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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2년 가을호, 다시 읽는 좋은수필] 하필이면 - 장영희

신아미디어 2012. 11. 4. 15:18

"‘하필이면’ 의 이중적 의미를 생각하니 내가 지고 가는 인생의 짐이 남의 짐보다 무겁다고 아우성쳤던 좁은 소견이 새삼 부끄럽다."

 

 

 

 

 하필이면


   몇 년 전인가 십대들이 즐겨 부르던 유행가 중에 <머피의 법
칙>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확실히 기억은 안 나지만 가사가 대충 이
랬다.
   “화장실이 있으면 휴지가 없고, 휴지가 있으면 화장실이 없고, 미
팅에 가도 하필이면 제일 맘에 안 드는 애랑 파트너가 되고, 한 달에
한 번 목욕탕에 가도 하필이면 그날이 정기 휴일이고.” 등등 ‘무슨
일이든 어차피 잘못되게 마련이다.’ 라는 ‘머피의 법칙’ 을 코믹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노래에 나오는 ‘하필이면’이란 말은 분명히 ‘왜 나만?’ 이라는
의문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까 남의 인생은 별로 큰 노력 없이도 모
든 일이 잘되어 나갈 뿐더러 가끔은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는 것 같
은데, 왜 ‘하필이면’ 내 인생만은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걸핏
하면 일이 꼬이고, 그래서 공짜 호박은커녕 내 몫도 제대로 못 챙겨
먹기 일쑤냐는 것이다.
   그런데 억울하기 짝이 없는 것은 그게 내 탓이 아니라는 거다. 순
전히 운명적인 불공평으로 인해 다른 이들은 벤츠 타고 탄탄대로를
가는데, 나는 펑크난 딸딸이 고물차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가고 있
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나도 ‘머피의 법칙’ 을 생
각할 때가 많다. 한 예로 내 열쇠고리에는 겉으로는 구별이 안 되는
열쇠가 두 개 달려 있는데, 하나는 연구실, 또 하나는 과 사무실 열
쇠이다. 열쇠에 유성 펜으로 방 번호를 표시해 놓으면 그만이지만,
그러기도 귀찮고 또 그냥 재미도 있고 해서 내 방에 들어갈 때마다
둘 중 아무거나 꽂아 본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이, 수학적으로 따져 볼 때 확률은 분명
히 반반인데, ‘하필이면’ 연구실 열쇠가 아니라 거의 과 사무실 열
쇠가 먼저 손에 잡혀 두 번씩 열쇠를 돌려야 하는 일이 열이면 아홉
이다.
   그뿐인가. ‘하필이면’ 큰 맘 먹고 세차한 날은 갑자기 맑은 하늘
에서 비가 오고, 무엇을 사기 위해 줄을 서면 바로 내 앞에서 매진
되고.
   더욱이 얼마 전에는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내 어깨에 새똥이 떨어
지는 일도 있었다. 나는 망연자실, 한동안 서서 나의 ‘하필이면’ 의
운명에 경악했다. 2천만 서울 인구 중에 새똥 맞아 본 사람은 아마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일 텐데 ‘하필이면’ 그게 나라니!
   물론 이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하필이면’도 있다. 남들은 멀
쩡히 잘도 걸어다니는데 왜 하필이면 나만 목발에 의지해야 하고,
어떤 사람은 펜만 잡으면 멋진 글이 술술 잘도 나오는데 왜 하필이
면 나만 이 짤막한 글 하나 쓰면서도 머리를 벽에 박아야 하는가.
   그렇다고 다른 재주가 있느냐 하면 노래, 그림, 손재주 그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나름대로의 재능을 골고
루 나눠주신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하필이면’ 나만 깜빡하신 듯
하다.
   언젠가 치과에서 본 여성지에는 모 배우가 화장품 광고 출연료로
3억 원을 받았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3억이면 내가 목이 쉬어라
가르치고 밤새워 페이퍼 읽으며 10년쯤 일해야 버는 액수인데, 여배
우는 그 돈을 하루 만에 벌었다는 것이다.
   그건 재능이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타고난 생김새 때문인
데, 그렇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일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한 일이다.
   나는 내가 잘빠진 육체는 가지지 못했어도 그런대로 꽤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내 아름다운 영혼에는 3억 원은
커녕 3백 원도 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차피 둘 다 못
가지고 태어날 바에야 아름다운 몸뚱이를 갖고 태어날 일이지 왜
‘하필이면’ 3백 원도 못 받는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태어났는가 말
이다.
   그래서 ‘하필이면’ 이라는 말은 내게 한심하고 슬픈 말이다.
   그런데 어제 저녁 초등학교 2학년짜리 조카 아름이가 내게 던진
‘하필이면’ 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귀여운 팬더곰 인형
을 하나 사서 아름이에게 갖다 주자 아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데 이모, 이걸 왜 하필이면 내게 주는데?”
하는 것이었다. 다른 형제나 사촌들도 많고, 암만 생각해도 특별히
자기가 받을 자격도 없는 듯한데, 뜻밖에 선물을 받았다는 아름이
나름대로의 고마움의 표시였다.
   외국에서 살다 와 우리말이 아직 서툰 아름이가 ‘하필이면’ 이라
는 말을 부적합하게 쓴 예였지만, 아름이처럼 ‘하필이면’ 을 좋은 상
황에 갖다 붙이자, 나의 ‘하필이면’ 운명도 갑자기 찬란한 빛을 발
하기 시작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누리는 많은 행복이 참으로 가
당찮고 놀라운 것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했기에, 하고많은 사람들 중
에 ‘하필이면’ 내가 훌륭한 부모님 밑에 태어나 좋은 형제들과 인연
맺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살고 있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헐벗고 굶
주리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내가 무슨 권리로 먹
을 것 입을 것 걱정 없이 편하게 살고 있는가. 또 나보다 머리 좋고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내가 똑똑
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가.
   게다가 실수투성이 안하무인인데다가 남을 위해 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 장영희를 ‘하필이면’ 왜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사랑해 주는가(우리 어머니 말씀으로는 양순하고 웃기 좋아하는 나
의 성격 때문이라는데, 그렇다면 잘빠진 육체보다 아름다운 영혼을
타고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필이면’의 이중적 의미를 생각하니 내가 지고 가는 인생의 짐
이 남의 짐보다 무겁다고 아우성쳤던 좁은 소견이 새삼 부끄럽다.
   창문을 여니, 우리 학생들이랑 일산 호수공원에 놀러 가기로 한
오늘, ‘하필이면’ 날씨가 유난히 청명하고 따뜻하다.

 

 


장영희(1952 ~ 2009)  ------------------------------------

영문학자. 수필가. 서강대 교수.

수필집《어떻게 살 것인가》,《 문학의 숲을 거닐며》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