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본문

[수필과비평 2013년 7월호, 세상마주보기] 종이우산 - 김은옥

신아미디어 2013. 8. 20. 07:56

"언제부턴가 나는 우산이 망가지면 그것은 그것대로 고쳐 쓰면서 따로 또 하나를 사놓곤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가운데 하나도 <잃어버린 우산>이다. 종이우산을 대할 때만큼이나 두근댈 일이 살아오는 동안에 얼마나 있었던가. 잠깐 왔다 사라진 종이우산을 생각하면 물비린내가 훅 끼치곤 한다. 김수영 시인은 비를 일러 ‘움직이는 비애’라고 하지 않았는가. ‘비 오는 날의 마음의 그림자를 사랑하라.’라고 하지 않았는가.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고 환해지는 찬란한 날도 좋지만, 나는 이제 비 오는 날의 사색의 그림자를 사랑할 줄도 안다."

 

 

 

 

 

 

 종이우산     -  김은옥


   밤새 폭우가 내렸다. 밖에 나갔는데 폭우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창문이 들썩거릴 정도로 우르릉대며 퍼부어서 잠을 설치게 하더니 남해안 지방에 200mm 이상이나 왔다던 비는 흔적조차 없다. 가방 속 우산의 무게가 묵직하다.
   교실 안이 퀴퀴했다. 사십 명이 넘는 소녀들과 눅눅한 나무 바닥에서 뿜어 나오는 해묵은 세월의 냄새, 공책과 교과서의 종이냄새, 지우개·연필냄새, 형광등 불빛 아래 반짝거리는 먼지들. 숨이 막힐 듯해서 창을 자주 열어놓아야 했다. 유월 장마였다.
   운동장 군데군데에는 웅덩이가 파여 있었고 잔가지 굵기만 한 빗줄기가 따발총 쏘듯 그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고목의 큰 가지들까지 부러질 것처럼 휘청거렸다. 종이 울리자 짝꿍은 의자 사이에 두었던 비닐우산을 집어 들면서 시간이 갈수록 굵어지는 빗줄기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나는 짝꿍의 우산을 한번 펼쳐보았다가 다시 잘 오므려서 건넸다. 착착 감기면서도 미끄러운 감촉이 손바닥에 남았다. 아직 다섯 시 반인데 창밖에는 비 오는 날 특유의 어둠이 깔려 있었다. 밤도 아니고 저녁도 아닌, 그렇다고 새벽 빛깔도 아닌, 먹구름이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창 안 이쪽과 창 밖 저쪽이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생각 없이 물끄러미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는 내 가슴속까지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듯했다.
   가로등은 벌써 켜져 있었지만, 자동차 불빛보다도 흐렸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빗줄기가 세찼다. 얼굴이 따가웠다. 거리에는 뒤집히고 날아가는 우산을 부여잡고 쩔쩔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스팔트 길은 어디가 인도이고 어디가 차도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선생님께 배운 ‘음극과 양극’, ‘물은 전기와 잘 통하고’ 등등 그런 말들이 떠오르면서 왜 천둥은 내 앞에서만 울리고 왜 번개는 내 앞에만 때려대는지…, 그 자리에서 금방 기절할 것만 같았다. 어떻게 집에까지 갔는지 몰랐다.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아이고 시상에, 아이고 시상에.’를 되뇌면서 교복을 벗기고 머리며 얼굴이며 닦아주셨다. 얼마나 힘겹게 뛰어왔던지 힘이 빠져서 마루에 멀거니 걸터앉아 있노라면 하늘은 언제 비가 내렸느냐는 듯이 맑게 개곤 했다. 구름이란 놈은 한바탕 날뛰다 지친 짐승 같았다. 시커먼 낯으로 멀리서 으르렁댔다. 목수건을 두른 아버지가 작은 마당을 빙 둘러 삽으로 도랑을 쳤다. 그 골을 따라 시뻘건 황톳물이 집 뒤로부터 마당을 돌아 기운차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손가락 굵기만 한 지렁이가 여기저기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먼 산 바라기 하며 멍하니 앉아있다 보면 맑게 개어가는 저녁 하늘처럼 마음이 평온해졌다.
   어느 날, 한지에 기름을 먹인 누런색 우산 두 개가 마루에 세워져 있었다. 종이우산이 낯설었던 나는 살며시 쓰다듬어보았다. 콩기름을 먹인 장판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풍겨왔다. 그중 하나를 골라서 뒤꼍에 갖다 놓았다. 기뻐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드디어 내 우산이 생긴 것이었다. 이튿날 마음이 급한 나는 아침도 거르고 학교로 향했는데 우산은 생각보다 가벼웠고 길 위에서는 내 우산이 가장 빛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교실 뒤 양동이에 둔 우산이 궁금해서 공부에 집중을 못할 정도였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우산이 비바람에 뒤집혔다. 종이우산은 그만 처참하게 부서지고 말았다. 겨우 하루 만에 말이다. 짝꿍의 비닐우산은 부서진 뒤에도 고쳐서 사용하던데 내 종이우산은 다시는 쓸 수 없게 되었다.
   1960년대에는 우산 없이 비 맞고 다니는 일이 흔했다. 종이우산을 다시 본 기억은 없다. 요즘에는 전통시장에나 있을까. 나는 가랑비에도 우산 들고 아이들을 마중 나가는 극성스런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 뒤에도 여전히 그랬는데, 아이들은 비 한 방울에도 전철역까지 마중해주는 엄마를 무작정 반겨주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우산이 망가지면 그것은 그것대로 고쳐 쓰면서 따로 또 하나를 사놓곤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가운데 하나도 <잃어버린 우산>이다. 종이우산을 대할 때만큼이나 두근댈 일이 살아오는 동안에 얼마나 있었던가. 잠깐 왔다 사라진 종이우산을 생각하면 물비린내가 훅 끼치곤 한다.
   김수영 시인은 비를 일러 ‘움직이는 비애’라고 하지 않았는가. ‘비 오는 날의 마음의 그림자를 사랑하라.’라고 하지 않았는가.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고 환해지는 찬란한 날도 좋지만, 나는 이제 비 오는 날의 사색의 그림자를 사랑할 줄도 안다.

 

 

 

김은옥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