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좋은수필/좋은수필 본문

[좋은수필 2012년 가을호, 신작수필 18인선] 짧은 글 두 편: 산山, 그리고내〔川〕 - 정진권

신아미디어 2012. 11. 9. 14:15

“저 山과 내여, 영원히 살아 있으라!”

 

 

 

 

 짧은 글 두 편
     - 산山, 그리고내〔川〕


 

 

  산山


   땔 게 없다. 땔 것 없는 마을 사람들, 지게에 낫 꽂고 山엘 간다. 도
끼, 갈퀴도 동원된다. 마구 나무를 쳐 온다. 솔가리도 다 긁어 온다.
그러면서도 묘목 한 그루 심지 않는다. 山이 벌겋게 맨살을 드러낸
다. 도토리 한 톨 구경할 수가 없다. 다람쥐, 청설모가 자취를 감췄
다. 꿩 한 마리 울지 않는다. 비가 오면 토사가 흘러내린다. 흘러내린
토사가 물 흐르는 골을 메운다. 피라미 한 마리 살 수가 없다.
   마을 사람들은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들었다. 이건 아니다. 젊은 이
장里長이 앞장을 섰다. 청장靑壯, 중로中老들이 뒤를 따랐다. 우선 읍
내 연탄공장과 계약을 맺었다. 새 땔감이 차질 없이 공급되었다. 그
리고 나무를 심었다. 벚나무, 상수리나무, 산밤나무, 소나무, 잣나
무……. 냇물을 메운 토사도 다 걷어냈다. 나무 심는 날, 토사 치우는
날은 부녀회에서 밥 짓고 막걸리를 걸렀다. 한마당의 축제였다.
   어느덧 강산이 한 번 변했다. 이제 山은 도토리, 산밤이 지천이다.
잣송이도 소담스럽다. 다람쥐, 청설모, 종일 기분 좋게 바쁘다. 어디
서 꿩꿩 꿩이 운다. 우렁차다. 물 맑은 냇물엔 피라미가 잽싸다. 게으
른 모래무지, 엉큼한 메기는 한가롭고, 진흙 속 미꾸라지는 통이 굵
다. 주말이면멀리등산객들이찾아온다.“ 야호!”소리가끊임없이山
을 울린다. 구멍가게 매상이 부쩍 늘었다. 가게 인심이 후하다.
   아, 저기, 누가 물고기를 잡는다. 마을 청년 서넛이다. 가 보자. 통
발에 통 굵은 미꾸라지가 우글거린다.
   “웬 미꾸라지예요?”
   “아, 예. 식목행사도 무사히 끝나고 해서, 저녁때 추어탕 끓여서 마
을 어르신네 대접하고 우리도 이장님 모시고 막걸리 한잔할까 하고
요. 다섯 시, 마을회관이어요. 꼭 오셔서 같이 한잔하세요.”
   그날 나는 막걸리 두어 잔에 추어탕 한 그릇 잘 얻어먹고, 기분 좋
게 버스를 탔다. 돌아오면서 몇 번씩 그 마을을 돌아보았다.
   “저 山과 내여, 영원히 살아 있으라!”

 

 

  내〔川〕


   작은 읍내 한복판을 길게 냇물이 흘렀다. 물이 맑았다. 물속 자갈
들이 환히 다 들여다보였다. 아낙네들은 그 물가에 앉아 빨래를 했
다. 방망이 소리, 웃음소리, 이야기 소리에 날이 저물었다. 남정네들
은 그 물에 낚시를 던졌다. 시뻘건 고추장에 막걸리 몇 병도 놓여 있
었다. 한잔하는 그들도 웃음소리, 이야기 소리가 끊임없었다.
   한여름, 꼬마들은 그 냇물로 달려갔다. 달려가서는 옷 벗어 자갈밭
에 던지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뛰어들어서는 물장구치며 깔깔거리
고 손바닥 딱딱 피라미도 쫓았다. 그러다 보면 먹구름이 모여들기도
했다. 다음 순간 후두두둑, 어라 소나기다. 녀석들은 자갈밭에 벗어
던졌던 옷을 그러안고 냇가 느티나무 아래로 뛰었다.
   그 아래 앉으면 저 건너 안산에 박힌 검은 바위들이 보였다.
   “몇 개야? 다섯 개지? 저게 옛날 장수들이 공기 놀던 거래.”
   “정말 그렇게 힘이 셌을까?”
   “그럼, 옛날이야긴 다 참말이야.”
   수없이 하고 한 이야기, 장수들이 공기 받는 것 좀 보았으면…….
   한겨울에도 꼬마들은 그 냇물로 달려갔다. 썰매 든 놈, 팽이 든 놈,
어느새 꽁꽁 언 냇물이 꼬마들로 가득 찬다. 썰매가 달린다. 팽이가
돈다. 미끄러지면 어때? 씽씽, 팽팽 모두 신이 난다. 그런데 어느 날,
서울 가서 중학교 다니는 동네 형이 이상한 신을 신고 나타났다. 구
두에 칼이 달렸다. 형은 제비 날 듯 얼음 위를 날았다.
   꼬마들은 우두커니 앉고 서서 넋을 잃었다.
   “저게 칼 뭐라던데, 뭐지? 맞아, 칼 스케이트라는 거야.”
   “칼 스케이트? 서울에선 다 저걸 타나?”
   “몰라. 가 봤어야 알지.”
   서울이 어떤 곳일까, 한 번 가보았으면…….
   그 후 나는 서울로 대학공부를 와 한강을 처음 보았다. 참 엄청났
다. 그 엄청난 물을 헤엄쳐 건너는 젊은이도 많았다. 그러나 방망이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웃음소리, 이야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서
울 꼬마들은 장수 이야기를 몰랐다. 가보고 싶은 곳은 있었을까? 너
무 낯설었다. 지금도 나는 한강이 어느 먼 나라의 강만 같다.

 

 


정진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