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비평 2013년 11월호, 제145호 신인상수상작] 누군가 깡통을 흔들고 있다 - 조흥만
"돌아서 오면서 내 강퍅함에 후회한 적이 있다. 시내버스 차비로 쓰시라고 천 원 한 장쯤 드리는 여유가 내게 있어야 했다. 진정한 복지 사회는 어느 한 계층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숙자의 목마름까지 국가나 사회단체에 기대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몫으로, 우리도 기꺼이 겸손한 마음으로 참여하는 시혜자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마음으로 들어 보자, 어디서 깡통 흔드는 소리가 나는지."
누군가 깡통을 흔들고 있다 - 조흥만
텔레비전에서 얼굴 없는 천사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13년째 연말이면 일 년간 모은 성금을 전주시 노송동 주민자치센터 부근에 두고 전화를 하는 사람이 있어 자치센터 직원이 가져오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성금 액수도 첫 해 오십팔만 원을 시작으로 해마다 액수가 증가하여 작년에는 오천만 원이 넘는 액수를 기부하여 총액기준 이억구천칠백만 원이나 되었다, 그분의 뜻을 기리고 본받고자 봉사 활동에 여러 사람이 한마음으로 참가하고 있다는, 행복 바이러스가 넘치는 소식이다.
우리는 복지의 수혜자受惠者인가, 시혜자施惠者인가? 나라에 세금 내고 있으니 간접적 시혜자이기도 하고 처지에 따라 복지의 혜택을 받고 있으니 수혜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수혜자 입장에서 생각한다. 수혜자로서 국가와 사회를 탓하고, 우리 자신이 시혜자라는 생각은 못하는 것 같다. 더구나 얼굴 없는 천사와 같은 기부 행위를 통한 사회복지에의 적극적 참여는 특별한 사람이나 하는 일로 생각하고 대부분 일정한 선을 긋고 살고 있다.
오래전에 독일에 출장을 간 일이 있었다. 혼자서 하는 여행은 외롭고 긴장이 되었다.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 내린 나는 우여곡절 끝에 공항의 국내선 듀셀돌프행 게이트까지 찾아가 탑승 신청을 하고 출발 승객 대기실에 들어갔다. 탑승시간은 아직 일러 나 혼자였다. 한참 뒤 어떤 여자가 마트에서 쓰는 여러 대의 카트에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식품을 진열하여 놓는다. 파는 물건인가 싶었는데 진열 후 밖으로 나가더니 돌아오지 않는다. 긴장한 것이 풀리고 음식을 보니 갑자기 시장기가 느껴진다. 그 여자가 다시 오기를 속절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출발 한 시간 전쯤부터 현지인인 듯한 승객들이 하나 둘 들어오더니 진열된 식품을 마음대로 골라서 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뒤로 몇 팀의 여행객들도 거침없이 가져다 먹는 것을 보고서야 사태 파악이 되어 나도 그 식사에 동참했었다. 듀셀돌프 공항에 마중 나온 현지 동료에게 물으니 독일은 사회주의 국가로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도 국민들이 끼니를 거르지 않게 해야 된다는 사회적 약속이 항공사에서도 지켜져 그렇다고 한다.
다음 날은 토요일로 휴일이었다. 현지 동료와 교수 한 분과 셋이서 구경을 나섰다. 몇 개의 작은 박물관을 보고 교수님 제자와 만나기로 한 어느 역으로 갔다. 역 광장에는 많은 부랑인들이 모여 있었다. 약간 불안하기도 했으나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모여 재미있는 표정으로 이야기하거나 몇 사람은 화단이나 벤치에 앉아서 사색을 즐기는 듯하다. 역시 괴테의 나라 부랑인들은 그 격이 다른가? 약속시간이 지나도 만나기로 한 사람이 오지 않아 자연스럽게 부랑인들과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때 부랑인 중 한 사람이 빈 맥주 캔을 들고 나타났다. 캔 속에는 동전이 들어 있는지 짤랑짤랑 소리가 났다. 오육십 명쯤 모인 부랑인들 사이를 캔을 흔들며 지나다니면 모인 사람들은 그 캔 속에 동전을 넣어주었다. 주는 사람도 별로 싫은 내색이 없고 받는 사람도 굽실거리기는 고사하고 비굴한 기색조차 없다. 우리가 그곳에 있는 반시간 정도에 두 번의 캔 흔들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 에서는 일상적인 일인 것 같았다. 동료에게 물어 보니 캔을 흔든 사람은 목이 마르거나 맥주 한잔하고 싶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곳에 잠깐 들른 여행자가 그 나라를 알면 얼마나 알고 왔겠는가? 그러나 내 느낌으로는 독일이 그냥 선진국이 아닌 것이 부랑인의 행동에서도 드러나고 있었다. 사회 복지가 수혜자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받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언젠가는 시혜자로 변할 수 있다는 그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나라가 진정한 복지 선진국이 아닐까를 생각했었다.
최근 우리나라도 복지혜택을 누리게 되고, 보다 좋은 복지 정책들이 나오고 있으나 아직도 수혜자가 마음 편하게 누리는 복지는 좀 더 노력해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마음 편하게 점심 한 끼 먹이자는 일에도 편을 가르고 국민투표까지 가 스스로 정치생명을 마감한 시장이 있다. 우리 사회는 드러나는 일에는 관심이 크나 수혜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경우는 아직 거리가 있다. 수혜자도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게 배려해야 한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도 복지의 시혜자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없을까? 마트에서는 가격대로 다 주고 사면서도 시장 모퉁이 시골 할머니에게는 팍팍한 삶이 묻어나는 검고 주름진 얼굴을 외면하고 상추 몇 잎 더 챙기려고 할머니를 힘들게 한 일이 있었다. 돌아서 오면서 내 강퍅함에 후회한 적이 있다. 시내버스 차비로 쓰시라고 천 원 한 장쯤 드리는 여유가 내게 있어야 했다. 진정한 복지 사회는 어느 한 계층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숙자의 목마름까지 국가나 사회단체에 기대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몫으로, 우리도 기꺼이 겸손한 마음으로 참여하는 시혜자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마음으로 들어 보자, 어디서 깡통 흔드는 소리가 나는지.
조흥만 --------------------------------------------------------
전북 전주 출생. ≪덕진문학≫ 회원.
당 선 소 감
몇 년 전 “우리 형제, 책 한 권 내보자.” 하는 형님 말에 의해 나의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장인어른의 함자를 따서 ≪갑손문집≫이라는 책을 내고 나는 스스로 대견스러워했다. 처음으로 활자화 된 내 글을 보고 또 보았다. 내가 무슨 마음으로 살았는지 글 속에 보이는 것 같아 혼자서 목메이는 순간을 맞기도 했다.
은퇴 후 여생을 잘 보내기 위해 선택한 수필창작 반 수업과 동인 활동을 하면서 내가 가야 할 길이 글쓰기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기왕 나선 길이니 뚜벅이걸음으로 올바르게 걸어가면서 우선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 좀 더 공부하고 고민하는 가운데 바른 삶을 고집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기생은 누가 머리를 얹었는지에 따라 팔자가 바뀐다고 했다. 혼신을 다해 울림이 있는 글을 쓰라는 선생님과 문단에 머리를 얹어주신 심사위원님들을 생각하면 나의 글 팔자도 피어나리라 생각된다. 기왕 머리를 얹었으니 예향에 걸맞은 예기藝妓가 되고 싶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이 나를 어떻게 쓰실지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