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문예 2013년 여름호, 수필] 낙타는 숲으로 들어갔다 - 이종열
"니체는 문명을 정의하며 질곡과 고난의 중세를 낙타의 시대로, 자아와 반항으로 자유를 얻은 근대를 사자의 시대, 제멋대로 사는 현대를 어린아이의 시대로 구분했다. 어머니는 열다섯에 조실부모한 오누이만 동그마니 앉아 있는 집에 시집온 이래 낙타의 시대를 살았다. 이에 비하면 나는 사자의 시대, 내 자식은 어린아이의 시대를 산다고 할 수 있다. 어린아이는 낙타처럼 복종하지도 사자처럼 사납지도 않지만 낙타와 사자보다 유연하고도 천진하게 모든 것을 이겨버린다"
낙타는 숲으로 들어갔다 / 이종열
돈황(敦煌)에서 낙타를 탔다. 낙타는 사람이 타고 내릴 때면 앞다리를 구부린다. 편히 타라는 듯 앉을 땐 앞무릎을 먼저 꿇고, 일어 설 때는 뒷다리가 먼저 일어선다. 모래도 울고 간다는 명사산(鳴砂山)을 낙타로 한 바퀴 돌았다. 낙타는 몇 마장을 걸어도 표정이 없었다. 험하게 다뤄도 설치거나 성낼 줄 몰랐다. 수줍고 두려워하며 비켜서기만 했다. 그렇게 보고 자랐나 보다. 이따금 몽땅한 꼬리를 흔들며 비명 같은 울음을 터뜨린다.
위구르족 마구간에는 늙은 낙타가 모로 누워 있었다. 목화 다발을 깔고 누운 낙타의 마른 다리는 서리 맞은 푸성귀처럼 구겨졌고 쌍으로 난 혹(肉峰)은 늙은이 젖가슴처럼 쭈그러졌다. 그러나 쌍꺼풀 사이로 열린 실눈만은 끊임없이 뭔가를 찾고 있었다. 이따금 마른 되새김질을 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할미낙타 위로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겹쳐졌다.
어머니는 관절염이 깊어지자 고향집 안방에 누웠다. 중방벽(中枋壁)에 뚫린 살창은 어머니가 바깥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 액자 같은 창엔 하늘이 토담 위에 걸렸고, 강아지풀 두 이삭과 바랭이 몇 줄기가 하늘거리는 풍경이 들어있었다. 홑이불 아래로 손을 넣어 다리를 잡아보았다. 언제나 건강하고 쉴 줄을 모르던 어머니가 아님에 찔끔했다. 엄마의 다리는 거미다리 같았다. 나는 눈물을 감추려고 방을 나왔다.
여름이면 아래채 담벼락에 왕거미가 집을 지었다. 땅거미가 내릴 무렵 거미를 끌어내려 데리고 놀다가 자치기 작대기로 눌렀는데 배가 터져버렸다. 배에서 수많은 새끼가 오글오글 기어 나왔다. 엄마는 놀란 내게 “거미새끼는 자기를 지고 다닌 어미를 파먹고 나온단다. 새끼가 자라면 어미는 끝이라”고 하셨다. 터진 배를 끌고 어둠속으로 비실비실 사라지던 왕거미의 가느다란 다리가 슬펐다.
고통의 끝이면 죽음도 희망이 되는지……. 이런 육체적 고통을 겪을 바엔 차라리 마지막을 맞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삭정이 같은 손가락으로 내 손을 잡고 “봤으니 됐다. 이젠 가거라.” “여기가 우리 집인데 어딜 가요?” “당장 죽는 것도 아닌데. 살길을 찾아야제. 어서.” 어머니는 밭은기침을 몰아쉬며 집요하게 채근했다. 밤늦게 서울 집에 도착하니 나보다 먼저 부음(訃音)이 도착해 있었다.
장례를 치르면서 눈물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떠났을 때 눈물을 주체할 수 없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마치 내가 자리를 떴기 때문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처럼 마음의 공황이 일었고 주검을 마주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보내야겠다고 작정하고 있었는데 당신이 먼저 떠나버린 배신감이 일기도 했다. 장례기간 내내 그것만 곱씹으며 보냈다.
무엇하나 추억 아닌 것이 있겠냐마는 어머니는 모든 게 두렵고 부끄러웠다. 언제나 남의 편인 남편이 두려웠고 일곱이나 되는 자식들도 두려웠다. 배우지 못해서 부끄러웠고 사위보다 늦게 자식을 낳아서 부끄러웠다. 온갖 사연의 꾸리를 감아쥐고 무표정 그대로 낙타처럼 땅만 보고 걸었다. 그 여름 어머니는 레테의 강을 건너 자유의 몸이 되었다.
니체는 문명을 정의하며 질곡과 고난의 중세를 낙타의 시대로, 자아와 반항으로 자유를 얻은 근대를 사자의 시대, 제멋대로 사는 현대를 어린아이의 시대로 구분했다. 어머니는 열다섯에 조실부모한 오누이만 동그마니 앉아 있는 집에 시집온 이래 낙타의 시대를 살았다. 이에 비하면 나는 사자의 시대, 내 자식은 어린아이의 시대를 산다고 할 수 있다. 어린아이는 낙타처럼 복종하지도 사자처럼 사납지도 않지만 낙타와 사자보다 유연하고도 천진하게 모든 것을 이겨버린다.
문제는 얼마간 지나서부터였다. 평소엔 관심도 없다가 떠나니 알게 된 것처럼 잘못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 나를 압박했다. 마지막 뭔가를 흘리고 온 나를 어디선가 어머니가 보고 있을 것 같아 부끄럽고 두려웠다. 급기야 무슨 벌이라도 받고 싶은 감정이 나를 눌렀고 그 무게는 해가 가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럴수록 어머니가 다시 올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해마다 어머니 제삿날이 오면 무거운 마음으로 전석(前夕)을 맞는다.
낙타가 집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첫째는 물 때문이고 다음으로 새끼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낙타는 십리 밖의 물 냄새를 맡으며 낙타처럼 자기새끼를 찾는 동물은 없다고 한다. 몽골에서 풍장(風葬)을 할 때 어미낙타와 새끼낙타를 데리고 가서 어미 앞에서 새끼를 죽여 훗날 풍장 했던 자리를 찾을 수 있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 해가 지나도 새끼의 냄새를 기억하고 그 자리를 찾아가는 낙타의 습성을 이용한 것이란다.
그 여름 엄마는 강아지풀이 하늘거리던 들창으로 무엇을 쫓았을까. 명사산 할미낙타는 실눈으로 무엇을 쫓았을까. 물소리를 쫓았을까 자신의 신기루를 그렸을까. 사막의 초목은 물을 따라 자라고 그 초목의 길을 동물이 따라간다. 낙타는 죽어서 숲으로 간다고 위구르인들은 믿는다. 거기엔 달콤한 샘과 부드러운 풀이 있다. 사막 끝에는 오아시스가 있듯이 들창 너머에는 어머니의 하늘이 있었으리라. 두렵지도 부끄럽지도 않은 하늘이.
이 종 열 -------------------------------------------
경북 청도 출생. 2006년 ‘에세이플러스’에 〈키위들의 연가〉로 등단. 2009년 제3회 ‘계간문예’ 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주황색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