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좋은수필/좋은수필 본문

[좋은수필 2012년 가을호, 신작수필18인선] 비오는 날의 외출 - 장수영

신아미디어 2012. 11. 12. 19:32

"모처럼의 외출이 더욱 행복한 하루였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만한 행복을 안겨준 적이 있었을까?"

 

 

 

 

비오는 날의 외출


   일요일 오후,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할 일은 많은데 누군가를 만나 수다라도 떨고 싶은 날이다. 때마침 휴대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친한 동호인 k였다. 비도 오는데 점심이나 먹자는 제의다. 마침 잘되었다 싶어 집안일은 일단 뒤로하고 곧바로 승용차를 몰고 길을 나섰다.
   스쳐가는 도로 옆 가로수들의 빗물에 씻긴 모습이 더욱 싱그럽다.
   삼십여 분쯤 달려가자 약속장소에 그가 우산을 쓰고 마중 나와 있었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따뜻한 칼국수가 안성맞춤이다. 근처 바닷가를 찾기로 했다. 가는 길목에 기다란 시화방조제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비가 오는 중에도 몇몇 사람들이 도롯가에 차를 세우고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에 차를 세우고 우중 낚시에 여념 없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미끼에 속은 어리석은 물고기를 기다리는 것일까. 아니면 인생의 고달픈 상념들을 떨치고자 세월을 낚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끔은 저런 시간들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없이 스쳐가는 일상을 뒤로하고 강태공이 되어 하루를 보내보는 것도 모든 시름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하리라.
   바다는 비 때문인지 물안개만이 자욱하여 멀리 다른 풍광은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시원하게 느껴졌던 바닷바람이 조금 시간이 지나자 차갑게 느껴졌다. 휴대폰에 한 장의 인증샷을 남기고 우리는 근처 바닷가로 향했다.
   ‘방아다리’라는 작은 부둣가에 차를 세우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도 모르게 어린애처럼‘와’하고 함성을 질렀다. 많은 갈매기들이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고 어우러져 날고 있었다. 비가 오는데도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과 연인들로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이 갈매기들이 좋아하는 새우깡을 하늘로 높이 던지면 갈매기들은 앞다투어 받아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도 작은 매점으로 달려가 얼른 새우깡 한 봉지를 사들고 왔다. 어린애처럼 하나씩 갈매기들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마치 나는 투수요, 그들은 포수 같았다. 그런 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K도 함께 새우깡을 던지기 시작했다. 우리 머리 위로 많은 갈매기들이 더욱 모여들었다. 그들은 어설프게 던지는 나의 손놀림에도 정확하게 새우깡을 물고 날아갔다. 어떤 놈들은 손에 쥐고 있는 새우깡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재빨리 채가기도 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놀러 나온 아이들도 저마다 소리지르며 좋아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만면에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모두가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간 듯했다. 그동안 산적해 있던 일상의 상념들이 모두 날아간 듯 가슴속이 시원해졌다.
   새우깡을 다 던지고 나자 그제서야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기에 때늦은 시간이었다. 다시 차를 몰고 근처 바닷가 칼국수집으로 갔다. 그곳 역시 우중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종업원이 창가로 자리를 안내했다. 창밖에는 멀리 물안개 피어오른 바닷물 위로 한가로이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이 보이고 바닷가를 거니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비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갯벌에서 아이들과 함께 무언가 열심히 잡고 있거나 그곳을 거닐고 있었다.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잠시 후, 종업원이 먹음직스러운 바지락칼국수를 가져왔다. 모처럼 먹는 칼국수가 오늘따라 유난히 맛있어 보였다. 오늘의 내 기분 탓일까. 칼국수를 열심히 먹다가 잠시 창밖을 내다보니 유리 창문 바로 옆에 웬 갈매기 한 마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비오는 날 먹을 것을 찾다가 혹시 뭐라도 줄까 싶어 사람 옆에 온 듯했다. 국수 속의 조개 하나를 던져주니 얼른 받아먹고는 또 줄까싶어 왔다 갔다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잠시 바닷가로 비행을 하려다가도 다른 놈이 가까이 오려고 하는 듯하면 행여 명당자리를 빼앗기기라도 할까 싶어 얼른 되돌아오곤 하는 양이 마치 영악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여 웃음이 나왔다. 수많은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우리 또한 한 치라도 남에게 자기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던가!
   바닷가에 노니는 아이들과 갈매기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휴대폰의 벨이 울렸다. 대학원 동문인 J다. 비 오는 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했다. 바닷가에서 갈매기들과 놀았다니 어린애처럼 무척 부러워하며 가족들이 모두 나가서 혼자 있으니 집으로 놀러오면 어떠냐는 제의였다. 이어서 친정어머니와 몇몇 지인들의 전화가 계속되었다. 모두들 함께 저녁을 함께하고 싶다는 제의였다. 오늘따라 유난히 나를 찾는 전화가 많은 것 같다. 행복했다. 나를 생각해 주는 그들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그런 나를 옆에서 지켜보던 K가 인기 많아 좋겠다며 익살을 부렸다.
   비가 오면 사람들의 감성도 나무들처럼 싱그러워지는 것일까! 모처럼의 외출이 더욱 행복한 하루였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만한 행복을 안겨준 적이 있었을까?

 


장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