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비평 2013년 9월호, 사색의 창] 한 알의 쌀 속에 - 김순자
"하늘과 땅을 부모로 세상에 나온 뭇 생명체들은 대자연 속에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자연 속에 녹아있는 땅의 기운, 물의 기운, 불의 기운, 바람의 기운이 볍씨를 싹틔우고 성장시키고 마침내 알곡의 결실을 가져오게 한다. 이렇게 얻어진 쌀을 내가 취했으니 쌀은 내 안에 들어와 내가 되고, 후에 내 몸 또한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흩어져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리니 그땐 내가 무엇으로 그들과 만나게 될지 모를 일이다. 한 알의 쌀 속에 우주가 담겨 있음을 배우는 아침이다."
한 알의 쌀 속에 - 김순자
청량한 아침 공기 듬뿍 섞어 쌀을 씻는다. ‘쌀강쌀강, 싸르락 싸르락.’ 그 희고 작은 알몸들을 서로 비벼대며 간지럽다고 웃어 댄다. 손가락 사이로 가득 넘쳐나는 투명한 알갱이들이 반짝이는 보석 같다. 아니 보석보다 귀한 생명의 숨결이 나의 육감을 자극하고 있다.
쌀독의 배를 그득 채운 알곡들을 대할 때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가슴 가득 푸근함이 밀려오기도 하고 아릿한 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넉넉한 사랑으로 생명을 품어 키워 주셨고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돼 주셨기 때문일까. 굶기를 밥 먹듯 했다는 어머니의 한 서린 고생담이 뇌세포 깊숙이 자리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맑은 물에 목욕재계하고 신성한 임무를 기다리는 동안 반투명의 몸 빛깔은 어느새 순백색으로 변해간다. 부드럽고 말랑한 밥으로 변신하기 위한 수순일 게다.
작은 볍씨 하나가 땅을 비집고 나와 알찬 곡식으로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외풍에 부대끼며 스스로 단단해지려고 애를 썼을까. 그러나 이젠 그 강직함도 다 내려놓으려 한다. 물과 불과 조화롭게 잘 어우러져 낱낱이 따로 존재하던 본연의 모습과는 영 다른, 연질의 응집된 형태로 변모해 갈 것이다. 촉촉하고 구수하고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친근한 맛, 자연에서 퍼온 맑은 기운을 목으로 넘기며 오늘 하루도 힘차게 시작할 가족들을 떠올린다.
쌀과 밥! 생명줄처럼 소중하지만 늘 곁에 있어서, 공깃돌처럼 흔해서 우린 감사함을 잊고 산다. 최소한 우린 그들 앞에 겸손해야 하리라. 그들이 던져주는 교훈에 귀 기울여야 하리라. 단단한 껍질 속에 옹이진 자신의 관념이나 아집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타인을 배려하는 여유와 부드러움으로 둥글둥글 살아간다면 세상이 조금은 더 밝아지지 않을까.
오늘 하루도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정기精氣를 불어 넣어줄 소중한 쌀! 한자漢字의 미米와 청靑이 만나 힘의 상징인 정(精)이 되었단다. 땅에서 얻어진 쌀의 푸르고 맑은 기운이 우리에게 삶의 에너지로 제공되는 자연의 이치이리라. 이 고마운 쌀과의 인연은 태어나면서부터 이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이어지는 친숙하고도 오랜 관계가 아닐까 싶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물리는 엄마의 젖, 첫국밥으로 먹은 하얀 쌀밥과 미역국의 산물이 아니던가. 어릴 적 어머니가 동생을 낳으신 날 안방 윗목에는 정갈한 볏짚이 깔리고, 아기를 점지해 주신 삼신할머니께 예를 올리는 밥상이 차려졌다. 하얀 사기주발에 봉곳하게 담은 쌀밥을 정성껏 올리고 비손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중생을 구제하는 공덕을 쌓기 위해 부처님께 올리는 예물 중에도 공양미가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선조들의 생활 속에는 쌀을 신성시하고 생명을 귀히 여기는 민족 정서가 녹아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사람이 이승의 짐을 벗고 저승으로 돌아갈 때 ‘밥숟갈 놓았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인명이 다할 때까지 늘 우리 곁을 지켜야 하는 쌀의 존재가치가 새삼 중하게 여겨진다. 어머니가 운명하기 직전, 아버지는 얼른 미음을 준비하라 이르셨다. 급한 나머지 쌀밥을 푹푹 끓여 만든 멀건 밥물을 떨리는 손으로 몇 숟갈 떠 넣어드렸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 넘기는 곡기였다. 이렇게 우리네 삶의 시작과 끝에서 운명을 같이하며 생명을 지켜온 쌀. 그는 곧 우리네 생의 든든한 동반자가 아닐까 싶다.
태양을 뒤세우고 한발 먼저 달려온 이른 아침, 어디쯤에서 왔을까? 맑은 바람 한줄기 기척 없이 디밀고 들어와 쌀 씻는 나의 손등을 간질인다. 어쩜 이 쌀 알갱이들이 넓은 들에 살았을 때 만난 적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햇살 따사로운 봄날, 깔끔하게 모내기를 끝낸 논두렁에선 살랑살랑 미풍으로, 땡볕에 숨이 막혀 헉헉댈 땐 시원한 소나기 바람으로, 살이 통통 여물기 시작하는 가을들판에서는 선들바람으로 이 쌀과 만났을지도 모른다.
대지의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그곳, 쌀의 고향으로 마음의 눈길을 돌려 본다. 거칠 것 하나 없이 탁 트인 하늘을 이고 골고루 내리는 태양 볕 받아 쪼이며 가끔은 고마운 빗물로 목을 축이기도 하고, 실바람에 몸을 맡긴 채 초록 머릿결 나풀대며 춤을 추기도 했을 게다. 낮 동안 동화작용 하느라 쉴 새 없이 고단했으니 밤에는 별빛 달빛의 위무를 받으며 편히 쉬었을까? 그렇게 별 탈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고, 때론 폭염과 가뭄으로 속이 타 들어간 적도 있었으리. 느닷없이 몰아치는 태풍에 몸살을 앓지는 않았는지…….
지금쯤 만삭된 몸으로 추수를 기다리는 벼이삭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하늘과 땅을 부모로 세상에 나온 뭇 생명체들은 대자연 속에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자연 속에 녹아있는 땅의 기운, 물의 기운, 불의 기운, 바람의 기운이 볍씨를 싹틔우고 성장시키고 마침내 알곡의 결실을 가져오게 한다. 이렇게 얻어진 쌀을 내가 취했으니 쌀은 내 안에 들어와 내가 되고, 후에 내 몸 또한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흩어져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리니 그땐 내가 무엇으로 그들과 만나게 될지 모를 일이다.
한 알의 쌀 속에 우주가 담겨 있음을 배우는 아침이다.
김순자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