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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연구 2013년 여름호, 신작시] 새벽 도깨비시장 외1편 - 이운룡

신아미디어 2013. 11. 20. 08:18

이운룡님의 신작시 2편을 소개합니다. 새로운 하루를 즐겁게 시작하세요.

 

 

 

 

 

 새벽 도깨비시장 외1편     /  이운룡

 

 

   추석날 새벽, 남부시장 천변의 찬 공기가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흥정의 밧줄이 팽팽하게 긴장한다. 딴전의 시냇물은 먼 종소리 한 짐 지고 고개 돌려 무엇을 골라잡고 있나?

 

 

   다리 밑엔 노숙의 살림만 수북하다. 아침밥 숟가락은 몇 번을 들고 놓았는지? 저자의 노랫가락 아득히 슬픈 그리움만 배가 부르다.

 

 

   흥정을 끝낸 시냇물이 길은 비켜주고 쓰레기는 가져가라고 끌끌 혀를 찬다. 폭삭 허리 굽은 노숙은 종소리 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고

 

 

   추석날 새벽, 남부시장 천변은 풍경이 헐렁해서 마냥 인정이 고프다.

 

 

 

 

 

 설산 자화상

 

 

   나의 바코드가 망원렌즈에 잡힌 히말라야 설산 까마득히 찍혀 있다. 첩첩 살아온 책장을 넘기는 동안 나는 행복했고 사랑했고 슬픔은 잠시였다. 다만 저게 비단길이라 하면 비단길만 찾아갔다.

 

   때때로 내가 오르는 산 갈피에선 크레바스가 입맛을 쩝쩝 다셨지만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백지처럼 나는 무공해 생애의 독법만을 익혔다.

 

   히말라야 설봉이 가물가물 눈에 잡혔으나 부어오른 욕망 대부분은 풍화되었거나 자멸하고 말았다. 더 오르지 못한 등고선에서 나는 산멀미에 채여 주저앉았다.

 

   고독한 내 이름은 지하에 묻힌 금강석, 아니면 고대의 무덤 속 미라가 되든지 무시간 속 공중으로 부양될 터, 아직은 시공時空의 단색 무늬를 짜고 있지만 끝내는 어떤 큰 하늘이 내 어깨를 받쳐주려나?

 

 

 

이운룡  ----------------------------------------------

   1969년 『현대문학』 시 3회 추천완료. 『월간문학』 문학평론 신인작품상 당선. 시집 『새벽의 하산』 외12권, 시론 저서 『시와 역사현실의 명암』 외10권.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월간문학동리상 등 수상. 전북문학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