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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8월호, HEALING ESSAY] 책 읽는 대통령 - 맹난자

신아미디어 2013. 10. 21. 08:15

"책 읽는 대통령.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과 문화적 황금기인 진경眞景 시대를 이룩한 정조대왕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수필은 영혼의 성장과 비례한다. 우리의 수필 쓰는 대통령은 말한다. “인생의 어려운 시기를 헤쳐가면서 제가 깨우친 게 있다면 인생이란 살고 가면 결국 한 줌의 흙이 되고, 백 년을 살다 가도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면 결국 한 점에 불과하다는 것.” 나는 그 한 줌 공간과 한 점 시간을 생각해본다. X, Y 축의 그 지점을."

 

 

 

 

 

 

 

 책 읽는 대통령      -  맹난자


   중국을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TV로 방영(6월 29일)됐다. 시진핑 주석의 모교이며 ≪중국철학사≫의 저자 펑유란이 재직한 칭화淸華 대학교 단상이었다.
   강당의 자리를 가득 메운 그곳 학생들도 연회색 바지에 보라색 상의를 받쳐 입은 온화한 표정의 우리나라 대통령을 주목했다. 나 역시도 벅찬 긴장감으로 화면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대통령은 중국어로 연설을 시작했다.
   “곡식을 심으면 일 년 후에 수확을 하고, 나무를 심으면 십 년 후에 결실을 맺지만, 사람을 기르면 백 년 후가 든든하다.”라는 교육을 강조한    관자管子의 글귀와 ≪주역≫에서 따온 칭화 대학교의 교훈인 ‘자강불식自强不息, 후덕재물厚德載物’을 또박또박한 중국어 발음으로 말했다. 이것은 공자가 건곤乾坤괘에 붙인 대상大象의 말씀이다.
   “하늘의 운행이 굳건하니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스스로 굳세어 쉬지 않는다(天行健, 君子以 自强不息).”에서 따온 ‘자강불식’과 “땅의 형세가 곤坤이니 군자는 이로써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싣는다(地勢坤, 君子以 厚德載物).”에서 따온 ‘후덕재물’을 말한다.
   연설 도중 대통령은 중국 고전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렸고 직접 에세이를 쓰면서 마음을 다스렸노라고 심중의 일단을 밝혔다. 가슴이 찡해지면서 순간 30여 년 전, 정수직업훈련원 수료식에서 격려사를 하던 그분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설립자인 어머니를 대신해서 어린 나이에 가녀린 모습으로 그러나 침착하게 그때도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 뒤 총탄에 아버지마저 잃고 그 인고의 세월을 어찌 지냈으며 또한 비통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 왔을까? 궁금하기도 했었다. 아, 그동안 중국 고전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려왔구나. 수필을 쓰면서 마음을 다스려왔구나! 그랬구나! 동병자의 상련相憐처럼 자꾸만 그분의 심정이 되짚어지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논어≫와 ≪주역≫을 읽고 마음을 다스렸으며 펑유란의 ≪중국철학사≫를 애독했다고 언급했다. 마음 다스리는 일, 누가 그것을 도와줄 수 있을까? 어떤 것이 사람을 위로할 수 있을까? 감각적인 잠시의 위로는 가능하다. 그러나 근본적인 치유와 위로는 온전히 자기 몫이다. 누구도 마음 다스리는 일은 도와줄 수 없다. 책만이 그 깊은 곳을 열고 들어가 언 곳을 녹게 하고 기질氣質의 변화를 이루게 한다.
   땅바닥에 넘어진 사람은 그 땅을 밟고 거기에서부터 혼자 일어서야 한다. 혼자일 때 더욱 처절하게 혼자 그 힘을 길러야 한다는 맹자의 충고가 떠오른다. 하늘이 장차 대임을 맡김에 그 사람으로 하여금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혀 능하지 못한 것을 더하고 더하게 하려는 바라더니 “절망이 나를 단련시켰다.”라는 그분의 말이 그런 것이 아니었나 짐작되기도 했다. 대통령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은 자신의 경험을 언급하면서 제갈량이 아들에게 보낸 ‘담박영정淡泊寧靜’의 고사를 또 인용했다. “마음이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 마음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원대한 이상을 이룰 수 없다.”
   안정되게 마음을 다스린다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수행인가? 나도 한때는 ≪주역≫에 기대 마음을 다스렸던 적이 있다. 하늘과 땅이 어긋난 것처럼 비색한 처지에 놓여 있을 때 공자는 내 등을 두드리며 이렇게 위로해주었다. “슬퍼하지 말라. 비색한 것도 마침내는 기울어지나니 그것이 어찌 오래 갈까 보냐.”라고. 천지비天地否괘의 괘사 ‘비종즉경否終則傾하나니 하가장야何可長也리오.’를 얼마나 되뇌웠던가.
   겨울이면 군불도 때지 못한 냉골에서 똑바로 앉아 눈썹을 내리깔고 손을 모은 채 ≪논어≫를 읽었다는 이덕무(1741~1793)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까.

 

 

   공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온화하고 화평和平한 말 기운으로 나로 하여금 거친 마음을 떨쳐내어 말끔히 사라지게 하고 평정한 마음에 이르게 한단 말인가? 공자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거의 발광하여 뛰쳐나갈 뻔하였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박 대통령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이것은 그분 자서전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절망과 희망, 어느 것 하나도 배척하지 않고 두 가지를 다 수용하며 절망조차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지혜, 이것이 역易의 정신이 아닐까 한다. 사실 절망과 희망은 빛과 그림자의 관계이며 음과 양의 변화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역易이란 상황의 논리이며 변화의 철학이기 때문에 언제나 좋을 수만도 나쁠 수만도 없다. 왜냐하면 달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모든 사물은 궁극에 이르면 원시반본原始反本의 순환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다만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현실에 대하여 그 본바탕을 알아보고 거기에 따라 알맞게 행동할 것을[時中] 역은 가르친다. 때에 알맞음, 현재의 상황과 알맞게 조화를 이룩함을 뜻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가 처한 현재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정신과 물질이 조화롭지 못한 불균형의 시대이다.
   주역의 정신이란 중용中庸, 중정中正사상을 말한다. 할아버지의 ≪주역≫이 잊힐까 염려되어 ≪중용≫을 지었다는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는 그 핵심을 이렇게 짚었다.
   “군자의 중용中庸은 군자의 때에 맞음[時中]이다.”
   “중용中庸이란 치우치지 않으며 의탁하지 않으며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는 평상의 이치이며, 시중時中이란 능히 보이지 않는 바를 경계하고 근신하며 들리지 않는 바를 두려워하면 알맞지 않는 때가 없다.”라는 주자朱子의 해설을 다시 찾아 읽어본다.
   대통령께서는 ≪주역≫의 중정中正사상을 실천해주시기 바란다. 중中이란 때를 만남이니 때에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는 것이요, 정正이란 위位를 말함이니 자리에 치우치거나 기울어짐이 없는 조화와 균형으로써, 인간이 인간의 척도가 되는 인문人文 시대를 책 읽는 대통령께서 열어주기를 기대해본다.
   책 읽는 대통령.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과 문화적 황금기인 진경眞景 시대를 이룩한 정조대왕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수필은 영혼의 성장과 비례한다. 우리의 수필 쓰는 대통령은 말한다. “인생의 어려운 시기를 헤쳐가면서 제가 깨우친 게 있다면 인생이란 살고 가면 결국 한 줌의 흙이 되고, 백 년을 살다 가도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면 결국 한 점에 불과하다는 것.”
   나는 그 한 줌 공간과 한 점 시간을 생각해본다. X, Y 축의 그 지점을.
   풍상 섞어 친 세월을 견디고 온화한 모습으로 지금 단상에 서 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바라본다. 흔들림 없는 그 모습에 왠지 가슴이 떨려왔다.

 

 

 

맹난자  ---------------------------------------
   ≪에세이문학≫ 발행인, 한국수필문학진흥회 회장 역임. 현대수필문학상, 남촌문학상, 정경문학상 수상. 수필집: ≪빈 배에 가득한 달빛≫, ≪남산이 북산을 보며 웃네≫,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기억하라≫, ≪라데팡스의 불빛≫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