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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8월호, 지상에서 길찾기] 장학유감獎學有感 - 이신구

신아미디어 2013. 10. 11. 08:17

"“아, 글쎄 이 조그만 것이 이 털이개로 덜썩 큰 애들 머리를 탁탁 때리지 않겠나? 저는 청소도 안 하면서 말야.” 그런데 그 선생님은 금년 봄에 초임 발령받은 담임선생님인 것을 어쩌랴? 키가 학생보다 작았던 것이 죄라면 죄지……. 세월이 흘러 그 선생님도 이제는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임하셨다. 이런 사연들이 있은 지 벌써 50여 년이 지났다."

 

 

 

 

 

 

 장학유감獎學有感      -  이신구


   며칠 전 산골 마을 작은 학교를 찾았다. 그 학교에 후배 교장 선생이 뵙고자 한다 해서 지나는 길에 들렀다. 전화를 하지 않고 갔더니, 하필이면 교장선생님이 출타하셨으니 조금만 기다리라 한다.
   내가 초임으로 부임한 학교도 산골 조그만 학교였다. 그때는 매월 이달의 노래라 하여 군가 비슷한 국민가요를 학생들에게 가르쳐 부르도록 하던 때였다. 그런데 부임하고 보니 그 노래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찾아보기 힘들고, 라디오에서 녹음한 노래를 계속 틀어주면서 학생들이 따라 부르도록 했다. 음악 수업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나는 선배 선생님을 찾아, 음악수업을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며 배우려고 하였다. 그런데 학년마다 음악책을 펴놓고 노래 잘하는 학생 3-4명을 앞에 나오도록 하여, 한 구절 한 구절 따라 부르는 것이었다.
   나도 덩달아 그렇게 음악 수업을 하다가 한 달쯤 지나, 교감 선생님께 오르간도 없느냐고 했더니, 한참 만에 나를 창고로 데리고 가셨다. 그곳에는 먼지를 허옇게 둘러쓴 채 꽁꽁 묶여 있는 한 덩어리 짐이 있었다.
   그것을 끌러보니 새 오르간이었다. 학창 시절엔 열심히 배웠건만, 자신이 없어 제 음音이 나오는 줄도 모르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건반을 눌러대던 그때가 생각난다. 수년 뒤 정읍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역사가 깊은 학교로 영전이 되었다. 교직원이 80여 명이 넘으니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교내에서 만나는 선생님들이 모두 학교의 어른들로 보였고, 만날 때마다 인사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교감 선생님, 안녕하셔요?”
   “아니오. 나는 청부인데요.” 아까 뵈었던 청부 같은 분을 또 만났다.
   “아저씨, 장도리 좀…….”
   “나 교장인데요. 저쪽에 김 주사가 있을 거요.”
   하는 등 민망한 꼴도 겪었다. 그리고 핀잔도 여러 번 들었다. 왜 나이 든 분들은 이마가 벗겨지고 머리가 희끗희끗해서, 모두 다 비슷비슷했는지 모르겠다.
   그때 교장 선생님은 한韓 교장님이셨는데 가끔 수업 참관을 하셨다. 순시를 하다 5학년 담임 한 분이 수학을 지도하는데 아무래도 이상했단다. 그러려니 하며 다음 교실로 가다가 되돌아 와 보니 ‘어? 3/4 + 2/5= 5/9 (?)’ 참 이상했다. 그럴 수도 있을까 하면서 지나치려다 보니, 학생하나가
   “선생님, 통분해야 하는디요?”
   “그래? 네가 나와서 해 보아라.”
   하시기에 ‘아하, 저 선생님 참 재치있네, 대개 선생님 혼자 가르치고 대답만 우렁차게 듣던 때인데, 학생 스스로 풀도록 자율학습으로 유도하는 선생님도 계시는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단다. 그리고 교직원 회의시간에 그 선생님의 지도 방법을 극구 칭찬했다.
   며칠 뒤 또 그 교실 수학시간에 지나치다 보니 이번에는 3 ⅗ + 2 ⅔를 지도하는데, 5 ⅓이라 가르치는데, 3+2=5요, 통분하니 분모는 15인데, 약분까지 했구나……, 그 설명이 그럴듯해서 긴가민가하며 돌아섰다. 그런데 왜 분자는 그대로 더했을까? 교장 선생님은 연구부장을 불러 그 이야기를 했더니 펄쩍뛰었다.
   그 서 선생님은 농고를 졸업하시고, 전북대학교 농과대학을 나와 중등교사 자격증까지 가지고 계신 훌륭한 분이시라고 하면서…….
   그 뒤 1개월이 지났다. 어떻게 되었나, 몇 주간이나 출근하지 않던 서 선생님께서는 사표를 제출했는데, 소문에 의하면 전남 농업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했다고 한다. 그리고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 선생님은 전화위복으로, 농고 교감 선생님이 되셔서 한 턱 쐈다는 말이 들렸다. 그 서 선생님이 교장선생님과 사이가 안 좋아서 일부러 그래놓고, 그걸 빌미로 사표 쓰려고 그랬을까? 그분도 지금쯤 팔순이 넘었을 것이다.
   나는 다시 시골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장학사가 시골학교로 장학지도를 왔다. 그때는 장학사가 학교 방문을 온다면 교내외 청소는 물론, 고학년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교문 앞에 나가 교장실까지 양쪽에 줄을 서서 박수를 치며 환영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학교는 연구지정 학교요, 나는 연구주임으로 장학사 뒤를 졸졸 따라 다녀야 할 책무가 있었다. 간단한 브리핑을 마치고 교실 순시가 시작되었다.
   마침 들른 교실에서는 사회과 지리수업이 시작될 무렵인데, 하필이면 장학사가 그 선배님 교실 앞에서 미적미적 수업참관을 하려고 버티고 있었다. 그때 학생들이 먼지투성이인 지구본을 가져와 닦고 있다가 교실바닥에 떨어트렸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지구본 가져온 학생을 힐책하고 있었다.
   “좀 조심해서 닦으라 했더니 왜 내동댕이를 쳐? 이 지구본이 삐딱하게 틀어졌지 않아!” 하는 것이었다.
   동행하신 교장 선생님은 학생을 야단치는 모습이 장학사 보기에 민망했던지, 한마디하셨다.
   “선생님, 그 학생 잘못이 아냐, 이 지구본이 국산이라 나오면서부터 삐뚤어진 것 같으니, 그냥 수업을 하셔요.”
   아무도 잘못이 없다. 그 학생도, 선생님도, 그리고 교장 선생님도. 그 지구본은 또 무슨 죄일까? 23.5도 기울어진 것이 죄지…….
   그런데 그 선배님 수년 후, 교감도 하시고 장학사도 되셨는데, 혹시 장학지도 하시면서 그때 일을 잊지는 않으셨겠지? 학교를 한바퀴 돌고, 교장실로 돌아갈 무렵 청소시간이 되었다. 6학년 복도를 지나는데, 장학사가 뒤로 처져 오시지 않아 찾아가 봤더니, 6학년 학생들이 빙 둘러서 있고, 담임선생님은 복도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은가?
   “아, 글쎄 이 조그만 것이 이 털이개로 덜썩 큰 애들 머리를 탁탁 때리지 않겠나? 저는 청소도 안 하면서 말야.”
   그런데 그 선생님은 금년 봄에 초임 발령받은 담임선생님인 것을 어쩌랴? 키가 학생보다 작았던 것이 죄라면 죄지……. 세월이 흘러 그 선생님도 이제는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임하셨다.
   이런 사연들이 있은 지 벌써 50여 년이 지났다. 요즘 교육현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에피소드지만, 옛날엔 그냥 웃고 넘기기엔 어쩐지 찜찜했던 이야기였다. 요즘 매일같이 발전하고 바뀌고 있는, 첨단 교육현장은 어떻게 변모되어 가는지 궁금했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니 교장 선생님이 문을 밀고 들어오신다.

 

 

 

이신구  ------------------------------------------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피안화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