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비평 2013년 10월호, 한국민속촌, 무늬로 남은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 - 신정호
"여기저기 반가운 얼굴들이 눈에 띄었는데, 누구보다 용인까지 어려운 길을 와주신 서정환 사장님의 건강해지신 모습에 마음이 흐뭇했다.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눈 적도 거의 없었고 어쩌다 마주치면 눈인사나 나누었지만 사장님의 온화하고, 푸근하게 웃으시는 모습은 영락없이 사람 좋은 호인의 모습이라고 느꼈었다."
우리들의 이야기 - 신정호
그날은 무더위가 한풀 꺾인다는 일기예보가 있기는 했지만 민속촌의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안에 깊숙이 들어 있는 유스호스텔까지 걷는 데, 따가운 햇살이 등을 파고들어 파라솔을 들고 오지 않음을 후회했다.
수필과비평 하계세미나는 왜 이리 최고로 더울 때와 최고로 추운 계절에만 개최하는지 모르겠다는 푸념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데 앞에서 진행을 맡은 집행부는 기획하고, 준비하고, 진행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애를 쓰며 행사가 원만히 잘 끝날 때까지 노심초사할까 생각하니 입을 다물어야겠다 싶었다.
이번 하계세미나는 서울에서 가까운 용인 민속촌에서 치르게 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더욱이 김포공항에서부터 작년에 개최지였던 제주지부 회원들과 동행하게 되어 유쾌한 담소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민속촌까지 왔다.
여기저기 반가운 얼굴들이 눈에 띄었는데, 누구보다 용인까지 어려운 길을 와주신 서정환 사장님의 건강해지신 모습에 마음이 흐뭇했다.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눈 적도 거의 없었고 어쩌다 마주치면 눈인사나 나누었지만 사장님의 온화하고, 푸근하게 웃으시는 모습은 영락없이 사람 좋은 호인의 모습이라고 느꼈었다.
함박웃음으로 맞이하는 안내석에서 등록을 하고, 쌓여있는 수필집을 욕심껏 챙기며 주위에 몰려든 회원들과 서로 자연스레 포옹과 악수로 만남의 기쁨을 나누는 모습들…….
참 신기하다. 각자의 터전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 일 년에 두 번이라는 짧은 만남인데도 오래된 친구처럼 이렇게 정겨울 수가 있을까. 아마도 자주 보진 못해도 글을 통해 이미 많은 사연을 헤아린 듯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되어버린 게지.
원탁에 둘러앉아 미처 못 나눈 인사는 눈인사로 가름하고, 올해의 문학상과 신인상 시상식을 보았다. 2006년 1월에 신인상을 받던 그날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여고시절부터 막연히 글쓰기를 좋아해서 문득 뭔가 떠오르면 노트에 끌쩍거려 두는 버릇이 있었다. 나이 쉰을 넘기자 부끄럽지만 내 보이고 싶었다. 좀 더 잘 써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 평생교육원에 수강 신청도 했다. 모처럼 마유 편하게, 즐겁게 글쓰기 공부에 빠져 들어가던 어느 날, 지도해 주시던 김 교수님의 권유로 설렘이나 기대감도 없이 어정쩡하게 등단을 했다. 평소 등단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내가 신인상을 받고 수필과비평 회원이 되어 몇 년째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나도 모르게 내면에 은근히 맴도는 자부심 내지는 빛나는 배지를 달고 있는 느낌이 듦은 스스로를 웃음 짓게 한다. 더욱 나 자신에게 놀라운 것은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꿈(?) 이 생긴 것이다. 세상에 나만의 글을 내보이고 싶은……. 하지만 아직은 이르고 조금 더 여물어야 될 터, 천천히 생각하기로 여유를 잡는다. 아무튼 이번에 황의순문학상, 수필과비평 문학상을 수상하신 세 분과 신인상을 수상한 분들께 마음의 꽃다발을 보낸다. 오늘이 있기까지 일상에서 겪은 희로애락을, 수없는 담금질을 거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감동하는 작품세계로 펼쳐 보인 수상자들의 열정과 끈기가 장하고 놀랍다.
세미나의 정점은 손광성 선생님의 ‘대상을 여는 일곱 개의 열쇠’라는 주제로 한 문학 강연이었다. 집필 이전에 숨겨진 대상의 본질을 찾는 방법에 대한 강연을 들으며, 나의 글은 어떤 대상의 본질을 찾아 쓰고 있는 걸까? 내 글의 색깔, 스타일은 어디에 속할까?를 생각해보지만 스스로 판단하기가 어렵다. 글쓰기의 대상에 대해 개성적 시각을 그리고 따뜻한 시선,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라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의 글쓰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유익한 시간을 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뒤풀이로 각 지부의 장기자랑 시간이 되었다. 각 지부의 수줍은 듯, 얌전한 듯 그러나 대담하게 내지르는 끼는 온 좌중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특히 인천지부회원들이 흑백의 의상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무대 위에 일렬로 늘어선 모습은 가히 위압적이었다. 그러나 앙탈 부리듯 주절대는 기가 찬(?) 후렴구는 많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나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이 있어 다음 날의 일정을 함께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모처럼 만난 문우님들과 한국 민속촌의 여기저기를 둘러볼 기회를 갖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급한 마음에 어둠이 덮인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고속도로를 빠르게 질주하는 차량의 행렬 속에서, 지금쯤 무리지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정경을 떠올리며 나는 맘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이제 다시 만날 겨울을 기약하며, 아듀!!
신정호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