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비평 2013년 9월호, 수필가가 감동한 명수필⑨-강호형의 <부부夫婦>]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 한 경 선
"살면서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부부 사이 또한 복잡하고 미묘하다. 흐린 그림을 그렸다 지웠다 하지만 아직도 부부란 이런 것이다 정의 내릴 수 없다. 수필 <부부>의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 왜 내 눈에 눈물이 핑 돌았는지 그것도 도무지 모르겠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 한 경 선
부부夫婦 / 강호형
무던한 부부지간에도 가벼운 말다툼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도에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없는 것보다 낫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가벼운 입씨름이 자칫 무미건조해지기 쉬운 부부간에 활력소 구실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짓도 오래 지속하다 보면 단골 ‘메뉴’ 같은 것이 생기게 마련인데, 그것이 자존심에 저촉되는 사안일 경우 잘못하면 위험수위로까지 치닫는 수도 있다.
자식에 관한 문제가 그중의 하나다. 자식은 어디까지나 부부의 합작품이니만큼, 부모 중 어느 한 사람을 닮거나 두 사람의 특성을 적당히 섞어서 닮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럴 경우 부모 모두가 조금도 나무랄 데 없는 완전한 인간이고, 자식들 또한 그런 부모를 완벽하게 닮는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것은 한낱 이상론에 지나지 않는 욕심일 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남매를 둔 우리 부부의 경우가 그렇다. 외모로만 보면 딸은 나를 닮았고, 세 살 아래인 아들은 아내를 닮았다는 것이 중평인데, 외모가 반드시 성격까지 결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 비교적 활달한 편인 아내의 성격이 딸아이에게 더 많이 유전된 듯한 반면, 그렇지 못한 내 성격은 아들아이에게서 더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외모나 성격이 이처럼 공평하게(?) 교차하여 닮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발견될 때마다 원망의 화살은 내게로만 날아드니 딱한 노릇이다. 그 첫째는 고집이 세다는 점인데, 여기서 안安씨와 최崔씨 제현께는 양해를 구하는 바이거니와, 고집이 세기로는 ‘안安·강姜·최崔’라는 는 말을 진작 들었더라면 인생 행로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푸념이 나오는가 하면, 고집불통의 세 강가들 틈에 어쩌다 선량한 오 씨 하나가 끼이게 된 것은 순전한 팔자소관이라며 신세를 한탄하기도 한다. 요즈음은 예외가 인정되는 모양이지만, 우리나라 관습상 자식의 성씨는 아버지를 따르도록 규정한 민법의 오류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아내는 언필칭 안·강·최를 내세우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 씨 고집 또한 이에 뒤질 것이 없어 보이니 하는 말이다.
둘째는 씀씀이에 관한 문제다. 아이들 용돈을 월급제로 하고 있는데, 나이 차이만큼 액수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딸아이는 그중의 일부를 떼어 적금을 넣는 반면, 아들녀석은 보름을 못 넘기고 가불 신청서를 내밀기가 예사인 것이다. 물론 가불이 쉬울 리 없다. 그러니 정 급해지면 제 누나에게 꾸어 쓰기도 하는 눈치인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던지 어느 날인가는 무슨 쪽지를 내밀면서 서명을 해달라기에 보니 보증서다. 저 아무개는 누나에게 일금 얼마를 차용하는바, 모월 모일까지 갚을 것이며, 그 보증인으로 나를 세운다는 내용인 것이다. 어이가 없어 두 놈을 싸잡아 놓고 야단을 치려니까 딸아이가 해명을 하고 나섰다. 녀석의 신용도가 엉망이라 그렇게라도 해서 버릇을 고칠 작정이라는 것이다. 이 장면을 목격한 아내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아이들이 혼쭐이 난 것은 물론 애꿎은 나까지 공격을 당했다. 녀석의 하는 짓이 나를 닮았다고- 대들어봐야 과거지사를 들먹일 것이 뻔하니 국으로 잠이나 청할밖에.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이들의 학교 성적이다. 이 경우에도 물론 올라가는 건 오 씨 덕, 떨어지는 건 강 가 탓이다. 그러나 이건 자존심의 문제다. 내가 여사여사한 과거의 실적을 열거해가며 반론을 제기하면 아내는 더 큰 실적을 들고 나온다. 차츰 언성이 높아지고 목에 핏대가 설 때쯤 되면, 어김없이 결정타가 날아온다. 게으르다는 것이다.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사당오락四當五落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도외시하고 게으름을 피운 데서 오는 필연의 결과이며, 그 책임 역시 못된 유전인자를 물려준 내게 있다는 것이다. 하기야 사십대의 만학으로, 나로서는 엄두도 내본 일이 없는 학위까지 취득한 ‘오 씨’인 만큼 이 대목에서도 대세를 뒤집을 생각은 접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오 씨에게도 약점은 있다. 운동신경이 평균치 이하로 둔하다는 사실이 그것인데, 여학교 때 조별로 달리기를 하면 다음 조의 선두와 경쟁을 벌였노라는 고백을 한 적이 있을 정도다.
마침 딸아이가 달리기에서 일등을 한 일이 있었다. 아내의 약점을 알고 있는 나로서야 더 좋은 기회가 없다. 항복을 받아낸 것은 물론이었다. 아들아이가 체력장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자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래저래 기분이 좋은 김에 내 자랑까지 늘어놓았다. 내 말에 과장이 있었다 해도 나의 2세들이 현실로 그것을 입증한 이상, 그 방면에 관한 한 열성 인자의 보유자인 아내로서는 믿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사실 단거리 경주며, 평행봉, 철봉 등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노라고 떠벌린 것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은 아니기도 하다.
얼마 전, 일요일 아침이었다. 모처럼 아내와 아침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뒷동산에는 여러 개의 그만그만 한 운동장이 있고 운동장마다 여러 가지 운동기구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이라 늦잠들을 즐기는지 젊은이들은 보이지 않고 대여섯 분의 남녀 노인들만 배드민턴을 치거나 맨손 체조를 하고 있었다.
운동장을 둘러보다가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이 평행봉과 철봉틀이었다. 불현듯 옛날 생각이 났다. 실력을 과시할 기회다 싶어 평행봉에 뛰어올랐다. -배튀기기부터 시작해서 물구나무서기까지 보여주리라-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물구나무서기는 고사하고 첫 동작부터 실패였다.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운데 팔에는 힘이 붙지를 않아 후들거리는 것이었다. 몇 번을 더 시도해봤지만 참담한 실패였다.
망신은 이렇게 시작되어, 철봉에서 턱걸이 세 번을 채우지 못해 발버둥을 치다가 내려오는 것으로 끝났다.
벤치에 앉은 아내 곁으로 갔다. 변명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 뭐라고 놀리든 다 받아줄 참이었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도 아내는 말이 없다. 웬일인가 싶어 돌아보니 아내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
흘금흘금 대문 밖을 보며 우체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쓴 편지를 내가 받자니 편지 쓸 때의 멋쩍었던 느낌이 다시 살아났다. 결혼하고 처음 생일을 맞은 남편한테 쓴 편지였다. 면소재지에서 마련할 수 있는 선물이 마땅치 않았다. 큰마음 먹고 도회지로 나가 라이터를 사고, 나가는 김에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부쳤다. 그냥 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감동이 배가 될 것이라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편지가 왔다. 편지를 책상 위에 놓고 모른 척하고 있었다. 일부러 방에도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돌았다. 저녁이 되어서야 남편은 편지를 보았고 의아해하면서 봉투를 열었다. 난 그럴 때 어떤 표정을 하고 어떤 몸짓을 해야 하는지 아주 난감해하고 있었다. 하필 내가 있을 때 편지를 읽을 건 뭐람.
“뭣이여. 같이 사는 사람한테…….”
남편은 심드렁하니 말하곤 편지를 던져놓았다. 연애를 한 사이도 아니니 애정 표현의 수위를 이리저리 가늠하느라 고심도 했겠지만 소설깨나 읽은 내가 심심하지 않게 쓴 편지였을 텐데 사람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그때 난 다시는 남편에게 편지를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남편은 내 편지 받을 기회를 영영 놓쳤다.
이 이야기는 그저 시작일 뿐이다. 다 폭로하고 싶지만 잊어버린 것이 많아서 더 못하겠다. 어쨌든 고지식하고 잔정 없는 남자 때문에 나이 어린 새댁은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다. 그런데 그는 내가 속으로 아파하는지 슬퍼하는지조차 몰랐다. 나도 치사해서 그러니저러니 말하지 않았고 세월은 흘렀다.
남편이 친구 보증 서 주고 제법 많은 빚을 떠안았을 때다. 어느 날 농약병을 든 남편을 비닐하우스에서 발견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집으로 데리고 왔더니 한다는 말이 약을 마시려는데 작은누나 생각이 나서 죽을 수가 없었단다. 누나가 힘들게 공부시켰는데 이대로 죽으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나. 세상에……. 난 그때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죽음 앞에서 어린애들하고 젊은 각시는 생각도 안 났단 말인가. 아내와 아이들 때문에 못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한 예의 또는 관례 아닌가 말이다. 사람 잃지 않은 것이 감사한 것보다 이 세상에 내가 기댈 곳이 없는 것 같아 슬펐고 그즈음에서 우리 사이는 끝장날 수도 있었다. 그때만 해도 부부 사이의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을 만큼 나는 어렸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일들이 그다지 괘씸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내가 도를 좀 닦은 탓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같이 살다 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남자다.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꼭 사랑한다고 말을 해야 하나, 말 안 해도 아는 것이 사랑이다. 누나 이야기도 그렇다. 숨 막히도록 정직한 그가 죽음 앞에서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다.
애정 표현은 물론 생일이니 결혼기념일이니 무시하고 산 사람이다. 나도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부부였지만 저 남자랑 끝까지 한 지붕 안에서 살지 나 자신을 늘 의심했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이상해졌다. 한집에서 만날 보는 사람한테 전화를 해서 “사랑해.”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했다. 어색해하는 모습이 전화선 너머로 보이는 듯했다. 난 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서 “으응. 고마워.” 했다. 속으로는 별로 고맙지 않았고 좀 당황했다. ‘뭐여. 시방- 가족끼리.’ 그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웃기도 하고, 어느 땐 나도 잘 안 보는 드라마를 보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아이들이 수학여행 간 것도 모르던 사람이 늦게 들어오는 아이들도 챙겼다.
어느 선배에게 심각하게 물었다. “저기……. 사람이 변하면 거시기 하다던데 같이 사는 남자가 아무래도 이상해요.” 무슨 일인가 걱정하며 듣던 선배는 남자들이 나이 들면 여성스러워지고 안으로 돈다고 했다. 그렇다고 안 죽으니 걱정 말라는 정리까지 깔끔하게 해줬다.
남편은 집안일도 도와주고 어쩌다 고맙다는 표현도 하는 남자가 되었다. 쌀 한 가마니를 어깨에 메고 나르는 여자를 봤다며 희한한 방법으로 내 기를 죽이던 남자가 부당한 일에 발끈 대드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야물어졌다고 흐뭇해한다. 그다지 서운할 것도, 서러울 것도 없는 부부 사이가 되었다. 나는 더러 안쓰러운 저 남자와 함께 끝까지 살아야지 하는 제법 장한 다짐을 한다.
강호형 선생님의 수필 <부부>를 읽었다. 부부란 다투기도 하고 갈등도 하며 그렇게 사는 것이지 하다가 이런저런 고비를 넘으며 평생을 함께한 사람들이 위대하다는 생각도 했다. 아롱다롱 다른 자녀들을 사이에 두고 보이지 않게 밀고 당기는 장면을 읽을 때는 내 이야기인 듯 웃음이 났다.
어느 일요일 아침, 작가와 아내는 모처럼 아침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 뒷동산에 있는 운동기구들을 보며 옛날 생각이 났다. 운동신경이 둔하다고 생각해온 아내 앞에서 실력을 과시할 기회다 싶어 평행봉에 뛰어 올랐다.
-배튀기기부터 시작해서 물구나무서기까지 보여주리라-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물구나무서기는 고사하고 첫 동작부터 실패였다.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운데 팔에는 힘이 붙지를 않아 후들거리는 것이었다. 몇 번을 더 시도해봤지만 참담한 실패였다.
망신은 이렇게 시작되어, 철봉에서 턱걸이 세 번을 채우지 못해 발버둥을 치다가 내려오는 것으로 끝났다.
벤치에 앉은 아내 곁으로 갔다. 변명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 뭐라고 놀리든 다 받아줄 참이었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도 아내는 말이 없다. 웬일인가 싶어 돌아보니 아내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살면서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부부 사이 또한 복잡하고 미묘하다. 흐린 그림을 그렸다 지웠다 하지만 아직도 부부란 이런 것이다 정의 내릴 수 없다. 수필 <부부>의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 왜 내 눈에 눈물이 핑 돌았는지 그것도 도무지 모르겠다.
한경선 ------------------------------------------------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빈들에 서 있는 지게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