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신인상 수상작

[수필과비평 2014년 1월호, 제147호 신인상 수상작] 부부살이 - 강명량

신아미디어 2014. 1. 3. 13:57

"저마다 삶의 방식과 사고가 다르니 함부로 훈수를 둘 성질의 일은 아니다. 나중에라도 언니가 은퇴를 하게 되어 정 심심하면 다른 부부들 소꿉놀이를 시샘만 할 게 아니라 형부랑 다시 처음부터 평범한 ‘부부살이’를 연습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얘기해 주고 싶다. 안 해 본 일이라 분명 새롭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생각만큼 행복해질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부부살이      강명량


   예전에 우리 집에 코미디언 남녀가 만담을 하는 레코드판이 있었다. 부부가 같이 밥을 먹다가 부인이 굴비 알을 날름 집어 먹었다고 밥상 앞에서 매를 맞았다며, 세상의 죄 중에도 먹는 죄는 없다고 하소연하는 노래가 들어 있었다. 가난한 시절에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있을 법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 사연이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해서 기억에 남아 있다. 며칠 전에 그와 비슷한 촌극이 벌어지자 문득 그 노래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생각할수록 우스워서 혼자 킬킬댔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왠지 기분이 씁쓰름하다. 언니와 형부의 이야기이다.

 

   언니가 경주에 내려온 김에 우리 부부랑 함께 단풍 구경을 가자고 제의를 해서 시간에 맞춰 예약한 식당에 갔다. 형부가 시장기가 돌았던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된장찌개 뚝배기에서 자신의 몫으로 먼저 한 그릇을 펐다. 문제의 발단은 찌개 속에 들어있는 두부였다. 여러 사람이 먹을 건데, 형부가 두부를 너무 많이 퍼갔다고 언니가 한마디 한 게 형부의 비위를 건드렸던 모양이다. 더구나 처제 앞에서 그깟 두부가 뭐라고 망신을 당했으니 무안한 정도가 아니라 분노가 치밀었던 것 같다.
   “자, 도로 가져가. 마누라한테 밥 한 끼도 못 얻어먹고 살면서 두부 좀 먹는다고 내가 이런 소리까지 들어야 해?”
   느닷없이 언성을 높이더니 퍼갔던 두부를 뚝배기에다 부으려고 하였다.
   “그러면 자기가 좀 퍼주지 그랬어. 마누라라는 게 집에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해요. 집안 살림은 도통 나 몰라라 해서 내가 다 건사를 해야 하니 말이야. 당신은 남편이 뭘 좋아하는지 알기나 해?”
   ‘쫑알쫑알’ 그런 말은 보통 가정에서는 마누라가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을 때 쓰는 레퍼토리이다. 언니도 질세라 발끈해서 대드는데, 자칫 부부싸움으로 번질 기세였다. 나는 얼른 식당 아줌마에게 두부를 더 달라고 부탁하고 언니에게 참으라고 눈짓을 했다. 형부는 자신 때문에 얼어붙은 분위기를 어쩔 줄 몰라하며 상황을 만회해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니 더 우스꽝스러워졌다.
   철학계에서 내로라하는 석학이요, 대학에서 ‘정의’를 강의하는 분이라도 배고픔 앞에서는 분배 정의를 구현하기가 이론처럼 쉽지 않다는 걸 모두들 눈치채고 있는데도 말이다. 형부는 사회 활동으로 정신없이 바쁜 언니를 대신하여 주부 노릇까지 해야 한다고 종종 처제들 앞에서 농담 같은 진담으로 신세 한탄을 하곤 한다. 그런데 자기 것부터 챙기는 걸 보니 아직 주부로서는 자격 미달이라고 형부를 놀려주려다가 괜스레 불똥이 내게 튈까봐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꾹 눌러 참느라 애를 먹었다.
   형부는 유머를 좋아해 웬만한 일은 우스개로 넘기는 편인데, 그날따라 꽁해진 마음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지 점심때 또 된장찌개가 상에 오르자 대뜸 언니에게 “두부 먹어도 돼요?” 하며 은근한 말로 신경을 건드렸다. 그럴 때는 꼭 ‘미운 일곱 살’ 아이 같다. 그 순간 어쩌면 형부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던 그 아이가 지금 심술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부의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홀로 되어 삯바느질로 세 아이를 키우면서 어떡하든 자식들을 출세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버텨 왔다고 한다. 형부는 장남이라는 이유로 어려서부터 조그만 잘못에도 엄마의 호된 매를 맞고 자랐다고 한다. 동네 친구들이 “너네 엄마 계모지?” 하고 놀리니까 형부가 계란 반찬을 내보이며 이렇게 비싼 계란을 싸주는 걸 보면 계모는 아니라며 정색을 하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된 형부의 어머니는 대성통곡을 하더니 그 후로 매를 대지 않더라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엄마의 살가운 정을 느껴보지 못한 형부에게 맛있는 반찬이란 엄마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증거였으리라.
   지금은 부부가 다 사회의 저명인사가 되었으니 형부는 어머니의 소망대로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인물이라 하겠다. 하지만 꼭두새벽에 일어나 밥을 짓고 몇 가지 안 되는 반찬이나마 정성스레 차려내는 아내의 밥상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런 면에서는 남편으로서 대접받는 삶은 아니었다. 성공이란 목표를 향해 앞으로만 달리던 때는 아내의 밥상 따위는 배부른 투정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로우대를 받는 나이가 되니까 아내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상이 점점 그리워지는가 보다.
   그들 부부는 평생 믿음직한 동지로서 큰 것을 성취했지만, 일상의 부부들이 누리는 소소한 행복은 놓치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남편에게 생선을 발라준다거나 남편이 길을 건널 때 내 손을 잡아 주는 등의 무심결에 하는 동작 하나까지 형부는 눈여겨보며 부러워한다. 언젠가 언니까지 내게 “꼭 그렇게 티를 내야 하냐.”며 핀잔을 주는 통에 민망했던 적도 있었다. 부부간에 스스럼없는 그런 모습이 그들 눈에는 유별난 애정행위로 보였나 보다.

 

   황룡골로 해서 기림사까지 단풍구경을 하는 동안 기분이 많이 풀렸는지 형부가 기차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최근에 읽은 인터넷 유머를 하나 들려주었더니 언니가 몹시 재미있어 했다. 둘이서 계속 티격태격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 정도로 그친 게 퍽 다행스러웠다. 차에서 내리기 전에 내가 “형부를 구박하는 마누라라도 있는 게 좋잖아요. 그나마도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 거예요?” 했더니 멋쩍었는지 아무 대답이 없다. 그래도 차에서 내려서는 언니 짐까지 죄다 챙겨서 끌고 간다. 이왕이면 보기 좋게 형부랑 언니가 나란히 걸어갈 것이지 여전히 몇 걸음 떨어져 가고 있다. 한때 나는 언니의 표현을 빌려 ‘소셜 포지션’ 높은 그들의 화려한 삶을 부러워하고 상대적으로 초라한 내 모습에 주눅 들어 했는데, 초야에 묻혀 살고 있는 우리 부부를 두고 그들이 부럽다 하니 세상 참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속담도 생겼겠지만.
   누군가는 ‘아내가 밥이며, 밥은 곧 사랑’이라고 하였다. 언니도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도 아닌데, 한번쯤 형부를 위해 두부를 듬뿍 넣고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맛있게 끓여서 사랑의 맛을 보게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형부는 배가 고픈 것보다 아내의 사랑이 고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마다 삶의 방식과 사고가 다르니 함부로 훈수를 둘 성질의 일은 아니다. 나중에라도 언니가 은퇴를 하게 되어 정 심심하면 다른 부부들 소꿉놀이를 시샘만 할 게 아니라 형부랑 다시 처음부터 평범한 ‘부부살이’를 연습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얘기해 주고 싶다. 안 해 본 일이라 분명 새롭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생각만큼 행복해질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강명량  ------------------------------------------------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꽃마을 경주한방병원’ 팀장.

 

 

신인상|당선소감


   신라 경문왕의 복두장이는 제가 본 것을 발설할 수 없어 가슴이 터질 듯 갑갑하고 입이 근질거렸다지요. 죽음이 임박해서야 ‘도림사’ 대나무 숲에 가서 이렇게 외쳤다는군요.
   “우리 임금님 귀는 나귀 귀처럼 생겼다.”
   오랫동안 복두장이처럼 살았네요.
   계집애는 함부로 떼를 쓰며 큰 소리로 울어서는 안 되고. 다 큰 처녀는 어디서건 조신하게 행동해야 하고, 시집간 여자는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사는 법이 아니라고 어른들이 그러시기에 늘 입을 꼭 다물고 지냈거든요. 더 이상은 안 되겠어요. 꾹꾹 눌러놓아도 삭히지 못한 말들을 속 시원히 뱉어내려 이제 저도 수필이란 대나무 숲에 가보려고요. 대나무 잎들이 저희들끼리 속닥이다 바람한테 소문을 낸다 해도 어쩔 수 없지요. 부끄럼 탈 나이도 아닌걸요. 길을 일러주신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 길로 계속 가다 보면 정말 내 마음을 알아주는 ‘수필’을 만날 수 있겠지요.
   그럼, 해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