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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문예 2013년 여름호, 시] 파묘(破墓) 외 1편 - 하수현
신아미디어
2013. 12. 8. 22:06
문학과 예술 종합 계간지 『계간문예』여름호에서 하수현님의 시 2편을 소개합니다.
파묘(破墓) 외 1편 / 하수현
누구나 한 번은 가야 하는
그 길을 가며, 그대 이미 종언(終焉)을 고하였네
더 이상 잃을 것도 두려움도 없는데
새 자리에 다시 고운 흙 덮고 빗돌 세워
무엇을 기념하리,
이 백골이 무얼 묵시(默示)하는지 스스로 안다면
그대 육신은 지금 다 흩어주겠네.
솔뿌리는 두개골을 뚫고 들어와
모든 사유(思惟)를 중지시키고 입도 막아버렸기에
이젠 그 어떤 변명도 항의도 할 수 없으련만,
남은 뼈마저 허물어버린 뒤에는
대지(大地)로 귀환할 것임을 알고 있네
생전에 자신의 것을 던져버리지 못한 점은
그대의 부질없는 후회로 남으려는가
입을 닫은 그대여,
이제 모든 권한은 남은 자들이 쥐고 있다네.
가난하다는 것
가난을 안고 사는 게
불효가 된다는 걸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야
뒤늦게 알게 됐지요
나는 정말 바보입니다
세상에,
그걸 지금에야 알게 되다니
말이나 되나요, 그리고
이 죽일 놈의 가난,
도저히 용서가 안 됩니다.
하 수 현 --------------------------------------
포항 출생. 1985년 월간 ‘한국문학’으로 등단. 김만중문학상 외 다수 수상. 시집 《나의 연인은 레몬 향기가 난다》, 장시 〈올리브나무〉, 〈겨울 나그네〉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