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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2년 가을호, 신작수필18인선] 입도入島20주년 - 심규호

신아미디어 2012. 11. 27. 19:30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해는 뜨고 지고, 달은 차고 이지러지고, 바닷물은 들어오고 나가고, 사람은 생겨나고 사라지고,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또 흐르고. 나의 의지와 전혀 무관하게 만나고 헤어지고, 가지고 내주고, 추워지고 더워지고, 흐르고 멈추고, 그렇게 시절은 가고 또 가고. 그런데 시간은 그 모든 것을 정해진 것으로 매듭을 짓는다."

 

 

 

 

 

 

 입도入島20주년


 

   검은 머리에 윤기 흐르는 얼굴, 제법 단단한 장년壯年의 몸집으로 섬으로 들어와 반백에 잔주름, 통통한 뱃살의 지천명의 나이를 넘겼으니 그 세월이 참으로 만만치 않다. 그러니 엊그제 같다는 말은 거짓이다. 스무 해의 성상星霜이 지났는데 어찌 모든 것이 헛되다는 듯이 그리 축약할 수 있겠는가? 허나 참으로 엊그제 같다고 할 수밖에 없음은 그 세월의 속절없음이 아쉽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물 건너 제주에 온 지 벌써, 또는 이제야 스무 해가 지났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오랫동안 산 곳이 제주는 아니지만 기억의 그물을 펼쳐본다면 가장 촘촘한 곳이 제주가 아닐까 싶다.
   새로운 해가 시작될 무렵,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해는 뜨고 지고, 달은 차고 이지러지고, 바닷물은 들어오고 나가고, 사람은 생겨나고 사라지고,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또 흐르고. 나의 의지와 전혀 무관하게 만나고 헤어지고, 가지고 내주고, 추워지고 더워지고, 흐르고 멈추고, 그렇게 시절은 가고 또 가고. 그런데 시간은 그 모든 것을 정해진 것으로 매듭을 짓는다. 이 역시 나의 의도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되고, 부여되며, 심지어 옥죈다. 그렇게 나는 이 제주에서 스무 해를 보내고 있다. 무심한 세월에 견주어 스무 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마는 결정된 시간에서 스무 해는 혹여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또 하나의 매듭으로.
   딱히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아마도 20주년이 되었다고 학교에서 무슨 패를 줄 것이고, 그 즈음에 자축하는 의미로 술 한잔 진하게 마실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마치 생일처럼 입도한 그날을 기념하는 방법도 있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마음으로 기억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뭔가를 꾸미고 있었다. 첫째는 그간의 수필을 묶어 첫 번째 수필집을 상재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몇 년 동안 번역한 역서《완적집阮籍集》출간 기념회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이미 많은 역서가 있는데 굳이《완적집》출간 기념을 생각한 것은 공교롭게도 지금 바로 내 나이에 죽은 그를 추모하는 일종의 살풀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위로이자,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끝내 자신을 놓지 않았던 그에 대한 경의이기도 했다. 그래서 몇몇 지인들에게 작년부터 살풀이의 내용을 슬금슬금 흘리고 다녔다. 그가 능숙하게 다루었다는 칠현금의 주자奏者가 혹시라도 우리나라에 있는가 물어보기도 하고, 아예 중국에 가서 그의 흔적을 찾아 사진을 찍어올 생각도 했었다.
   가능하다면 화창한 봄날에 그 두 가지를 모두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수필집은 3월에 나왔는데,《완적집》출간은 자꾸만 미뤄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아내와 내가 번역한 모옌莫言의《개구리〔蛙〕》가 곧 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오! 잘됐네. 그렇다면 한꺼번에 두 가지 역서를 가지고 출간기념회를 하면 어떨까? 생각은 점점 가지를 치고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하더니 어느새 묵직한 부피를 지니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그 부피에 맞는 실한 내용을 찾는 것이 필요했다.
   아내와 나는 한적한 커피숍, 저녁나절에 산보하는 길에 있는 그곳에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제목은‘완적을 추모하며, 개구리를 생각하다? - 심규호와 유소영의 작은 출판기념회’로 정했다. 1부는 번역가의 이야기, 이렇게 본다, 저렇게 본다. 2부는 작은 음악회. 그리고 3부는 와인과 막걸리, 그리고 최정혜 선생님의 음식이 어울린 일종의 파티이다. 음악에는 당연히 칠현금 연주가 있어야 하는데, 여의치 않아 그것과 가장 가까운 악기인 거문고로 대체했다. 그리고 대금과 기타, 톱 연주를 넣었다. 대금은 죽림竹林의 의미로, 기타는 가장 보편적인 현악기라는 뜻에서, 그리고 톱은 귀곡성鬼哭聲의 의미였다. 날짜를 확정하고 음식 준비까지 부탁했는데, 《개구리》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노심초사한 것은 아니지만 막상 당일에 책을 받고 보니 아슬아슬했다는 느낌이 들밖에. 수십여 권 지금까지 번역한 책들을 준비하느라 이곳저곳 출판사에 전화를 하고, 절판된 것은 집에 있는 유일본을 그냥 내놓기로 했다. 출판기념회 전날 제주문화포럼 문화공간 제주에서 마지막 준비 작업을 하면서 나는 문득 제주 20년의 삶을 떠올렸다.
   기쁨에 겨워 환호성을 지르던 날보다 생각하기도 싫은 궂은일로 가득한 날이 더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아픈 날보다 건강한 날이 더많았겠지만, 내 정신상태가 항상 건강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권세보다 억압이 더 많고, 고고함보다 비열함이 더 지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위안한답시고 시대를 욕하거나 환경을 탓했을 것이다. 말로는 대인군자임에 분명하나 속은 소인배 기질이 다분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하여 시기와 질투를 미워하면서도 스스로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러지 말자고 하면서도 자꾸만 책임을 남에게 미루었을 수도 있다. 언제나 치열하게 살겠노라고 다짐하면서도 끝내 방임한 세월이 또한 적지 않았을 것이다. 보고 싶고 만나면 반가운 이들도 많지만 보기만 해도 짜증나는 이들도 적지 않으니, 나를 보기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이들 또한 적은 수는 아닐 것이다. 지용과 주용, 두 아이가 잘 커준 것이 무엇보다 고맙고 기쁜데, 과연 내가 그들을 정말 잘 키우려고 애썼는가는 확언할 수 없다. 때로 양육의 어려움을 내비친 것은 아닌지, 혼낸다고 손찌검을 한 적도 있었으니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하다. 아내에게는 또 어떠한가? 항상 그녀 앞에서는 비굴하고 싶을 뿐이다.
   혹 내일 비가 오는 것은 아닐까? 아내에게 물었다. 화창한 날씨래요. 아내가 대답했다. 지금까지 스무 해 삶의 무게의 절반은 아내 것이다.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다. 그녀가 그린 그림 3점과 내가 그린 그림 1점을 책들 사이에 세워놓기로 했다. 그녀의 정물화가 책들과 잘 어울린다. 거문고 줄을 고르는 여인을 묘사한 신윤복의 작품을 모사한 내그림 한 편에 이렇게 적었다. “거문고를 그린 혜원의 뜻, 부운(自號)이 그 마음을 그려보다. 문득 완보병(완적)을 생각하느라 잘못 선 그어 찡긋 웃는다(蕙園畵琴意, 浮雲寫情調, 輒想阮步兵, 線錯笑).”
   초청장을 만들어 이리저리 100여 장 보냈다. 육지 친지나 친구들에게도 보냈다. 몇 명이나 올 지 알 수 없으되, 대략 7, 80명 정도면 공간에 딱 알맞다. 오후 5시 출간회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끝나기로 예정한 7시를 훌쩍 넘긴 8시쯤에 끝났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왔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넉넉하게 100인분을 준비했다는 음식이 모두 동이 났으니 즐거운 일이다. 아마도 완적도 기뻐했을 것이다. 전혀 뜬금없는 세상에서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잠시 그를 추모하고 대바람 소리에 죽림의 그늘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모옌의《개구리》를 읽으면서 계획생육에 희생된 누군가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기쁜 일이다. 정리를 한 다음 나는 마지막까지 남은 이들과 뒤풀이를 하러 갔고, 아내는 그녀의 친구들과 팥빙수를 먹으러 갔다. 모두 웃는 낯이었다. 좋았다. 아, 그래! 내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들 때문이지. 그렇구나. 나와 내 식구가 제주에서 스무해를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지. 며칠 후 지용이가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다. 댓글이 많이 붙었다. 나도 댓글을 썼다. “감사합니다. 잠시 먹먹했습니다.”

 

 

심규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