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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10월호, 세상마주보기] 드림티처 - 김정호

신아미디어 2014. 1. 28. 08:48

"자라나는 청소년은 희망이고 꿈이다. 그들이 올바르고 훌륭하게 자랄 때 우리의 푸른 희망과 꿈은 이루어진다. 내가 ‘드림티처’라는 선생님으로 청소년 앞에 언제까지 서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동안 결코 짧지 않고 편안하지만은 않은 질곡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되살려 열정적으로 그들 앞에 서고 싶다."

 

 

 

 

 

 

 드림티처      김정호

   “선생님, 이거 받으세요.” 작열하는 여름 햇빛에 까맣게 그을린 피부와 단발머리에 평범하게 생긴 초등학생 소녀가 내민 손에는 비닐 껍질에 싸인 알사탕이 하나 들려있다. 소녀의 손이 통통하고 귀엽다. 반짝이는 소녀의 눈에는 수줍음이 묻어난다. 처음 맞게 되는 돌발 상황에 이것을 받아야 하나, 받지 말아야 하나 망설여진다. 결국 사탕을 받았다. 따뜻한 소녀의 체온이 전해진다. 가슴속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온다. 내당초등학교 4학년 현진이란다.
   초등학교 시절, 새 학기가 되면 선생님들이 새로 부임해오는 경우가 많았다. 학기 첫 조회시간에 교장 선생님이 새로 부임해 오는 선생님을 소개할 때마다 혹시 내가 아는 친척은 아닌지 까치발돋움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부산에 사는 삼촌이 선생님으로 부임해 오시는 것 같은 허망한 꿈을 꾸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그 꿈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내 꿈이 바뀌었다. 내가 커서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 어린 시절 꿈이 현실로 되는 경우는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점점 기울어져 가는 가세에 제대로 중학교도 입학할 수 없는 형편이었으나, 겨우 삼촌의 도움으로 중학교에 갈 수 있었다. 학교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이 얼마나 허망한 꿈인가를 알게 된 것도 이때였다. 항상 ‘촌놈’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달고 중학교를 졸업하였고, 고등학교는 끝내 졸업장을 손에 쥐어보지도 못했다. 이릴 때 꿈은 꿈으로 끝날 때 더욱 크게 느껴졌고 이루어지지 않은 꿈이 더 아름다운 법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선생님이라는 직함은 항상 존경의 대상이었고 그 이름만으로도 좋았다.

 

   퇴직하고 딱 10년째가 되는 올해 해토 무렵이다. KT문화재단에서 KT동우회의 협조를 받아서 퇴직 사우를 대상으로 ICT(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 즉, 정보통신기술 역기능 강사 모집공고를 이메일로 받았다. 모 기업인 KT에서 지식 나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발전해 가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역기능에 대한 예방교육과 인터넷, 스마트폰의 올바른 사용을 위한 강사 모집이었다. 급한 성격 그대로 조금도 망설임 없이 응시원서를 제출하였다. 응시원서를 제출해놓고도 나이가 많은 것이 마음에 걸려 걱정이다. 귀[耳]가 순해진다는 나이를 훨씬 넘기고 과연 합격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그래도 다행으로 생각되는 점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쌓아온 대학원 졸업의 석사 학력과 수필가로 활동하면서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거기에다 웅변으로 단련된 발표력은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는 편이라 위안이 된다. 1차 기본교육을 마치고 2차 집중교육과 강의 능력 테스트 과정을 거쳐 정말 어렵고 힘들게 ‘드림티처’라는 강사 자격을 부여 받았다. 글자 그대로 꿈의 선생님이 된 것이다. 드림티처는 초, 중, 고등학교 청소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맡게 된다.
   강의 자료는 KT문화재단에서 파워포인트로 제작되어 강사들에게 일괄 배부되었다. 강의 자료를 수도 없이 들여다보고 동작기능과 강의 설명 시나리오를 익혔다. 영진고등학교에서 시행하는 기성 강사의 강의에 참관교육까지 마쳤다. 서둘러 사설 컴퓨터 학원에 등록하여 파워포인트 실무에 대한 교육도 별도로 받았다. 드디어 기다리던 첫 강의 일정이 잡혔다. 처음 학생들 앞에 서서 강의를 한다는 생각에 들렁들렁하여 밤잠을 설쳤다. 처음 강의를 하게 된 곳은 대구시 서구 내당동에 있는 트리니트 지역아동센터이다. 지역아동센터라는 곳을 처음 가보았다. 전국에 수도 없이 많이 있다는 지역아동센터는 비록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방과 후 학원이나 취미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아이들을 모아 저녁시간까지 돌보는 자선단체다. 그러고 보면 대체로 영세민 자녀들로서 아버지나 어머니 한쪽이 없는 편부, 편모 밑에서 자라고 있거나, 부모 없이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는 조손 가정인 경우가 많다. 영세하고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 이러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일수록 나쁜 유혹에 빠질 확률이 상당히 높다. KT문화재단에서는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지역아동센터의 협조를 받아 ICT 역기능 교육을 하기로 하고 이제 첫발을 내딛는 우리에게 강의를 위탁한 것이다.

 

   처음 하게 되는 강의만으로도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를 보았다. 먹고 싶은 알사탕 한 알을 먹지 않고 선생님에게 건네주는 현진이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귀여운 현진이와 눈을 자주 맞추며 첫 강의를 무사히 마쳤다. 첫 강의를 무사히 잘 마쳤다는 기쁨과 함께 나도 선생님이 되었다는 긍지와 자부심에 가슴이 뿌듯해진다. 뒤이어 대구 시내에 있는 몇몇 아동센터 강의에 이어 안동, 칠곡 지역까지 출장 강의가 이어졌다.
   ‘선생님의 뭐는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다. 어떤 직업에도 애로사항은 있는 법이다. 선생님이라고 남에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강의 시간에 집중하지 않고 딴짓을 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고 시도 때도 없이 자드락거리며 엉뚱한 질문으로 수업 분위기를 망치는 아이들도 있다. 그들을 다독거리며 분위기를 살려 강의를 이어간다. 50분간 진행되는 강의에 낯선 단어와 외래어들이 그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보다는 착하고 귀여운 아이들이 더 많았다. 총명한 눈망울을 크게 뜬 채 시선을 모으고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들어 꼬박꼬박 아는 대로 대답하는 똑똑한 아이들이 더 많다. 그들을 볼 때마다 새로운 힘이 솟는다.
   자라나는 청소년은 희망이고 꿈이다. 그들이 올바르고 훌륭하게 자랄 때 우리의 푸른 희망과 꿈은 이루어진다. 내가 ‘드림티처’라는 선생님으로 청소년 앞에 언제까지 서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동안 결코 짧지 않고 편안하지만은 않은 질곡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되살려 열정적으로 그들 앞에 서고 싶다. 내일은 그동안 강의를 주로 해온 지역아동센터가 아닌 대구 수성구 신매동 매동초등학교에 강의 일정이 계획되어 있다. 진짜 프로 선생님들 앞에서 훌륭한 강의를 하고 싶다는 욕망과 열정에 강의 자료를 챙기는 손길에 정성을 더 한다. 오늘 밤에는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김정호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