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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2년 가을호, 다시 읽는 좋은수필] 자유부인 - 강호형

신아미디어 2012. 11. 4. 15:06

"나는 그녀를 그 고약한 별명 대신 ‘자유부인’ 이라 부르기로 한다."

 

 

 

 

  자유부인


   고향 마을에 혼자 사는 노파 한 분이 있다. 사람들은 그녀를
호박갈보라고 부른다. ‘갈보’를 차마 입에 담기가 민망해서 그냥
‘호박’이라고만 부르는 사람도 있다. 물론, 제3자들끼리 그녀를 지
칭할 때만 부르는 이름이지만 당사자가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래도
못 들으면 못 들어서 그만, 들어도 못들은 체하고 그만이다.
   6 · 25 전쟁이 끝나갈 무렵, 마을 주막에 색시 하나가 들어왔다.
마을 아낙네들과는 차림새부터가 달랐다. 공작새 날개 같은 유똥 치
마저고리에 입술 연지까지 짙게 바른 색시가 나타나자 1백50여 호
나 되는 마을 사내들이 단박에 술렁였다. 아래 윗방 달랑 두 칸에 툇
마루, 거기 달린 부엌 한 칸이 전부인 주막에서는 몰려드는 손님을
다 감당할 수 없어 밖에서 서성거리는 사내들도 적지 않았다. 양조
장 자전거가 막걸리 통을 주렁주렁 달고 분주히 드나들어도 술이 달
릴 지경이었다.
   H · K 양대 성씨의 집성촌이어서 서로 비교 우위의 양반임을 자
처하던 양가의 자존심과 기강이 맥없이 무너졌다. 타성 간에는 물론
아재비와 조카, 손자행과 대부행 간에도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는
판이었다. 사태가 이쯤 되자 이면 체면 다 벗어던지고 중인 환시리
에 땔나뭇짐을 지고 가 주막집 헛간에 부리는 순정파도 있었다.
   스캔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자 마을 아낙들의 입방아까지 분
주해졌다. 주모를 원망하고 색시를 저주하고 서방님들을 질타했지
만 사태는 좀처럼 반전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호박갈보’란 호칭
은 아마도 그 입방아에서 나온 작품이 아닌가 한다. 하기야 성씨도
이름도, 고향도 나이도 모르는 그 ‘여우 같은’ 여인을 순순히 ‘색시’
로 불러줄 심사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낙들의 입방아야 어떻게 돌아가든 그녀는 당당했다. 술 달라면
술 주고 노래 하라면 노래하고, 사내들이 어린애처럼 보채면 적당히
달래고 아낙들이 아우성을 쳐도, 내 탓하지 말고 서방 건사나 잘하
라고 응수했다.
   마을 앞에 수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대부분의 농토가 물에 잠기
자 이농하는 사람이 늘고 주막도 문을 닫았다. 그래도 색시는 그만
큼 호황을 누렸으면 한 밑천 잡았음 직도 한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녀에게 남은 거라고는 폐경기에 접어든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졸지
에 실직자가 된 그녀가 마을 아낙들 틈에 끼여 논일 밭일 허드렛일
가리지 않고 소매 걷어부치고 나서자 그제야 마을 아낙들도 그녀를
용서했다.
   그러구러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서방님들이나 그녀나 염문 뿌릴 나
이도 지나가버리고 그다지도 군침 삼키며 보채던 남정네들 중에는
세상을 떠난 이도 여럿이다. 이제는 그녀도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늙
었다.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호박갈보’ 또는 ‘호박’ 이다. 그러나 그
건 마을 사람들 탓이 아니다. 스스로 이름을 밝힌 적이 없고, 남편이
나 자식이나 형제 자매나 하다못해 사돈의 8촌 하나 나타난 적이 없
으니 아무개 엄마, 또는 아무개 이모 하는 식으로 빗대 부를 만한 언
덕마저 없는 것이다. 이름만 있고 형체 없는 사람은 많지만 형체가
분명하면서도 이름이 없는 사람.
   그녀가 속절없는 무의탁 노인이 되자 마을 이장이 생활보호대상
자 신청을 하려니 호적도 주민등록도 없는데다가 본인조차 자신의
출생 내력을 모르고 있더라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 연명으로 진정서
를 올리는 등, 우여곡절 끝에 생계비 지원을 받게 됐다는데 그녀의
신상 명세서가 어떻게 꾸며졌는지는 알 수 없고, 그녀 자신도 모르
고 있을 것이다.
   나는 요즘도 가끔 그녀를 만난다. 몇 해 전에 정년퇴임한 친구가
그 마을에 농가 한 채를 사서 혼자 내려가 있는데, 안채에는 그녀를
살게 하고 친구는 사랑방 하나만 쓰고 있다. 내 집에서 자동차로 30
분 거리에 있어 가끔 내려가 보면 그녀는 늙기는 했지만 여전히 당
당하다. 저만큼 멀리 지나가는 젊은이를 목청껏 불러 절구통을 좀
옮겨달라기도 하고, 큰길 가에 나가 차도를 가로막는 막무가내식 히
치하이킹으로 30리나 되는 읍내를 이웃집 드나들 듯한다. 그것도
무슨 긴한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심심풀이로 한다. 어쩌다 담배라
도 한 갑 사드리면 얼른 들어가 생두부 김치에 소주 한 병 들고 나와
씩씩하게 잔을 권하기도 한다.
   가진 것이 없으니 속을 염려도 없고, 돌봐줄 피붙이 없는 것이 쓸
쓸하기야 하겠지만, 아무 간섭이 없어 홀가분하다. 생계비 지원은
받게 됐으니 더 이상 호적 따위 골치 아픈 문서에 신경 쓸 필요도 없
다. 아무 거리낌이 없고,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사람……. 나는
그녀를 그 고약한 별명 대신 ‘자유부인’이라 부르기로 한다.

 


강호형(1938 ~ )  ------------------------------------------

경기도 광주 출생.

월간《문학정신》으로 등단. 수필집 《돼지가 웃은 이야기》등 5권.

현대수필문학상, 황의순문학상 수상. 본지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