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좋은수필/좋은수필 본문

[좋은수필 2012년 가을호, 신작수필18인선] 비자림에서 - 전해주

신아미디어 2012. 11. 25. 16:29

"저 당당한 800살의 노목도 언젠가는 자신의 삶을 내려놓게 되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생명이 자리잡을 것이다."

 

 

 

 

 

비자림에서


   아직은 오월인데도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바닷가에서 시커먼 용암을 보고 온 직후라서일까. 오늘따라 이곳 제주의 햇볕은 유난히 따갑다. 비행기 출발까지 서너 시간 여유가 있어, 공항 가는 길을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라는 삼나무길로 우회하기로 했다. 길 양옆으로 하늘을 찌르는 듯 곧고 큰 삼나무들이 마치 사열을 받는 군인처럼 도열해 있어 이국적 느낌이 든다. 쭉 뻗은 길을 따라 한참을 가니 가로수는 삼나무에서 어느새 비자나무로 바뀌고, 길 끝에 ‘비자림’ 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에 묻어오는 비자향이 그윽하다. 입구에 들어서자 더욱 진한 향내가 나를 끌어들인다. 잎사귀가 아닐 비非자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숲은 깊고 울창하여 청량감이 감돈다. 탐방객을 위하여 만들어 놓은 오솔길을 따라 걸으니 흐르던 땀이 어느새 가신다. 수백 년 된 아름드리 비자나무들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고, 나무 몸통과 줄기를 콩짜개난이 휘감고 있는 모습이 마치 원시림에 들어온 것 같다. 이곳식물들은 대부분 바람에 실려온 씨앗이 절로 떨어져서 자라고 있는 것 같다. 나뭇잎 사이로 부챗살처럼 가늘게 햇살이 들어와 내 얼굴에 꽂힌다. 키 큰 비자나무 아래에서는 여러 종류의 관목과 풀들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그 연약한 빛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비자나무가 햇빛을 나누어주는 만큼씩만 자라고 있다. 많은 햇빛이 필요한 식물은 이곳에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비자나무가 그들의 생사를 주관하는 절대 권력자 같다.
   숲 속 깊숙이 들어가니 오솔길 한가운데에 이 숲의 최고령인 800살의 비자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다. 그 아래 벤치에 앉아 숲을 지나온 달큰하고 상쾌한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며 제왕 같은 나무를 올려다본다. 저렇게 큰 나무가 되기 위해 그 아래에서는 얼마나 많은 작은 생명들이 명멸해 갔을까.
   세월이 흐르면서 어쩔 수 없이 늙고 쇠약해진 나무들이 곳곳에서 수액주사기를 달고 치료를 받고 있다. 벼락이 내리쳤는지 검게 그을린 나무도 있다. 숲의 여기저기엔 사나운 비바람에 쓰러져 있는 고사목들이 많이 보인다. 저들도 한때는 하늘을 향해 한껏 팔 벌리고,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린 당당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길게 누운 나무 위로 들쥐, 다람쥐, 개미가 놀다 간다. 자신의 전부를 내어놓는 모습이다. 저 당당한 800살의 노목도 언젠가는 자신의 삶을 내려놓게 되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생명이 자리잡을 것이다. 죽음은 새로운 생명을 위해 자연이 내어놓는 가장 큰 베풂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자나무들은 각각 관리번호를 새긴 이름표를 달고 있다. 꼭 죄수복에 새겨진 수인번호 같다. 한 번 태어나면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지내야 하는 삶. 누군가 찾아주지 않는다고 찾으러 나갈 수도 없는 신세다. 마치 종신 복역 중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무에게 발이 달려 있다면 아마도 나무는 봄에 꽃을 피우지도, 열매를 맺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무는 스스로 걸을 수 없기 때문에 매혹적인 꽃을 피워 벌과 나비를 부르고, 달콤한 열매를 흔들며 새를 부르는 게 아닐까.
   사람들은 힘들고 삶이 고달플 때 그들에게 찾아와 평안과 휴식을 얻지만, 정작 그들은 누구에게 위로를 받을까. 나는 아들에게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하여 수목장을 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빽빽이 들어찬 나무들을 보니, 나의 그런 죽음은 나무들에게 인간의 죽은 영혼까지 위로해야 하는 또 다른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머리 위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있다. 그들의 노랫소리가 마치 ‘非자 非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전해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