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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2년 가을호, 신작수필18인선]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 이향아

신아미디어 2012. 11. 9. 14:25

"‘고맙습니다.’ , ‘미안합니다.’ 나는 밑도 끝도 없이 그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친구가 시집을 내겠다면서 원고 다발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 중
<인순이>라는 제목의 시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나도 친구처럼 가수 인순이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노래보다 먼저
그가 걸어왔을 평탄하지 않은 길을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그녀가
잘 견디고 성공해 준 것이 고마웠다. ‘인순이’ 는 그냥 ‘인순이’ 가
아니라 수난의 우리 역사와 불행한 처지를 일깨워주는 산증거인 것
이다.
   친구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미운 오리 새끼였던 그녀’ 가 ‘오열
을 노래와 춤으로 엮어’ 별이 되었음을, 운명을 들쳐매고 하늘에 떴
음을 감동적으로 노래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비단 아버지에게만 버림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 모
두가 그녀를 버리고 돌보지 않았다. 그녀 스스로 질경이처럼 이기고
버티고 성취했던 것이다.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몇 시간을 계속 우는 애가 있
었다. 40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안고 있었는데 애를 다루는 손길이
서툴렀다.
   그의 곁에 있는 친구들도 도와줄 생각이 없는지 본척만척하였다.
자기들끼리 무어라고 지껄이는데 중국말이었다. 우리 일행 중 하나
가 보다 못해 다가가 손짓 발짓으로 애를 좀 달래보겠다고 해도 그
는 고개를 흔들어 거절하였다.
   24개월이나 되었을까, 애는 ‘엄마, 엄마’ 하면서 울었다. 나는 평
소에 ‘엄마’ 라는 말이 만국 공통어이며, 언어 이전의 본능적 부르짖
음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그애는 분명 한국의 아이로, 해
외로 입양되어 가는 것 같았다.
   중국남자는 애를 양부모가 될 사람에게 데리고 가면서 비행기 값
정도를 받을 것이다. 홀트아동복지회 같은 단체에서 해외로 입양될
아기를 데리고 가면 일정액의 보수를 지불하는 예를 많이 봤다.
   6·25 동란 이후에는 전쟁고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미혼모가 버
린 애들이 많다고 한다. 전쟁고아는 불행한 역사의 산물이지만 요즘
의 고아는 우리가 그토록 심신을 바쳐 얻은 풍요의 산물이다. 풍요
가 나태와 타락을 불러오고 탈선을 불러왔을 것이다.
   우는 애를 어떻게 달랠까 쩔쩔매는 중국남자를 보기가 민망하고
창피하였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바로 내 앞자리에 암스테르담에서 탑승한
네덜란드 가족(부부와 노모)이 한국 아이 두 명을 데리고 있었다. 다
섯 살,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은 남매인 듯 모습이 꼭 닮았었
다. 그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앉았다 섰다 누웠다 몸부림을
하여 어른들을 귀찮게 하였다. ‘버릇없이 굴지 마라. ’나무랄 법한데
도 온갖 귀찮은 청을 다 들어주었고, 애들이 귀여워 어쩔 줄 모르겠
는지 자랑스러운 눈길로 돌아다보며 자꾸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너희 모국은 한국이다.’ 뿌리를 일러주려고
한국 여행을 계획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지난번 중국인에게
가졌던 창피함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 ‘미안합니
다.’ 나는 밑도 끝도 없이 그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요즘 가끔 해외로 입양됐던 아이들이 한국의 부모를 찾는 모습을
TV에서 본다. 생후 두 달이었을 때, 생일은 버려진 포대기 안에 적
혀 있었고 이름은 고아원에서 지어 주었다고. 버려진 곳은 아무 곳
아무 동네라고 하는데 확실하지 않다고.
   너무나도 막연한 정보를 들고 방송국을 찾은 몇십 년 전의 아기,
지금은 삼십대 중반을 넘긴 청년. 다행히 좋은 양부모를 만나 서양
의 명문학교를 졸업하고 원하던 일을 하고 있지만 자기를 버린 친부
모가 궁금해서 눈물을 흘리는 청년.
   “다 제 복이지요. 무능한 친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저렇게 훌륭하
게 성장하지 못했을 텐데.”
   그러나 버려진 것이 복이라며 위안을 삼기에는 양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요즘 프랑스 새 내각에 여성장관으로 입각한 프뢰르 펠르랭 씨도
입양된 한국인이고, 프랑스 상원의원으로 녹색당 원내대표가 된 장
뱅상 플라세 씨도 한국입양아다.
   버려진 먼 나라의 고아를 기르고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상원의원
으로 장관으로 발탁한 프랑스의 위대한 가치관 앞에 머리를 숙인다.
그 절대평등 민주의 정신이 한없이 존경스럽고 부럽다.
   성공한 그들이 한국인이라고 감히 말할 수가 없다. 그럴 염치가 없
다. 그들의 성공은 성공한 당사자와 그를 길러준 양부모의 영광이며
명예로 남을 것이고, 우리는 그저 멀찌감치 서서 박수를 치고 응원
이나 해야 한다.
   버려진 아이도 아니고 부모가 뻔히 눈을 뜨고 있는데도 소위 다문
화가정 아이라고 멸시하고 따돌리는 현재의 우리 모습은 얼마나 유
치하고 우둔하며 비열한지. 오히려 그들에게 고마워하고 미안해해
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지금은 외롭고 낯설어서 어색해하는 그들, 오묘한 연분의 굴곡을
넘어 한국인의 피를 받은 아이들. 그들은 자라서 20년, 30년 후 우
리 사회를 이끌어갈 중추적 인물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한반도 도처에서 인순이는 자라고 있다.

 

 


이향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