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장은 당시 그녀에겐 가난을 극복하게 해준 행운의 손길이기도 했지만 인생의 판도를 바꾸어 놓은 함정이기도 했다."
눈물어린 졸업장
미국에서 걸려온 친구의 전화 목소리를 듣고 나는 아득한 세월을 감지했다. 옛 기억을 더듬으며 내 전화번호를 떠올렸다니 머리 좋기로 유명한 그녀를 새삼 입증하게 된 셈이다. 통화를 끝내자 나는 곧장 젊은 날 그녀가 주고 간 결혼 선물을 찾기 위해 안방으로 건너갔다. 당시 그 탁상시계는 값비싼 물건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지만 고장난 시계가 된 뒤에도 차마 버릴 수 없어서 화장대 서랍에 넣어두고 간간이 그녀를 생각하곤 했다.
정지된 시간 속에는 나만 아는 그녀의 비밀이 숨어 있다. 순옥이는 내 결혼식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소식을 끊고 살았다. 45년 전의 일이다. 어느날 적십자사에 다니고 있던 친구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지금 순옥이의 신원조회를 하려고 미군하고 통역관이 너를 만난다고 떠나갔어.”미처 수화기를 내려놓지도 않았는데 벌써 두 사람은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내 가슴은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마냥 방망이질 해댔다. 그들은 대뜸 신원조회 용지에 순옥이가 나를 친구로 기재했다며 질문을 퍼부었다.
“그 친구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까?”
나는 분명 아닌 줄 알았지만 차마 말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3학년이 되어서는 서로 연락을 못해서 잘 모르겠는데요.”
“친한 친구라면서 어떻게 그런 걸 모를 수 있나요?”
순옥이는 전교에서 맡아 놓고 1등을 하는 수재였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미군부대에 취직하려 하였지만 학력이 걸림돌이 되었다. 그녀는 고민 끝에 내 졸업장을 위조해 갔던 것이다. 통역관의 반복되는 질문에도 모호한 대답을 늘어놓자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단념한 듯 떠나갔다. 나는 그 뒤 소식이 궁금했으나 연락을 하지 못하고 45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그 진상을 알 수 있었다.
솜사탕을 팔아 7남매를 키워야 했던 아버지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어 그녀는 취직해야 했다. 그런 심정을 이해했던지 군 담당관은 간곡한 호소를 받아들여 그녀를 타이피스트로 채용해주었다. 그 후 순옥이는 미군 장교와 교제를 하게 되었고 그와 결혼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하면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는 남동생들을 데려다가 공부시킨 덕에 두 동생들은 한국에 나와 어엿한 약사로 대학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워싱턴 주에 있는 신문사 부사장직에 올라 당당한 몫을 하고 살았다. 해마다 5월이면 휴가를 낼 수 있어서 일 년에 한 번씩 한국에 다녀갔다는데 나와 만났던 해에는 회갑기념 잔치를 남동생들이 해주어 초등학교 동창생들과 함께 참석할 수 있었다. 몇십 년 만에 재회한 자리에서 나는 그녀의 가족들 앞에 나가 친구들 대표로 인사말을 했다. 그녀는 연회를 베풀어준 동생들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남동생들이 미국에 와서 박사학위를 받던 날도 그렇게 눈물을 흘렸다며 돌아가신 부모를 대신하여 큰일을 해낸 뿌듯함을 애써 감추었다.
그러나 그녀에겐 말 못할 사연이 있었다. 현지에 두 아들과 아내가 있는 지금의 남편이 그녀와 결혼을 하면서 자식을 포기할 것을 제안했고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자신 하나 희생시킴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유혹을 젊은 날에 뿌리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미국행은 못다 한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지만 가난한 집안을 일굴 계산이 없지 않았다. 인간의 욕망을 모두 다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젊은 날에 알아버렸던 그녀는 자신을 희생시키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을지 모른다. 초등학교 동창생들은 그녀의 지나간 이야기를 듣고 측은한 마음이 앞서 강릉 바닷가에서 1박을 하기로 하고 회갑 여행을 추진했다.
그녀는 횟집에서 소주잔을 건네는 친구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면서 신기해했고 저마다 조그만 선물을 준비하여 건네자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다. 그러나 세상에 태어나서 한 여인의 삶과 어머니의 삶을 포기해야 했던 아픔을 상기시키듯 바닷가를 거니는 그녀의 몸매는 실바람에도 날아갈 듯 가냘팠다. 인간은 과연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현상으로 보이는 단면 뒤에 수없이 얽혀 있는 고뇌의 흔적을 모두 지워버린다면 하나의 답이 나올 수 있을까? 간절했던 소망을 이루게 되면 다른 삶은 모두 포기를 해도 괜찮다는 것일까?
동생들을 위해 산 삶도 모자라 조카들 뒷바라지까지 하면서 연속적인 봉사를 하는 그녀는 현실을 운명인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녀가 떠나간 뒤에도 나는 간간이 우리네 인생의 난지도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졸업장은 당시 그녀에겐 가난을 극복하게 해준 행운의 손길이기도 했지만 인생의 판도를 바꾸어 놓은 함정이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뒷면의 얼굴이 복선을 깔고 다가와 방향을 바꾸어놓는다면 그 힘에 밀려가는 운명을 거역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그녀는 체험했을 것이다.
순옥이는 출국하면서 친구들에게 미국에 있는 자기 집으로 놀러오라고 당부했다. 그럼에도 만만찮은 경비 문제로 포기했다는 말에 실망했었는데 올해도 5월이면 그녀가 고국에 다녀갈 수 있을지 머잖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아직은 기약이 없다.
박종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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