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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6월호, 세상마주보기] 누름돌 - 민병옥

신아미디어 2013. 8. 12. 21:26

"우리는 일상 삶의 벽에 부딪혀 넘어지고 쓰러지기도 한다. 또 힘겹게 일어서 가는 것이 우리 삶이 아닌가. 그럴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라 우리를 무너뜨린다. 그러나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하기에 몸과 마음을 추스른다. 세상 삶의 온갖 것이 융해된 선조의 순교탑 앞에서 나를 바로 세우기로 다짐해본다. 내 마음에서 솟구치는 오욕과 화를 돌확에라도 넣어 누른다. 어떤 어려움에도 참아내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다. 욕심과 화를 누르는 ‘누름돌’ 하나를 탑에서 꺼내어 마음에 담았다."

 

 

 

 

 

 누름돌   민병옥


   누름돌은 오이지나 장아찌를 담글 때 물에 뜨지 않게 꾹 눌러주는 돌이다. 눌러주지 않으면 물 위에 둥둥 떠서 공기와 접촉하여 부패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처럼 남을 위해 보람된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볼 수 있다. 물질 만능의 다양한 세상에 자신의 솟구치는 욕망을 자제하면서 살아가기도 벅찬 인생이다. 그런데 남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무언가 다른 데가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마음에는 선과 악의 기운이 교차한다. 악한 기운이 선한 기운을 누르면 독이 되어 나타난다. 악의 기운이 넘치면 죄의 씨앗이 뿌리내려 나쁜 짓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가정교육이나 학교 교육, 사회 교육, 종교 교육 등을 통해서 악의 세력을 잠재우고 선을 깃들게 하여 습관화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인간은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 먼저다. 마음의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화를 눌러도 틈새를 타고 불쑥불쑥 솟구치는데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순간의 화를 다스리지 못해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고 만다. 그래서 성현들은 3초를 인내하고 생각해 보라고 했다. 짧은 시간이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기도 하니 말이다.
   나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내 가치의 틀에 학생을 맞추려면 번번이 충돌하고 만다. 학생의 관점에서 사고하고 판단하는 기준으로 잣대를 맞추어야 한다. 그런데도 자주 갈등과 충돌이 일어난다. 인내의 한계를 넘나들며 화가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마지막 3초를 인내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그럴 때면 나 자신이 무너져 속상하기도 하고 미워지기도 한다. 화를 다스리는 누름돌이라도 하나 마음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충남 공주에는 황새바위가 있다. ‘황새바위’는 황새들의 서식지여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지만 조선말 천주인들이 목에 항쇄 칼을 쓴 채 처형된 장소였기에 ‘항쇄바위’라고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337명의 순교자 외에 수많은 무명의 순교자가 목숨을 버린 곳이다.
   내 머릿속에는 ‘신앙 선조들이 어떻게 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 끝까지 그들 신앙의 주인을 증거하며 순교의 월계관을 썼을까.’ 궁금했다. 그러던 중 궁금증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야트막한 동산에 오르자 주위의 산야가 한눈에 들어왔다. 푸르던 나뭇잎들이 형형색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소중한 자기 몸의 일부를 비워내느라 붉게 타오르는 것이리라.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진리를 알려주는 듯했다.
   신앙 선조의 삶이 우리의 삶과 무엇이 다른지 어렴풋이 다가왔다. 우리의 삶은 채우는 것에 연연한 삶이 아니었나 싶다. 재물과 권세, 명예를 채워 넣기에 바빠 마음의 눈이 멀어진 것이리라. 그러나 신앙 선조는 마음의 누름돌을 놓치지 않고 삶의 첫 자리에 그들 신앙의 주체를 앉혀 그분 중심으로 살았기에 신앙을 고백하며 증거하는 삶을 살았으리라.
   오늘을 사는 우리의 순교 정신은 무엇일까? 산야의 나무가 진통을 겪으며 잎을 물들여 낙엽으로 비워내듯, 욕심으로 가득 찬 우리네 마음을 비워야 하리라. 그 자리에 믿음의 신앙을 채워 세상 복음화에 일조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동산의 한 자락에는 ‘순교탑’이 우뚝 서 있었다. 탑 앞에는 형구돌이 놓여있고 그 너머로 하늘을 향한 탑이 솟아 있었다. 탑 사이에는 하늘을 오르는 사다리 계단이 하늘 기둥 사이에 바투 놓여 있었다. 계단 끝 너머로 하늘이 가까이 내려앉은 듯했다. 당시의 참담함을 묵상하면서 탑 주위를 맴돌았다.
   나는 탑 주위를 맴돌면서 인생의 삶에 골몰했다. 형구돌에 머리가 터지고 눈알이 튀어나오고 얼굴이 뭉개지는 고통스런 선조의 환영이 내 머릿속에 유영해 왔다. 그러나 환한 웃는 모습으로 나를 반기는 듯했다. 그 아픔 뒤에 저 계단을 오르는 자격이 주어지는구나 싶었다.
   우리는 일상 삶의 벽에 부딪혀 넘어지고 쓰러지기도 한다. 또 힘겹게 일어서 가는 것이 우리 삶이 아닌가. 그럴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라 우리를 무너뜨린다. 그러나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하기에 몸과 마음을 추스른다.
   세상 삶의 온갖 것이 융해된 선조의 순교탑 앞에서 나를 바로 세우기로 다짐해본다. 내 마음에서 솟구치는 오욕과 화를 돌확에라도 넣어 누른다. 어떤 어려움에도 참아내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다. 욕심과 화를 누르는 ‘누름돌’ 하나를 탑에서 꺼내어 마음에 담았다.

 

 

민병옥  -------------------------------------------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질주≫, ≪어레미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