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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8월호, 다시 읽는 이달의 문제작] 월석月石 감상 - 임병식

신아미디어 2013. 10. 16. 13:19

"한 달이면 두 번 뜨는 보름달. 이 보름달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충만의 볼륨감 말고도 대부분의 명절날이 이 보름달에 맞춰져 있기도 한 것이다. 보름달은 우선 훤히 밝아서 밤길 걷기가 좋다. 그래서 치성도 이 날을 골라서 했다. 그리고 만삭의 여인이 달의 정기를 받는 흡월吸月도 이때를 택해서 하였다. 그런 보름달이니 어찌 바라보면 생각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 월석을 보면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것이다."

 

 

 

 

 

 

 월석月石 감상     임병식

   덩그러니 뜬 월석月石은 희붐한 미소를 머금었다. 달 주위에는 달무리가 어리고 적당히 비추는 광도는 은은함을 유지한다. 그런 만월의 낯빛이 유독 불그레하다. 달은 비록 오석에 박혀있지만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이미 구천에 떠서 내려다본다.
   이 월석이 어디에 머물고 있다가 내 곁에 왔을까. 들여다볼수록 정이가고 감상할수록 진한 감흥이 일어난다. 월석의 사전풀이는 달의 표면에 있는 암석, 혹은 밝은 달밤을 이른다. 하지만, 애석인들 사이에서는 달을 닮은 형상석을 말한다. 일종의 문양석이면서 경석景石이지만 눈으로 보기보다는 마음으로 읽는 돌이다.
   그만큼 상상의 나래를 펴주며 깊은 사유를 끌어내준다고 할까. 최근에 나는 이 월석을 입수하고서 그 속에 빠져 지낸다. 의식적으로 다가가지는 않는데도 어느새 보면 나도 모르게 이 수석 앞에서 눈을 맞추고 있는 자신을 만난다.
   무슨 마력 때문일까. 우선은 일차적으로 워낙에 수석 자체에 빠져서 사는 탓이지만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주지 않는가. 이 월석과 마주하면 한두 시간쯤은 어느새 지나간다.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 놓고 한 삼십 분 지나면 차차로 물기가 말라 가는데 그 변화의 무쌍함이 또 다른 볼거리를 연출한다.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월석만 한 것이 있을까. 수석은 본래 발견의 미학으로 시작하여 상상력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지만 특히 월석은 그 흥취를 고조시켜 준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지척의 돌에서 우주를 들여다보며 대화를 할 것인가.
   이 월석의 포인트는 뭐니뭐니해도 중앙에 약간 비켜서 박힌 흰 석영에 있다. 오석 가운데 홀연히 박힌 것이 미점이면서 포인트다. 그렇지만 다른 바탕이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석의 칠흑 표면이 더욱 밤다운 밤을 연출하며 분위기를 이끈다.
   수석은 눈으로 보지만 사실은 마음으로 감상하는 돌이다. 진경이란 실은 마음으로 읽는 것이 아니던가. 진경산수의 대표적인 <인왕제색도>도 보면 담묵처리가 백이 흑으로 반대로 되어 있지만 마음으로 감상하기에 생동감을 더 준다. 고차원에 이르면 사실 여부는 안목에 의해 가려진다. 결국은 감상하는 눈이며 태도인 것이다.
   달을 보며 때로 생각에 잠긴다. 대저 저 달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웃기고 울렸을까. 간운보월看雲步月이라는 말이 있지만 달밤에 내닫는 구름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눈물지었을까. 그리움은 또 얼마나 깊을 것이며 현실에서 느끼는 회한은 얼마일 것인가.
   그런 가운데서 나는 이 월석을 보면서 혜원의 <월하정인月下情人>을 그려보기도 한다. 그 그림 속에 떠 있는 달은 하현달로 그려져 있지만 실은 보름달이라고 한다. 이것은 내가 억지로 지어낸 말이 아니고 이태 전 어떤 이가 조사를 해보고 그림이 1793년 음력 7월 15일 밤으로 진단한 것이다. 단서는 그림 속의 눈썹달과 화제畵題의 글 야삼경夜三更이란 표현이 근거가 되었는데 왕조실록의 기록과 대조를 통해서 밝혀졌다는 것이다.
   바로 그날 밤, 여인은 머리에 쓰개치마를 쓰고 발부리에 등롱燈籠을 밝히는 사내와 함께 어디를 가고 있었던 것일까. 그날 밤은 월식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그런 밤에 연분을 엮고 싶었을까. 그걸 보노라면 은근한 궁금증이 동하는데 그러나 그 일은 벌써 이백 년의 일. 역사를 쓴 밀회의 정인들은 이미 백골도 진토가 되었으리라.
   달의 운행은 모든 생명의 주기와도 일치한다. 한달 두달 석달 이렇게 생명을 잉태시키고 달이 차고 기욺에 따라 몸을 풀게 한다. 이렇게 매일 저녁에 뜨는 달은 초저녁 서쪽에서 뜨기 시작하여 차츰 위쪽부터 부풀어 오르고 보름을 기점으로 다시 오그라든다.
   한 달이면 두 번 뜨는 보름달. 이 보름달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충만의 볼륨감 말고도 대부분의 명절날이 이 보름달에 맞춰져 있기도 한 것이다. 보름달은 우선 훤히 밝아서 밤길 걷기가 좋다. 그래서 치성도 이 날을 골라서 했다. 그리고 만삭의 여인이 달의 정기를 받는 흡월吸月도 이때를 택해서 하였다.
   그런 보름달이니 어찌 바라보면 생각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 월석을 보면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것이다.

   -임병식의 수필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