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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8월호, 사색의 창] 중독中毒 - 홍경희

신아미디어 2013. 10. 9. 09:03

"나와는 달리 승부욕이 강한 남편은 무슨 게임이든지 일등을 하지 않고는 못 견뎌 한다. 그런 성격만 조금씩 고쳐간다면 스마트폰 게임을 중독이라고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전철 안에서만은 점잖은 노신사답게 품위를 지켜줬으면 한다. 남편은 지금도 뜨개질하고 있는 내 옆에서 열심히 치매예방 운동을 하고 있다."

 

 

 

 

 

 

 

 중독中毒     홍경희


   사위가 바꿔준 스마트폰이 화근이다.
   “게임도 도박이나 같은 겨. 중독성이 강하지.”
   남편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바쁘게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추고 ‘정말 내가 중독에 빠졌나’ 자성自省해 본다.
   무릎 수술 이후 바깥출입을 잘 못하는 내게 스마트폰은 유일한 벗이 됐다. 게임도 다양하다. 가로세로 낱말 맞추기, 숫자 빨리 연결하기, 사천성, 애니팡 등이 내가 즐겨하는 게임이다.
   점수 올리기에 열중하다 보면 다른 일은 제쳐놓게 된다. 좋아하던 연속극도 흘끔흘끔 곁눈으로 봐가며 손가락을 끊임없이 움직인다. 자려고 누워서도 한 판 하고 나서야 불을 끈다. 남편의 눈치가 보인다. 곱게 보이질 않겠지. 참다못해 한마디한 것이다.
   요즘 지하철을 타고 주위를 둘러보면, 열에 아홉 명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것도 목디스크가 걸리기 좋다는 15도 각도로 고개를 숙인 채.
   ‘저 물건이 저렇게도 재미가 있을까.’ 이해가 안 됐었는데, 지금은 나도 전철을 타면 폰을 꺼내고 싶어진다. 나잇값은 해야 되겠다는 체면 때문에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만지작거리기만 한다.
   머리가 허연 칠십 노인이 전철에 앉아 게임에 빠져 있는 모습이 다른 승객들 눈에 어떻게 보일까. ‘주책이야.’ ‘부끄럽지도 않나.’ ‘어른이 저러니 애들이 뭘 보고 배울지 쯧쯧.’ 이런 반응일 것이다. 가끔은 ‘노인이 대단하네.’도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부활절 전에 가톨릭 신문을 본 적이 있다. 부활 전 사순시기四旬時期에 예수님 수난을 생각하며, 평생 피우던 담배를 끊는 사람, 승용차를 타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 매일 한 가지씩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나도 게임을 끊기로 마음먹고 실천하기로 했다. 그리 어렵지 않게 사순시기를 보냈다. 잠이 잘 오지 않거나 밥맛이 없다거나,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 온통 하트가 보인다거나 하는 증상은 없었다. 그러고 보면 게임에 중독까지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금도 하루에 두어 차례 거르지 않고 게임을 하고 있다. 안 하고는 못 견딜 만큼은 아니지만 궁금해서 하게 된다. 그렇다면 중독이 맞나?
   옛날 칠십 년대 무렵이 새삼 떠오른다.
   ‘유니폼만 입으면 도박올림픽 선수’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고스톱에 열중할 때가 있었다. 집안 행사의 뒤풀이로 으레 형제들과 밤샘은 일쑤였고, 동네 친구들과 만나도 고스톱판이 벌어지곤 했다.
   하마터면 ‘주부 도박단 일망타진’이라는 기사와 함께 옷을 뒤집어쓰고 고개를 한껏 숙인 사진이 신문에 날 뻔했던 사건이 있었다.
   시골에서 외과병원을 개업하고 있는 친구의 혼사에 갔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일박하기로 되어 있었다. 온돌 입원실 하나를 차지하고 또 판이 벌어졌다. 일명 ‘점백이’ 한 점에 백 원이어서 붙은 명칭이다. 두 팀으로 나누어 앉아 깔깔대며 놀고 있었다.
   “아무개야, 빨리 삼백 내라.”
   “바가지 썼으니 천이백이다.”
   우리들은 큰 소리로 흥이 나서 피곤도 잊고, 밤늦게까지 떠들었다. 하룻밤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정복 입은 순경 두 명이 들이닥쳤다.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고 했다. 화투판을 뒤집으니 뗑그렁 데구루루 굴러다니는 건 동전뿐. 이젠 각자의 핸드백을 뒤진다. 축의금 낼 봉투 외엔 큰돈들이 들어 있을 리가 없다. 잠옷 바람에 사색이 되어 떨면서도 머릿속에 온갖 그림이 다 지나간다. 남편의 얼굴이 떠오르고,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때 주인인 원장이 나타났다. 자초지종 얘기를 듣고 순경들은 물러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다. 옆 병실에 입원한 환자가 시끄러워 짜증이 나는데, 들리는 돈의 액수가 커서 큰 판이 벌어진 줄 알고 신고를 했단다.
   남편이 스마트 폰으로 바꿨다. 역시 사위의 선물이다. 설명서를 꼼꼼히 읽고, 손녀에게 이것저것 배우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애니팡을 시작했다. 자동차 경주 게임인 ‘다함께 차차차’를 신이 나게 즐긴다. 아침에 눈 뜨자 폰을 잡는다. ‘달려! 달려!’ 게임 속의 여자가 한 음 올라간 목소리로 부추기는 응원 소리가 들린다.
   아침상을 차려놓았다.
   “식사하세요.”
   “응. 잠깐만, 요것만 하구.”
   어떤 때는 대답도 없다. ‘식으면 맛 없다면서 빨리 좀 오지.’ 나는 구시렁거리며 가스불을 다시 약하게 켜고 기다린다.
   그래도 걱정은 하지 않는다. 나도 오히려 부추기고 싶다. 머리를 쓰면 치매예방도 된다고 하지 않는가. 거기다 손가락도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니 관절염 예방도 된다. 고스톱도 치매 예방이 된다지만 상대가 없이는 할 수 없는 놀이다.
   나와는 달리 승부욕이 강한 남편은 무슨 게임이든지 일등을 하지 않고는 못 견뎌 한다. 그런 성격만 조금씩 고쳐간다면 스마트폰 게임을 중독이라고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전철 안에서만은 점잖은 노신사답게 품위를 지켜줬으면 한다.
   남편은 지금도 뜨개질하고 있는 내 옆에서 열심히 치매예방 운동을 하고 있다.

 

 

 

홍경희  --------------------------------------
   ≪에세이문학≫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