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순 두번째 수필집 『망구의 노래』를 소개합니다.
책 한 권 남겨놓기를 소원했다. 첫 수필집을 낸 것이 벌써 7년이 되었다. 그때는 내가 두 번째 수필집을 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작품을 모으다 보니 두고 보기 아까워 두 번째 책을 만들었다.
책을 읽을 시간은 많은데 들여다보지만 저장할 머리가 꽉 찼는지 저장이 안 된다. 채우려 해도 얼게미 머리인가 줄줄 새어나간다.
한줄 한줄 주워 모아 만든 수필집 내 곁을 떠나도 당당하거라.
- 머리말 중에서
우리 형제자매 다섯 명, 조카 삼 남매가 똑같이 화투도 못하고 노래와 춤을 추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빠 계실 때 노인정에서 봄놀이를 갔는데 그 중에 노래 못해 벌금 내는 사람은 오빠 한 분이었다며 웃었던 얘기, 어디를 봐서 노래 못하게 생겼나 말이다. 삼대째 오빠의 자손 다섯 명은 대신 공부를 잘해서 현재 좋은 자리에 있다. 그중에 하나는 초, 중, 고 학생시절 일등만 해서 엄마가 일등떡 해서 나르느라 힘들었다.
“엄마 떡 하기 힘드니 일등 하지 말까?”란 말을 들었다.
가끔은 전국에서 일등도 했다. 그 아이가 지금 행시에 도전하고 있다. 다섯 손자들이 효심이 기특하다.
내가 힘들 때 친정도 힘든 때가 있었다. 오빠는 늙어가고, 조카는 불면 날아갈까, 쥐면 부서질까 키우면서 자랄 때다. 애들끼리 싸우면 올케는 상대 아이 보고 네가 져줘라 하면서 과자 주고 달랬다. 다섯 번째 붙잡은 아들이다. 귀엽게 자라서 생활력이 없다. 결혼해서 장사하고 사는 데 가보았다. 조카며느리는 나를 보자 소리없이 굵은 눈물줄기만 주르륵 흘린다. 한 삼십 년 고생하더니 지금은 잘살게 됐다. 그 옛날 오빠가 지나는 사람 불러 밥 먹여 보낸 공덕인가 싶다. 손자까지 봤으니 내게는 친정으로 증손자이다.
지금 신 씨네도 어른들 안 계시고 이 씨네도 어른들 안 계시고 김 씨네 집에 나만 오래 살고 있다. ‘고모 한 분이시잖아요. 이모 한 분이시잖아요.’ 하며 늙은 조카들이 내 나이를 따라오며 나한테 잘한다. 힘들게 살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고맙기 한량없다. 내 나이 내년이면 망구다. 친정조카들이 잘하니 망구에 노래가 나오려고 한다.
행사 날이 되면 내가 노래 부르기 전에 이 씨네 조카딸이 노래를 부를지 모른다. 늙어가며 집안내력을 무시하고 끼가 생겼다고 한다. 가족의 내력보다 시대가 이기나 보다. 얌전하고 조용하고 조신한 조카딸이 얼굴에는 나타나지 않고 끼를 발휘한다니, 오래 살면 구십을 바라본다는 망구라는 말과 같은 의미일까. 이 씨네 오랜 전통을 깬 조카딸에게 망구의 노래란 자격증을 주고 싶다.
다 같이 늙어가는 조카들과 망구의 노래를 합창하고 싶다.
- 본문 중에서
이하순 ------------------------------------------
충북 옥천에서 출생, 대전대학교 사회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 《문학세계》신인상 수상 (2003. 5.),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집《해 잡으러 간다》, 수필집《하얀 종이》,《망구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