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본문

[수필과비평 2013년 7월호, 사색의 창] 돌을 읽다 - 홍미영

신아미디어 2013. 9. 11. 07:56

"돌멩이는 태고의 자식들이다. 돌을 발로 걷어차는 사람들아, 그 속에 간직한 신비를 아는가. 태고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았는가. 묵묵히 제자리 지키는 너의 그림자마저 과묵하구나. 너에게 거룩한 상을 새기며 두 손 모으는 인간의 이중성을 나무라지 말거라. 우리 삶도 세상에 시달리고 이리저리 걷어차여도 수석처럼, 몽돌처럼 새롭게 태어날 작은 돌멩이의 변신을 꿈꾸어 본다."

 

 

 

 

 

 

 돌을 읽다    홍미영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몸이 앞으로 꼬꾸라지며 몇 발짝 비틀거리다가 겨우 중심을 잡았다. 돌멩이 하나에 휘둘린 내 모습에 화가 나서 박힌 돌멩이에 화풀이라도 하듯 걷어차니 내 발가락만 아프다.
   돌에 붙인 이름도 많다. 돌기둥, 돌감나무, 돌미나리, 돌미역, 돌나물, 돌고래, 돌다리, 돌개바람, 돌솥 등. 사물에 돌 이름 하나만 붙어도 새롭다. 단단하고 야물고 싱싱하고 토종이며 오래 보존될 것 같은 이미지가 돌이라는 어감에서 느껴진다.
   돌에도 표정이 있다. 하잖게 보는 돌에서 표정을 찾아내는 수석가는 산이나 개천가에서 수석 하나 주우면 보석 하나 건진 듯 기뻐한다. 주운 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그 속에 숨어있는 오묘한 풍경과 기이한 형상을 찾아낸다. 풍상으로 깎인 돌의 상처 자국에서 바람과 물결이 만든 산의 이야기를 들려 줄 것 같다.
   제주도 만장굴을 찾은 적이 있다. 울퉁불퉁한 굴의 바닥으로 걸어갈 때 제주라는 거대한 심장 속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현무암의 구멍 속에는 아직 식지 않은 지구의 심호흡이 들리는 듯하다. 태고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한 지구의 혈맥 속으로 용암이 다시 용솟음치며 새로운 돌의 탄생을 예고할 것 같았다.
   제주도에는 숭숭 구멍 뚫린 돌들이 많다. 그 옛날 용틀임하던 용암의 숨구멍들, 이제 거친 숨소리는 멈추었지만 태초에 닫힘에서 열림의 세계를 이루어낸 지구가 그 숨구멍을 통해 돌의 무한한 쓰임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주의 상징물 돌하르방을 가만히 바라보면 우리를 부를 듯하다. 돌의 작은 구멍마다 생기가 돌며 그 속에 제주의 혼을 불어 넣어 제주의 할방이 된 돌하르방들, 커다란 눈망울과 몽고풍의 감투며 두 손을 얌전히 배에 얹은 석상이 제주에 대한 친근감을 갖게 한다. 제주를 가장 잘 드러낸 돌하르방을 보면 돌과 인간이 가장 가깝게 다가가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거제 바닷가에서 둥글고 매끄러운 몽돌을 손안에 넣어보았다. 몽돌의 감촉에서 바다의 촉감이 느껴진다. 변치 않고 흘러온 바다의 세월, 바다의 울부짖음과, 파도 속에 묻혀 있는 모래사장의 자장가 소리가 몽돌을 만들었다. 세월의 결에 갉히고 닳은 돌의 세레나데는 끝없이 이어진다. 긴 시간의 다발을 쉴 새 없이 감아 세밀한 세공을 하는 바다는 훌륭한 보석 세공자 같다.
   세월과 자연의 흐름을 셈하며 무한한 가능성과 의미를 갖고 있는 돌들은 놓여있는 자리에 따라 그 의미도 다르다. 물속에 발을 담그지 않고도 개울을 건너 갈 수 있는 징검다리, 이때 놓인 디딤돌은 구원의 손길 같다. 봉사와 희생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는 디딤돌 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이 사회는 조금은 살맛나는 세상이 아닐까. 늘 손해 볼 것 같아 남의 어려움을 먼발치에서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요즘 디딤돌의 의미를 다시 음미하게 한다.
   돌에도 쓰임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징검다리 같은 사람, 디딤돌 같은 사람도 있지만 걸림돌, 박힌 돌 같은 사람도 있고 자신을 데워 온기를 전해주는 구들 같은 사람도 있고 등을 내어 그 무게를 감당하는 주춧돌 같은 사람도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남에게 해가 되고 피해를 주어 상대의 앞길을 막고 넘어뜨리는 걸림돌이나 박힌 돌은 되지 말아야겠지. 물질만이 아니다. 작은 배려와 관심, 정성과 관용의 마음이 디딤돌 같은 마음이 아닐까 싶다.
   작은 돌멩이 하나하나에는 우주의 역사가 있고 세월의 무게가 있다. 무생물인 돌이라고 하찮게 보겠는가. 생명체처럼 돌이 살갑게 여겨지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주는 쓰임과 의미가 많기 때문이다. 우주의 놀라운 비밀을 몸속에 간직한 돌멩이를 하찮게 보고 발로 걷어찰 수 있겠는가.
   “돌부리를 차면 제 발 부리만 아프다.”라는 속담처럼 쓸데없이 함부로 성을 내면 자기에게 해가 돌아온다는 돌의 의미가 가슴에 닿는다. 크고 작은 쓰임으로 그 강직함으로 성벽이 되고 울이 되며 디딤이 되어주고 받침이 되어주는 돌, 제 몸 쪼개지고 다듬어져 희생으로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돌들.
   돌멩이는 태고의 자식들이다. 돌을 발로 걷어차는 사람들아, 그 속에 간직한 신비를 아는가. 태고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았는가. 묵묵히 제자리 지키는 너의 그림자마저 과묵하구나. 너에게 거룩한 상을 새기며 두 손 모으는 인간의 이중성을 나무라지 말거라.
   우리 삶도 세상에 시달리고 이리저리 걷어차여도 수석처럼, 몽돌처럼 새롭게 태어날 작은 돌멩이의 변신을 꿈꾸어 본다.

 

 

 

홍미영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