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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문예 2013년 봄호, 수필] 종소리 - 안순금

신아미디어 2013. 8. 26. 10:11

"아픔으로 얼룩졌던 지난날의 상흔을 떨쳐 버리고 새롭게 시작되는 삶을 위하여 오늘도 맑은 종소리를 저 하늘 먼 데까지 울려 퍼지게 한다."

 

 

 

 

 

 종소리     /  안순금

 

   새벽, 집을 나선다.
   개 짖는 소리는 어둠에 묻히고, 발자국 소리는 안개에 젖는다.
   교회마당 침침한 불빛이 나를 반긴다. 안개비 툭툭 털어 버리고 평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연다. 줄에다 온몸을 실어 힘껏 잡아당긴다.

 

   “땡〜, 땡〜, 때애앵〜.”

 

   종을 치기 시작한지 30년, 아니 얼추 40년이 되어간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나간 시간들이 어제처럼 서 있다. 결혼 전부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잠든 세상을 깨우는 종지기로 살아 온 셈이다.
   일부 주민들은 종 치는 새벽을 거부했다.
   단잠을 깨운다고, 시끄럽다고.
   그러나 시계가 귀하던 시절 새벽밥하는 가정에서는 시간을 가늠했고, 부지런한 농부들은 하루일과를 서둘렀다.
   튼튼한 종소리에 온 산하가 깨어났다.
   분단을 코앞에 둔 민통선의 통일촌.
   도심의 휘황한 불빛도, 밤새워 오고가는 행인도 없지만 적막함을 깨고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찬 이슬 맞으며 휴전선 경계근무에 밤을 새우는 장병들은 누구보다 그 시간을 기다린다. 잠복근무하는 초병들은 평화로운 종소리에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고 어느 지휘관이 전해주었다. 단잠을 깨우는 것 같아서 여름철이면 죄스러운 마음도 있었는데, 그 말은 내게 용기를 주었다.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이곳으로 온지 30년이 넘었다.
   수중에 지전 한 잎 없이 집을 인수하였다. 사채와 융자로 어렵사리 장만한 우리 집. 웬만한 가정에서 빚 없이 집 장만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나 역시도 그런 상황이었다. 이사하고 난 후부터 시작된 나의 생활은 고된 나날이었다.
   먼동이 트면 예배당으로 달려갔다. 긴긴 기도의 시간이 계속되고 시간에 맞추어 종을 치며 간절히 기도했다. 종소리는 바람을 타고 덕스럽게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걱정과 근심도 실려 보냈다.
   오늘따라 종소리가 어두운 그늘처럼 무겁다.
   지난 밤 뉴스의 유괴범 얼굴이 떠오르며 손에 힘이 빠진다. 대선을 앞둔 주자들 얼굴이 스쳐간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종을 어루만진다.
   유괴사건이 없는 나라, 범죄자가 없는 사회, 정직하고 성실한 일꾼을 뽑을 수 있는 대선이 되기를……. 분단된 나라와 상처 받는 민족을, 화목한 가정과 인정스런 마을을 위하여 새벽마다 드리는 기도 소리이다.
   아픔으로 얼룩졌던 지난날의 상흔을 떨쳐 버리고 새롭게 시작되는 삶을 위하여 오늘도 맑은 종소리를 저 하늘 먼 데까지 울려 퍼지게 한다.

 

 

안순금  ----------------------------------------

   충남 논산 출생. ‘한국수필’ 등단. 수필집 《통일촌 아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