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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문학 2013년 여름호, 수필] 백목련 한 그루 - 백승훈

신아미디어 2013. 10. 24. 08:09

"세월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더 이상 욕심을 내어서도 안 되는 줄도 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어머니와 함께 고향집 마당을 환하게 밝힌 목련꽃을 보고 싶은 욕심만은 부려보고 싶다. 그리고 목련꽃보다 환하게 웃는 어머니의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을 번갈아 보고 싶다."

 

 

 

 

 

 백목련 한 그루     /  백승훈

 

 

   “얘야, 꽃 보러 오지 않으련? 백목련이 활짝 피어 꽃등을 켠 듯 마당이 다 환하구나.”
   한밤중에 어머니는 전화를 걸어와 고향집의 백목련 개화 소식을 전했다. 백목련 향기를 나의 베갯머리에 흩어놓던 어머니의 목소리는 달떠 있었다. 어머니의 음성에 실려 온 목련꽃의 향기는 짙고도 여운이 길었다.
   38선이 가까운 내 고향 포천은 봄이 늦다.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을 땐 이미 서울에선 목련꽃이 흐득흐득 지는 중이었다. 그 눈길 닿는 곳마다 온갖 꽃들이 서로 다투듯 피는 이 봄날에 웬 꽃 타령이람? 목련꽃이 피었다는 전언 속에 보고 싶다는 말이 숨겨져 있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목련은 백악기의 지층에서도 발견되는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릴 만큼 오래된 꽃나무다. 오래된 나무인 만큼 ‘나무에 피는 연꽃’이란 목련이란 이름 외에도 옥처럼 깨끗하고 소중한 나무라고 해서 ‘옥수玉樹’. 꽃봉오리가 붓을 닮았다 하여 ‘목필木筆’이라고도 불렀고 대부분의 꽃봉오리가 북쪽을 향한다 하여 ‘북향화北向花’란 이름도 있다. 또한 농사의 시기를 알려주는 지표목이 되어 농부들은 목련꽃이 피는 것을 보고 못자리를 시작하고 꽃이 지면 씨를 뿌리기도 했다.
   스무 해 전쯤, 아버지는 옛집을 헐고 터를 옮겨 고향집을 새로 지으신 뒤 마당 한 귀퉁이에 백목련 한 그루를 사다 심으셨다. 살구나무나 감나무 같은 유실수도 아닌 꽃나무를 심는다고 어머니가 타박을 하셨지만 아버지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목련나무를 정성껏 심으셨다. 말로는 타박을 하였지만 텃밭에 키우는 푸성귀에 거름을 줄 때 목련나무를 빠뜨리지 않으신 걸 보면 어머니도 내심 목련나무를 꽤나 아끼셨던 것 같다. 마당가에 걸어둔 가마솥에 빨래를 삶느라 불을 때고 남은 재도 목련나무 아래 묻어주는 걸 잊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목련이 피는 것을 보지 못하고 새 집으로 이사한 지 두 해가 못 되어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를 보내고 어머니는 십년이나 홀로 사시면서 목련나무를 돌보셨다. 어느 해부턴가 목련나무가 가지마다 눈부시도록 흰 꽃송이를 내어달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불쑥불쑥 전화를 걸어와 꽃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한 것도 백목련이 환하게 꽃등을 밝히기 시작하던 그 무렵쯤이었다.
   목련꽃이 피고 지는 것을 홀로 지켜보며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틀림없이 백목련 꽃나무 아래를 서성이며 무심한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셨을 것이다. 북쪽을 향하는 목련의 꽃봉오리처럼 늘 자식을 향하던 어머니의 눈길에 그리움의 불이 일면 가분재기 내게 전화를 거셨을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의 그리움을 싹둑 잘라버리고 외면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이 들면 외로움이 가장 큰 독이라는데 십년이나 덩그마니 큰 집을 홀로 지키고 살았으니 외로움이란 놈이 얼마나 어머니의 심신을 갉아먹었을까. 어머니에게 치매라는 몹쓸 병이 찾아든 것도 어쩌면 자식들의 무관심과 외로움 때문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다는 생각에 어머니와 함께 지내려고 고향으로 길을 꺾은 것은 어머니가 구순의 생신 상을 받은 뒤였다.
   고향에 내려와 처음 봄을 맞이했을 때, 달이 뜬 밤이면 어머니와 나란히 거실 창가에 앉아 흰 꽃송이를 가득 달고 선 백목련나무를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었다. 희푸른 달빛을 받아 옥처럼 눈부신 흰 꽃송이들을 그윽하게 바라보시던 어머니에게선 싸목싸목 목련 향기가 번져나는 것만 같았다.
   탐스러운 꽃을 먼저 피운 후 잎이 돋는 목련을 두고 어느 시인은 가장 아름다운 것부터 보여주는 나무라고 했다. 백목련은 수많은 종류의 목련 중에서도 유난히 꽃송이가 크고 탐스럽다. 아무에게도 보인 적 없는 처녀의 젖가슴처럼 부풀어 오른 순백의 꽃송이를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소년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봄볕이 더위를 느끼게 하는 한낮에 백목련 꽃그늘에라도 들면 코끝을 스치는 꽃향기는 성숙한 여인의 체취처럼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어머니와 함께 목련꽃이 피고 지는 것을 지켜보는 사이 세 번의 봄이 다녀갔다. 그 사이 어머니에게 치매란 놈이 찾아들어 어머니의 가까운 기억부터 갉아먹기 시작했다. 다른 형제들 기억은 가물가물해도 아픈 손가락이었던 나만은 또렷이 기억하는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신 건 지난 가을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의 다리가 퉁퉁 부어 병원에 갔더니 무릎의 연골이 다 닳아서 염증이 생겼다고 했다. 입원을 하여 관절에 고인 고름을 뽑아내는 수술을 한 뒤로 걷지를 못하셨다. 무릎이 나을 때까지란 단서를 달고 요양원으로 모셨다. 한두 달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갈수록 흐려지는 기억과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않는 무릎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멀게만 했다.
   이제는 계신 곳이 요양원인지 집인지 시공간의 개념마저 사라진 어머니의 기억 속에도 목련꽃은 아직 남아 있을까.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찾아뵙고 아무도 없는 고향집을 찾아 하릴없이 목련나무 아래를 서성인다. 지켜보는 이 없이 홀로 피었다 지는 백목련 흰 꽃잎이 바닥에 널브러진 채 암갈색으로 시들어 간다. 젊었을 땐 박속 같이 고왔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시던 어머니의 얼굴에 가득 핀 검버섯처럼 흉측하게 변해가는 백목련 꽃잎들을 피해 조심스레 발을 옮긴다. 어느 날의 어머니의 가슴에서 맡아지던 분 냄새처럼 낯설고 짙은 여인의 향기 같은 목련 향기에 그을린 코끝이 싸하다.
   세월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더 이상 욕심을 내어서도 안 되는 줄도 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어머니와 함께 고향집 마당을 환하게 밝힌 목련꽃을 보고 싶은 욕심만은 부려보고 싶다. 그리고 목련꽃보다 환하게 웃는 어머니의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을 번갈아 보고 싶다.
   어머니에게 보여드릴 생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백목련을 카메라에 담는다. 불쑥 전화를 걸어 목련꽃 피었다며 내게 고향을 일깨우셨던 것처럼 어머니도 꽃 사진을 보고 잊어버린 고향집 마당의 백목련을 기억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머니 누웠던 자리에 떨어져 있던 살비듬처럼 바닥에 내려앉은 꽃잎을 비켜 발을 옮기며 조심스레 백목련 꽃그늘을 벗어난다. 쨍한 봄 햇살이 눈을 찔러온다.

 

 

 

백승훈  -----------------------------------------------

   경기도 포천 출생. 《예술세계》로 등단(1998). 한국문인협회 회원(시분과), 사색의향기문화원 문학기행 길라잡이, 저서 《꽃에게 말을 걸다》, 《내가 따뜻한 이유》(공저)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