까지 - 류창희
"나는 돈가스고 나물국이고 먹는 것에 관한 한, 가타부타 말할 자격이 별로 없다. 많이 먹어내지도 못하며, 즐겨 먹지도 않는다. 먹으려고 사느냐, 살려고 먹느냐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살려고 먹는다. 맛보다는 빈속을 때우는 ‘끼니’ 수준이다. 한 끼만 안 먹어도 허리가 접어지는 부실한 몸이다. 끼니마다 밥그릇 밑바닥이 보이기 시작하면 세 숟가락만 먹으면 끝! 두 숟가락만 먹으면 끝! 숙제처럼 먹는 ‘밥맛 없는 여자’다."
오키나와에서 삿포로까지 - 류창희
새댁 시절, 초인종 소리가 들리면 앞치마를 입은 채 쪼르르 대문으로 달려나갔다. 우유배달원이나 전복 껍데기를 사러온 아주머니는 주인이 없느냐며 시선으로 나를 밀어냈다. 우량아 선발대회를 하며 ‘나는 돈가스’의 몸매가 부의 상징이던 시절이었다. 수수깡처럼 깡마른 며느리를 어머님은 ‘대문이 부끄럽다.’라 하시며 안타까워하셨다.
7세기 후반 일본은 불교의 영향으로 식생활이 보잘것없었다. 덴무 천황이 ‘살생과 육식을 금지하는 칙서’를 발표한 이래, 1,200년여 년 동안 육식을 먹지 못했다. 메이지유신을 맞아 ‘서구를 따라잡아 서구를 뛰어넘자!’라는 구호로 스물한 살의 메이지 천왕은 하루아침에 “육식은 양생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외국인과 교제하기 위해 먹는다.”라며 해금을 한다. 바로 ‘돈가스의 탄생’이다. ‘화혼양재和魂洋才’ 즉, 일본의 전통적인 정신을 잃지 않고 서양문화를 배워서 조화시키고자 하는 ‘요리 유신’이다.
거리에 처음 육식 음식점이 들어섰을 때, 일반 서민들은 고기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코를 막고 눈을 가린 채 가게 앞을 지나갔다고 한다. 서양음식을 목으로 넘기지 못해, 드디어는 굶어 죽기 직전 상황에까지 내몰리게 된다. 이렇듯 거부반응이 있었지만, 육식은 정부 지식인으로부터 아래 서민으로, 양식의 개발은 아래서부터 위로 진행된다.
유난히 밥에 집착을 보이는 일본인들. 고급스러운 서양요리와는 쉽게 친숙해지지 못했지만, 대신 밥에 잘 어울리는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낸다. 카레라이스, 고로케, 돈가스 같은 양식을 개발하여 일양절충형의 요리법으로 일본인의 식탁은 풍부해진다. 문명개화를 위해 일본인들은 빵을 구워 중국식 팥소를 넣어 소금에 절인 벚꽃 꽃잎을 빵에 박아 단팥빵을 만들고, 영국식 미국식 프랑스식 빵으로 서민들의 식탁에도 매일 같이 국적 없는 빵이 오른다.
그래서였던가. 시어머님은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되던 해에 한국에 오신 분이다. 생활방식이나 식탁이 한일 절충형일 수밖에 없다. 결혼하기 전, 나는 빵과 우유는 아이들의 간식 수준으로만 알았다. 밥이 보약이며 밥심으로 산다고 여겼다. 그런데 시댁 어른들은 아침을 빵으로 드셨다. 밥이면 있는 반찬에 국 하나 더 끓이면 아침식사가 될 것을. 빵을 굽고 과일이나 채소를 갈아 주스를 만들고 매일 바뀌는 감자 마카로니 양상추 마요네즈 집에서 손수 만든 무화과잼 등 샐러드 종류에 두세 시간을 꼬박 서서 식구들의 시중을 들어야 했다. 후식으로 커피까지 마시고 나면, 나는 지쳐 혼자 구석에 앉아 저녁에 먹다 남은 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우리 서울 며느리, 촌스러워서 우짜노.” 나를 가엾다고 하셨다.
‘햇볕냄새가 배도록 볕에 잘 말린 황금색 빵가루를 입혀 튀긴 바삭한 돈가스를 한입 가득 먹고, 양배추를 아삭아삭 씹어 입 안의 기름기를 씻어낸다. 혀의 감각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 없이 고기와 같이 부서지는 일체감. 돈가스를 한입 먹고 입안에 남는 느끼함을 없애주는 양배추의 산뜻한 느낌이 더 맞았다.’라고 일본인들은 말한다. 어머님은 돼지고기 살 돈이 없던 시절, 난전의 싼 고등어나 꽁치 등을 튀겨내어 돈가스 효과를 내셨다고 한다. 그 당시 남편 친구들은 누구 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고 안 하고 요리를 먹었다고 말한다. 물론 생선 튀김 옆에는 양배추를 곁들였을 것이다. 어머님이 왜 그렇게 양배추의 채에 마음을 두셨는지 상상이 간다.
나는 양배추 채를 가늘게 써는 일에는 달인이다. 전날 저녁에 양배추 잎을 포를 뜨듯 발라내어 채를 쳐서 얼음물에 담가 놔야 아침에 생생하게 살아난다. 몇 년을 한결같이 중국집 주방장처럼 익숙하게 칼질을 해도 간혹 줄기가 섞일 때가 있다. 그런 날 어머님은 식사 도중 이불 꿰매는 돗바늘을 가져오라 하신 다음, 채 썬 양배추잎 줄기를 무명실처럼 바늘귀에 꿰라 하셨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다. 가늘게, 가늘게, 더 가늘게…. 어머님의 서슬에 베이지 않으려고 왼손이 오그라지는 것을 오른손으로 무던하게 덮던 시절이다.
한 조각의 돈가스에는 수많은 일본인의 지혜가 응축되어 있다.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서민의 힘으로 요리를 창조해갔다. 오키나와에서 삿포로까지 마치 벚꽃축전의 행렬과도 같이 삽시간의 꽃구름처럼 점차 올라갔다. 예를 들어 ‘17차茶’가 몸에 좋다 하면, 누구나 17차 병을 액세서리처럼 들고 다니는 획일적인 나라. 퓨전으로 전통을 재창조하고 지켜나가는 일본문화다.
일본에서는 싸구려 월급쟁이도 월급날이면 먹는다는 돈가스다. 돈가스를 먹어서일까.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영양의 균형으로 체력도 향상되었다. 또한, 학교 급식의 영향으로 점보코너가 생길 만큼 체력은 웃자랐다. 지금은 어떤가. 물질의 풍요와 과잉섭취 탓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인병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렇다. 인류를 살찌우는 ‘돈가스시대’는 이제 거부당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다이어트 중이다. 일본은 근대사 튀김옷을 벗을 때다. 힘의 열강이 아닌, 부드러운 감성으로 이웃나라와 함께 걷는 ‘문화 유신’을 할 때다. 거친 밥과 나물국의 향기로 더불어 상생하는 웰빙시대다.
그러나 나는 돈가스고 나물국이고 먹는 것에 관한 한, 가타부타 말할 자격이 별로 없다. 많이 먹어내지도 못하며, 즐겨 먹지도 않는다. 먹으려고 사느냐, 살려고 먹느냐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살려고 먹는다. 맛보다는 빈속을 때우는 ‘끼니’ 수준이다. 한 끼만 안 먹어도 허리가 접어지는 부실한 몸이다. 끼니마다 밥그릇 밑바닥이 보이기 시작하면 세 숟가락만 먹으면 끝! 두 숟가락만 먹으면 끝! 숙제처럼 먹는 ‘밥맛 없는 여자’다.
옛날 어른들은 밥 먹는 모습에 복이 들었다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본다면 나는 참 복이 없어 보인다. 사실 누군가 나에게 만 원짜리 이상의 음식을 사주면 집에 와서 반드시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기름진 것이 살로 가지 못하고 부담으로 배설된다. 그러나 오천 원 정도는 괜찮다. 오히려 된장찌개나 칼국수의 따뜻함이 온정으로 두터워진다. 퓨전식탁의 달인 어머님도 돌아가셨다. 내 삶이 반들반들 윤택하지 못하듯, 나의 몸은 여전히 대문이 부끄러운 가난한 여자다. 결코, 엥겔자수가 비싸게 치지 않으니 경제적으로 보면 남편만 횡재한 셈이다.
류창희 ---------------------------------------------
≪에세이문학≫ 등단. 제27회 현대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매실의 초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