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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2년 가을호, 다시 읽는 좋은수필] 외딴집 - 반숙자

신아미디어 2012. 11. 4. 14:57

반숙자님과 함게 외딴집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외딴집

 

 우체부
   중부지방을 강타한 장맛비로 하천 둑까지 황톳빛 물이 넘실거
리던 때다. 산자락에 붙어 있는 우리 오두막으로 오는 길이 세 차례
나 끊어졌다. 길은 두 갈래다. 마을 안까지 들어가 동산을 넘는 산길
이 있고, 마을 초입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진 농로를 따라오다 곶집을
지나 오르는 과수원길이 있다.
   연일 내리던 비는 골짜기에서 쏟아져내려 산길, 과수원길을 다 끊
어 놓았는데 그때 한창 고추를 따던 농가들의 타격이 컸다. 경운기
가 다닐 수 없어 고추 짐을 일일이 지게로 져 날랐다. 날마다 포클레
인이 와서 복구작업을 해놓고 갔지만, 이틀이 멀다 하고 비에 끊어
졌다. 실개천이던 도랑이 2미터 너비로 파였으니 물길을 감당하기
가 어려웠다.
   그날도 비가 내렸다. 길이 차단되고 억수로 쏟아지는 비 속에 외
딴집인 우리 집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인근의 밭에 일하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다. 막 점심 수저를 놓던 순간, 누가 현관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을러대서 문을 꼭 닫고 있던 터여서
으스스한 기분으로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나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관 앞에는 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은 우체부가 서 있는데 그의 몰골이 진흙으로 개벽을 하고
있었다. 빗물이 흘러내리는 헬멧 속에서 주름 가득 웃으면서 품안에
품고 온 편지 한 장을 꺼냈다. 그는 따끈한 차 한잔도 마다하고 길 없
는 길로 다음 주인을 찾아 떠났다. 쓰다 달다 말 한 마디 없이…….
그러나 나는 마치 그가 자기 편지를 전해 주고 간 듯 빗소리보다 더
크게 울리는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보통 편지 한 장을 들고.


 도둑고양이
  
그 무렵이다. 연일 내리는 비를 피해 새끼 다섯 마리를 거느린 고
양이 일가가 헛간에 들어왔다. 어스름 저녁 외딴집을 찾아든 도둑
고양이의 심정을 알 만했다. 식구는 많고 훔쳐먹는 끼니려니 오죽
배가 고프랴. 도둑고양이 주제에 새끼는 왜 그리 많이 낳아 달고 다
니나.
   놈들은 부엌 창과 마주 보는 헛간에 한뭉텅이로 엉켜 있었다. 내
가 뒷문을 열고 나가면 기겁을 하고 나뭇단 속으로 숨어버렸다. 빠
르기가 비호 같았다. 저녁을 마치고 부엌 쓰레기를 버리러 가다 보
니까 뼈만 앙상한 고양이가 쓰레기장을 뒤지다가 도망쳤다. 에미
려니 싶다. 에미 심정이 측은해서 먹다 남은 음식을 한데 비벼 내놓
았다.
   새벽에 나가 보니 밥 그릇은 깨끗이 비어 있는데 고양이네는 간
데 온데 없이 사라졌다. 그러면 그렇지, 하룻밤 비를 피해 자고 간
모양이다. 지하실로 감자를 가지러 내려가다 깜짝 놀랐다.
   층계참에 큼직한 쥐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밥값을 한 모양이
었다.
   낮에는 없어졌다가 밤이면 하숙집 찾듯 찾아오는 고양이네는 하
숙집 주인 얼굴을 익혔는지 전처럼 도망을 가지 않았다. 다만 내 쪽
에서 밥이 남지 않은 날은 그것들 걱정이 되었다. 비도 그치고 날씨
가 좋으니 마땅한 거처로 옮겨 주었으면 한 것은 밥 때문이 아니라
밤에 부딪치는 그들의 안광 때문이다. 소리 없이 빛나는 안광은 아
주 섬뜩했다. 파란불이 뚝뚝 떨어지더라는 어렸을 적 도깨비불이 연
상될 정도였다. 또 밤마다 내 집에서 벌어질 처절한 살육전이 싫었
다. 이심전심이었던지 어머니는 고양이만 눈에 뜨이면 쫓는 시늉을
했다. 그러구러 한 철이 지났다.
   이제 고양이네는 도둑고양이가 아니다. 나를 보면 도망은커녕 앞
발을 모으고 고개를 나붓이 숙인 채 아는 체를 한다. 뱃속부터 도둑
고양이가 따로 있겠나.


 밤손님
  
영문도 모르고 급하게 서두는 시골행에 실려 길을 떠났다. 남편은
태연한 얼굴로 운전을 하다가 마을 앞 새마을 다리에서 차를 멈추고
어떤 상황이든 간에 놀라지 말라고 다짐을 두었다. 궁금해하는 나에
게 밤손님이 다녀갔다는 전화가 왔는데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는 것
이다.
   외딴 산마루에 집을 지은 지 스무 해 가까이 되었지만, 밤손님 들
기란 처음 있는 일이다. 비워둔 집을 손질하고 서울에서 밀려난 집
기들을 갖다 놓고 드나드는 게 3년이 되었다. 한두 개 아쉬운 것들
을 나르다 보니 이제는 불편한 것이 없으나 보석이나 값나가는 집기
들이 있을 리 없다. 무엇을 바라고 들어갔을까. 한 가지 짚이는 것은
내가 아끼는 화집이 있었다.
   화집 걱정을 하니까 화집을 욕심낼 손님이라면 그런 짓을 안 한다
고 일축해 버렸다.
   과연 집은 폭행을 당해 있었다. 현관부터 창문까지 물샐 틈 없이
잠가 놓아서 손님들은 괭이를 가져다가 베란다 문을 망가뜨렸다. 문
설주를 우그려 떼고 안쪽 큰 유리를 박살냈다. 그런데 집 안은 정리
된 그대로였고, 화집도 무사했다. 옷장의 옷, TV, 부엌의 전자제품
이 제자리에 있다. 참 의아했다. 자가용 타고 드나드니 돈푼깨나 있
는 집으로 오판했던 것일까, 외딴집이니 하룻밤 쉬어가려 했던가.
   나는 한 가지라도 빠질세라 품목을 확인하며 뛰는 가슴을 진정하
다가 장롱 위로 시선이 갔다. 아가들이 먹다가 얹어두고 간 과자봉
지들이 있었는데 과자가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밥풀과자가. 웃음
이 났다. 재미있는 손님도 있지, 기왕에 먹을거면 피아노 위에 죽순
주나 한잔 마시고 가지. 아무려나 밤손님치고는 고마운 손님이다.
   우리가 있을 때 들어왔으면 놀라서 기절을 했을 텐데……. 수고에
비해 수확은 없었지만, 가난한 문사의 사는 모습을 보고 갔으니 느
낌이야 있지 않을까. 그 뒤로도 문단속을 철저히 하지 않는다. 고독
한 순례자의 마음같이 외딴집은 이래저래 이야기가 많다.

 


반숙자  ---------------------------------------------------

충북 음성 출생. 수필가. 월간《현대문학》으로 등단.

수필집《몸으로 우는 사과나무》등 다수.

현대수필문학상, 월간문학 동리상 등 수상.