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본문

[수필과비평 2013년 9월호, 지상에서 길찾기] 도둑들 - 박성희

신아미디어 2013. 11. 21. 08:12

"우리는 누구라도 마음 한번 잘못 먹으면 도둑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정도正道를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가 관건이다. 도둑들에게 경고한다. 제발, 착실히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놔둬라. 무량억겁으로 태어난 그대들 존재가치의 존엄한 이름을 함부로 팔지 말라."

 

 

 

 

 

 

 

 도둑들     박성희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한다.
   세상엔 그냥 얻어지는 게 없는 줄 알면서도, 그냥 받기를 좋아한다. 무료, 덤, 증정, 사은품, 기념품, 경품, 보너스, 선물. 그 속에 은밀한 거래가 숨어 있음에도 받으면 기분 좋고 횡재한 듯 좋아라 한다.
      근교 도서관 개관식에 갔었다. 책을 보고 구경을 한다는 건 빌미였다. 기념품이랑 시루떡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까, 하고 갔는데 건더기는커녕 국물도 없었다. 괜히 땀만 뻘뻘 흘리며 힘들게 가서 시장, 관장 축사만 듣고 왔다.
   남편의 해외발령으로 잘 타고 다니던 새 차를 팔려고 내놨다. 5년 전 최고급 옵션으로 2천 5백만 원 주고 5만km를 뛴 아무 하자가 없는 차다. 생각으로는 10년 탈 것을 반만 탔으니 1천2백만 원만 받았으면 했다. 몇 군데 중고차 시장에 가보고 주변 사람들한테 팔려고 하니, 다들 싸게만 사려고 눈이 빨갰다. 천오십, 구백, 팔백. 나는 이 차를 지난 십 년간 알뜰히 적금을 붓고 별러서 장만한 것인데.
   집도 부동산에 싸게 세를 내놨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모두 더 싸게만 들어오려고 침을 흘린다. 입주할 때는 노후에 쓰려 했던 퇴직금을 미리 받아 몽땅 털어 넣고, 어렵게 저축해서 장만한 아파트다. 남의 것은 모두 다 거저 생긴 것으로만 알지, 그 속에 피땀이 배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물건마다 그만한 시세와 값이 있는데 말이다.
“다 도둑놈들이야.”
    남에게 속임을 당했거나, 빼앗겼거나, 바가지를 썼거나, 어떤 꼬임에 걸려들어 손해를 봤던 이들은 훌걸이 말하곤 한다. 세상엔 못된 사람들보다 착한 사람들이 더 많음을 알면서도,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들과 엉키면 욱한다.
   오늘 해외뉴스에는 바그다드에 사는 92세 노인이 손자들과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신부는 70세 연하인 22세의 여성이다. 노인은 20대가 된 기분이라며 설레어 했다. 연예인들도 10살 20살 이상 연상 연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결혼하고 자랑스러워한다.
   나는 내세울 학력도 비전도 스펙도 없으면서 나와 정반대인 남편감을 원했다. 그리곤 마침내 그런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남자는 내게 모든 것을 바쳤다. 돈도 사랑도 마음도 모두 다 내 것이 되었다. 시댁에서는 기껏 길러서 힘들여 교육시킨 기둥 같았던 아들을 한 여자에게 도둑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신도시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잘살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친척이 사업을 같이 하자는 명목으로 4억 원 대출 보증을 섰다. 하지만 사업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그만 사기를 당했음을 알게 됐다. 동업하자는 사람은 이미 딴 곳으로 튀었고, 고스란히 보증인이 되어 전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날리고 말았다. 일시에 그 많은 살림살이는 버려졌고, 허름한 동네의 곰팡내 나는 지하 단칸방에서 다섯 식구 몸을 비비고 세상을 증오하며 지옥 같은 삶을 하루하루 견디며 살고 있다.
   어린이와 노인 약자를 이용하여 사기를 치고, 말짱한 몸으로 거리에서 손을 벌리고, 고단수로 별별 이상한 짓거리로 남의 돈이나 물건을 갈취하고, 등쳐먹는 도둑들이 현실에 도사리고 있다. 그들의 악의는 과연 어떤 의미로 시작되어 행동으로 옮겨지는 걸까. 진정 선善이 선善으로 답하고, 선善으로 끝날 수는 없는가.
   “믿을 놈이 없어.”
   국민을 기만하는 정치인, 정의와 타협하지 않는 부정부패, 자리싸움, 토사구팽, 부모의 재산을 탐하는 자식, 진짜라고 하는 가짜들, 과대광고의 묘략, 돈과 욕망에 물불 안 가리는 행태, 그리고 살면서 이따금 만나는 위선자들…….
   언제 어디서나 선 뒤에 숨은 악의 꽃. 양심이란 이름으로, 법의 심판으로 싹둑 자르고 잘라도, 또 다시 싹이 나고 줄기가 돋쳐 끊임없이 악의 꽃으로 피어나 선한 사람들 곁으로 은거하여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조용히, 가만히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질 않는다.
   세상살이는 어찌 보면 하나의 장사다. 내 이름을, 내가 소속된 어떤 이름을 사람들에게 파는 일이다. 서로 자신들을 팔고 사며 살아가는 게 인생이기도 하다. 자본만이 최고인 줄 알고 살아가는 이 시대에 상도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도리다.
   우리는 누구라도 마음 한번 잘못 먹으면 도둑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정도正道를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가 관건이다.
   도둑들에게 경고한다. 제발, 착실히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놔둬라. 무량억겁으로 태어난 그대들 존재가치의 존엄한 이름을 함부로 팔지 말라.

 

 

 

박성희  -----------------------------------------
   ≪현대수필≫ 등단.  청춘수필집: ≪연지아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